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고성국의 빨간의자 - 구봉서 편' 화면 갈무리)
"다시 태어나도 코미디언 할 거냐고? 다시 태어나 봐야 알겠지. (웃음) 그런데 지금은 할 마음이 없어. 모든 시스템이 바뀌면 모르지만, 지금은 안 돼. (코미디를) 자유롭게 내버려둬야 하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어디 회사 사장하고 전무가 싸우는 걸 보고는 어떤 사장이 '야 그 역할 나보고 한 거 아냐!' 이런 얘기나 할 줄 알고, 그러면 안 돼."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가 27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지난 1960, 70년대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끈 고인은, 희극을 낮게 바라보는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서 온 '코미디 거장'으로 꼽힌다.
생전인 2013년 12월 17일 방송된 tvN 토크쇼 '고성국의 빨간 의자'에 출연한 구봉서는 한국의 1세대 코미디언으로 보낸 60년 인생을 술회했다.
"오래간만입니다. 제가 구봉서입니다. 많이 변했죠? 세월이 가면 다 그렇죠 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저라고 안 변했겠어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모습은 뭉클하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구봉서는 1945년 극단에서 악사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이날 방송에서 고인은 "친구들과 밴들를 결성해 음악을 연주했던 고등학교 시절, 하루는 악기를 가져오는데 누가 '어디 단체 악사냐'고 물어보더라. 그게 악극단에 악사로 들어오라는 얘기였다. 포지션은 아코디언이었다"고 데뷔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악극단은 1부에서 연극을 1시간 반 정도하고, 2부에서 쇼를 30~40분했다"며 "악단에 들어온 사람은 노래도, 연기도 할 줄 알아야 명이 길었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크게 흥행한 영화 '오부자'(감독 권영순·1958)에서 맡았던 역할 덕에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기도 했다.
구봉서는 "'이런 역할이 있는데 한 번 해보겠냐'고 해서 당시 홀쭉이(양석진), 뚱뚱이(양훈), 김희갑하고 나하고 예전에 돌아가신 이종철 선생과 함께했는데, 제목이 '오부자'였다. 재밌을 것 같아서 했다"며 "막둥이라는 별명은 나이 60이 넘어서도 따라다녔다. '막둥이 가요만보~'라고 방송도 했다. 요즘에도 막둥이 얘기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 "코미디 싹 없앤다기에 '택시가 사람 한 명 죽이면 택시 싹 없애버립니까'라고 했지"
지난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 참석한 코미디언 구봉서(왼쪽) 씨와 엄용수 씨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고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엄혹한 통제의 시대였던 만큼, 코미디에 대한 억압도 심했다.
구봉서는 "오죽하면 1970년대 당시 문공부장관이 '저속하다'며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 폐지를 지시했다. '윤리에 어긋난다'나 뭐라나"라며 "어쩌다 기회가 있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 술자리에 갔는데, '코미디를 없애라고 한다'고 내가 말했더니 (대통령이) '누가 그래요? 그럼 좀 잘하지 왜 그렇게 했어요'라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내가 '없앤다는 게 말이 됩니까. 택시가 사람 한 명 죽이면 택시 싹 없애버립니까'라고 했더니 '허허 참 별소리를 다하네'라고 하더라"며 "그 다음부터는 (코미디 프로그램) 없앤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라고 덧붙였다.
그의 꿈은 헌책방 주인이었다고 한다. 구봉서는 "여기(한국)에는 내가 원하는 웃음에 관한 책이 없다. 우리나라가 웃음을 얼마나 무시하는 나라요. 웃음에 관한 책을 꼽아놓을 데가 없다"며 "새 책이 있어야 헌 책도 있는 것이다. 새 책이 없으니까 헌 책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코미디는 웃음 속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구봉서의 지론이다.
그는 "내가 코미디 폐지를 지시했던 장관에게 '어떤 웃음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남산 꼭대기에서 돌멩이를 하나 던졌더니 김가(金家) 아니면 이가(李家) 머리에 맞더라. 이 얼마나 재미있소. 이런 걸 해야 됩니다'라고 답하더라. '그럼 당신이 하쇼'라며 나왔다"며 "어떤 사람은 (코미디를 두고) '이 복잡한 세상에서 뭘 생각하게 만드냐. 재밌게 한번 보고 싹 잊어버리는 게 났지'라고 하는데, 그럼 망년회(연말에 그해 괴로웠던 일들을 모두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연회)가 무슨 필요 있나. 어차피 잊어먹을 거"라고 꼬집었다.
이어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작품이 되지 않는다. 하는 사람이 즐겁지 않은 데 그게 즐겁겠나"라며 "한 커트 끝나고 나서 카메라맨, 오디오맨들이 '재밌었다'고 해주면 더 좋고"라고 덧붙였다.
◇ "자유롭게 두지 않는 지금 시스템에선 다시 태어나도 코미디 할 마음 없어"
(사진=tvN '고성국의 빨간의자 - 구봉서 편' 화면 갈무리)
방송 당시 88세였던 구봉서는 후배 코미디언 엄용수가 영상편지를 통해 "130세까지만 사십시오"라고 전하자 "욕을 해라. 욕을 해! 왜 나이 90 넘게 살려고 애를 쓰나. 벌써 하나님이 나를 딱 내다보시고 '너는 90세 되기 전에 죽어라' 이렇게 벌써 얘기하셨다. 부의금 줄 거 있으면 미리 줘"라며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곧이어 방송에 모습을 나타낸 엄용수는 "선생님이 후배들에게 방송연기를 가르쳐 주셨다. 제가 MBC 1기 개그맨으로 합격했을 때 두 달 동안 연기자의 인격과 교양을 가르치셨다. 그때 그 강의가 35년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시간을 철저히 지켜라' '항상 책을 읽어라'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항상 생각해라' '녹화 전 며칠씩 투자해서 집중해라' 이런 걸 가르쳐 주시는데 본인이 또 그렇게 하신다. 선생님이 주신 여러 지적인 것, 예절을 제가 지금까지 갖고 버티고 있다"고 말하며 존경의 뜻을 표했다.
이날 방송에서 구봉서는 코미디언을 낮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에 얽힌 일화도 여럿 들려줬다.
그는 "제가 한번은 예술원에 갔는데, 회원이 되려면 같은 직업에서 몇 년간 활동을 해야 한다더라. 우리 세대는 이미 그 활동연수가 많이 지나 있었는데도 안 된다더라. '왜 우리는 안 되냐'고 물으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누구를 빼서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더라. 차라리 '당신들의 직종은 예술원 회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그래요?' 하면서 뒤통수 긇고 나오지. 그게 말이 되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구봉서가 주연한, 섬마을 아이들과 교사의 순수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수학여행'(감독 유현목·1969년)은 테헤란국제아동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와 관련해 구봉서는 "영화가 A급으로 판정받으면 좋은 점이 있나본데, 저 영화(수학여행)는 B급으로 판정받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주연배우가 코미디언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B급 받은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코미디언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다시 태어나 봐야 알 것이다. 지금은 할 마음이 없다. 모든 시스템이 바뀌면 모르지만, 지금은 안 된다. (코미디를) 자유롭게 내버려둬야 한다. 코미디에서 어디 회사 사장하고 전무가 싸우는 걸 보고는 어떤 사장이 '야 그 역할 나보고 한 거 아냐!' 이런 얘기나 할 줄 알고,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현재 TV 코미디 프로그램 등의 정치 풍자에 가해지는 외압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구봉서는 끝으로 "구수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막둥이가 그대로 늙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3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6시며,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