"테러 모의 우려·외국 기업만 이득" vs "구시대적 규제 벗어나야 혁신"
이번에도 반출허가 쉽지 않을 듯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인 구글이 한국 지도를 국외로 가져갈 수 있게 할지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구글이 우리 지도를 가져가면 지금껏 '반쪽의 또 반쪽' 수준으로 파행 운영되던 한국판 구글맵(구글 지도)은 100% 기능으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 문제는 '지도 반출은 어렵다'는 우리 정부와 '부당한 규제'라는 구글 사이에 8년 넘게 계속된 입씨름이었지만 애초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논란은 올해 갑작스럽게 달아올랐다.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와 지능형 자동차 등 지도를 토대로 한 첨단 IT(정보기술) 제품이 주목받으며 지도 반출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지도 반출로 구글맵을 정상화하면 우리 지도 서비스의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구글맵이란 뛰어난 경쟁자가 업계에 긴장과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메기 효과' 주장이다.
반면 지도의 국외 제공이 남북 대치라는 우리 안보 상황에 직결된 사안인 데다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출 결정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이런 열기를 반영해 8일 국회에서는 지도 반출에 관한 첫 토론회가 열린다. 구글과 네이버 등 IT 업계 당사자와 국내 학계·정부 관계자들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인다. 토론회는 구글의 지도 반출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는 12일 정부 회의를 불과 나흘 앞두고 마련된 만큼 찬반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해당 논쟁의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 문제는 안보 구글은 세계 각지의 지도를 '글로벌 서버'에 넣고 구글맵을 서비스한다. 이 서버는 미국·칠레·대만·싱가포르·아일랜드·네덜란드·핀란드·벨기에 8개국에 흩어져 있고 한국에는 없다.
구글은 이 때문에 한국 지도를 국외 서버로 가져가고 싶다며 반출 의사를 계속 밝혔지만, 번번이 우리 정부의 안보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한국에 서버를 두고 지도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국외까지 지도를 가져가면 국가 적대 세력이 쉽게 우리 지도를 확보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다.
구글이 반출 신청한 한국 지도는 SK텔레콤[017670]이 보유한 데이터로 내비게이션 'T맵'의 지도와 같다.
이 지도는 청와대와 군부대 등 국가 중요 시설에 관한 내용은 모두 지워져 있어 안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평가다.
◇ "위성사진 삭제는 실익 없다" 그러나 우리 군 당국은 이 지도의 반출 조건으로 미국 등 외국 구글맵의 위성사진 지도를 고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외국 구글맵에서 우리 군부대 등 민감 시설의 위성 이미지가 노출되는 만큼 이도 다 지워야 지도 반출을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구글의 반응은 강경하다. 한국 규제를 이유로 미국·영국·브라질 등 타국의 구글맵 서비스까지 '검열'하는 것은 재량권 위반이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반출 신청도 불허될 공산이 작지 않다.
한국판 구글맵은 위성사진 지도를 일정 수준까지 확대하면 화면 해상도가 급감해 국가 시설을 포함한 모든 지형지물이 흐릿해진다. 이처럼 한국 서비스만큼은 우리 정부의 방침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구글 측의 해명이다.
정부의 선결 조건이 안보상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위성사진 데이터는 미국·러시아·유럽 등의 전문 업체가 엄청난 양을 유통하는 탓에 외국 구글맵만 지워서는 정보 차단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 군은 적대 세력이 외국 구글맵의 위성사진을 토대로 손쉽게 테러 등을 모의할 우려가 여전한 만큼 삭제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소비자·산업에 이익" 구글맵이 정상화되면 한국판에서도 ▲ 도보 길 찾기 ▲ 내비게이션 ▲ 실시간 교통정보 ▲ 실내 지도 ▲ 3차원 지도 등 고급 기능이 추가될 길이 열린다.
지도 앱(응용프로그램) 사용자로선 선택 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한국판 구글맵은 지도 찾기와 대중교통 길 찾기만 돼 사용자가 그리 많지 않다. 구글이 지도 반출이 안 되자 한국에 소규모 서버를 두고 최소 기능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IT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찬반이 갈린다.
찬성 진영은 구글맵이 제대로 되면 포켓몬고와 구글의 지능형 차량 서비스인 '안드로이드 오토' 등 구글맵을 쓰는 유명 서비스가 쉽게 국내 출시될 수 있어 혁신이 활발해진다고 강조한다. 세계에서 한국만 구글맵이 잘 안되는 '갈라파고스(고립지)'가 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숙박앱·택시앱·배달앱 등 국산 서비스가 서구에선 사실상 표준 역할을 하는 구글맵을 더 많이 쓰게 돼 우리의 국제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란 주장도 있다. 지금껏 많은 국내 앱은 국산 지도 기반으로 설계돼 외국에 진출하려면 구글맵 버전으로 재개발을 거쳐야 했다.
◇ '외국 기업의 갑질' 주장도 반론도 만만찮다. 온라인 검색과 모바일 영역을 장악한 세계적 'IT 공룡' 구글이 이번 지도 반출을 계기로 한국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 예다.
국내 IT 업계에서 구글이 '특혜'를 요구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국내 서버에 추가 투자해 한국 소비자에게 더 많은 구글맵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데 지도 반출이란 '편한 길'만 고집한다는 주장이다.
지도 서비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 지도'나 애플 맵은 국내 서버를 토대로 한국판 구글맵보다 훨씬 더 풍부한 기능을 제공한다"며 "지도 반출이 구글맵 정상화의 유일한 길이라는 구글 측의 주장은 부당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글이 한국에 있는 구글맵 서버에 투입하는 공과 비용은 '최소 수준'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서버 운영에 관한 자사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은 이해가 가지만 한국에서 자기 방식만 강요한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번에도 허가 쉽지 않을 듯"
구글은 2008년 한국판 구글맵의 출시 이후 계속 한국 당국에 지도 반출 의사를 강력히 밝혀왔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지금껏 한국 정부는 학술 연구 목적으로 지도 반출을 허용한 적은 있었지만, 외국 IT 기업에다 허가해준 사례는 구글 외에도 없었다.
구글의 공식 반출 신청은 2010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현행 법규에서는 반출 신청이 들어오면 국토교통부·국방부·미래창조과학부 등으로 구성된 부처 협의체가 60일 이내(근무일 기준)로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번 심사의 기한은 25일까지로 12일 예정된 협의체 회의에서 사실상 심사 결과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예측된다. 협의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 구글맵의 위성사진 삭제와 관련해 우리 군 측과 구글 사이의 견해차가 아직 크다. 회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허가가 나오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