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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건축가 父子의 개성있는 집짓기

    신간 '살림집 말고 다른 집, 알파하우스를 꿈구다'

     

    건축가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집을 지었다. 독특하게도 건축주인 아버지 역시 건축가다. 두 전문가가 머리를 맞댔으니 일사천리로 집을 지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사뭇 달랐다. 30년 넘게 건축을 가르쳐온 건축과 교수에게도,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신예 건축가에게도 ‘내’ 집 짓기는 처음이었으니까. 집터는 일찌감치 준비돼 있었다. 동호회 사람들이 하나둘 땅을 사자 분위기에 휩쓸린 아버지가 덜컥 대지를 매입해버린 것이다. 이듬해 IMF 외환 위기가 터졌고, 집 짓기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아버지는 은퇴를 앞두고서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꿈을 떠올렸다. 틈틈이 만들어둔 전원주택 계획안이 있었지만 어느새 식구는 단출해졌고, 필요한 공간도 달라졌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고민할 때 아들이 흥미로운 계획안을 내밀었다. 근 20년 사이 아들은 건축학도에서 어엿한 건축가로 성장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꿈에 한 발짝 다가갔다.

    이 집은 이름이 세 개다. 아버지는 자신의 호를 따 수헌정으로, 아들은 형태에 착안해 기울어진 집으로 부른다. 세 번째 이름은 ‘알파하우스’다. 알파하우스는 최근 들어 아파트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알파룸’(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자투리 공간으로 입주자가 자유롭게 꾸밀 수 있음)과 관계가 있다.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의 변화가 가장 획일화된 주거 형식인 아파트에까지 반영된 것이다. 알파룸은 입주자의 개성이나 취미를 반영해 서재, AV룸(오디오·비디오룸), 작업실 등으로 만들 수 있는데, 알파룸이 확장된 개념이 바로 알파하우스다.

    부가 기능이 주거 기능을 역전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살림집’과는 차이가 있다. 혹자는 알파하우스를 두고 ‘절박한’ 고민이 아닌 ‘사치스런’ 고민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겠으나 저자는 “모든 이가 획일적인 공간에 살도록 하는 게 맞는지” 반문한다. 추천사를 쓴 발레리 줄레조 교수의 논평처럼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의 현실상 알파하우스는 필연적인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수헌정(亭)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집은 누정(樓亭)을 본보기로 삼았다. 일, 휴식, 문화생활이 가능한 공간을 원하는 건축주의 바람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선비들은 경치 좋은 곳에 누정을 짓고 자연을 즐기며 학문을 연마했다. 살림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온전한 휴식과 집중을 취한 것이다. 누정은 보통 본가의 2킬로미터 이내에 마련했는데 ‘심리적 이격의 가치’를 이해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분채의 미학 외에 누정 건축의 또 다른 매력은 작은 규모로 전체 면적은 평균 10평 내외다. 어느샌가 건축주 사이에서 ‘최대 용적률’이 준칙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전원에 지은 수헌정은 애써 면적을 키우지 않았다. 누정 건축을 따라 공간을 분할하기보다 통합하여 공간이 하나의 용도에 갇히지 않도록 했다. 용적률을 높이는 대신 ‘이용률’을 높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수헌정은 설계하는 데만 거의 2년이 걸렸다. 공간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며 공들여 구상하기도 했거니와 부자지간이 깨질 정도로 의견 충돌이 많았기 때문이다. 설계 의도와 디자인을 강조하는 젊은 건축가와 건축 역사와 이론으로 대응하는 노련한 건축주. 이렇게 싸워가며 또 공부하며 지은 집이 수헌정이다. 책에서는 건축가 부자의 집 짓기 여정을 건축 정담(情談)으로 담아냈다. 아버지가 거실의 역사와 진화 과정을 설명하면, 아들은 수헌정에서 거실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답한다. 현관, 주방, 안방, 계단 등 각부 공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는지 그리고 수헌정은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집 짓기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만 수헌정이라는 사례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찾고, 집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다. 내 집 짓기라는 꿈 앞에서 막연해하는 예비 건축주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설계한 공간으로 그저 자신의 부담 능력에 따라 크기만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원주택인들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집주인은 공간의 주체라기보다 집이란 기성품을 고르는 소비자에 가깝다. (…)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그려보고 현실로 구체화하는 데 대부분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집을 지은 이야기는 넘치지만 어떤 집을 지어야 하고, 왜 그런 형식으로 집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2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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