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영상] “한국군은 그날 도대체 왜 그랬나요?”

공연/전시

    [영상] “한국군은 그날 도대체 왜 그랬나요?”

    고경태 기록전 ‘한마을 이야기 - 퐁니·퐁넛’…10월 1일까지, 종로구 아트링크


    [YouTube 영상보기] [무료 구독하기] [nocutV 바로가기]

    “그날 폭음을 들었어요. 둘째 아들과 함께 모든 걸 생생히 보고 말았어요. 미군이 죽였다면 이해를 하겠어요. 한국군은 그날 도대체 왜 그랬나요?”

    베트남 남부 디엔반현 퐁니·퐁넛 마을의 주민 응우옌쑤(Nguyen Xu, 1929~2015) 씨의 질문을 들었을 때, 고경태 기자(현 <한겨레> 신문부장)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이 그런 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저지른 일 마냥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지 않았을까.

    응우옌쑤 씨(왼쪽)와 그의 둘째 아들 응우옌탄꺼(1957년생). @고경태. (제공사진)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68년 2월 12일.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청룡부대가 그날 퐁니·퐁넛 마을에 들어갔다. 퐁니 마을은 260명이, 퐁넛 마을은 3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미 해병 제3상륙작전부대 소속인 본(J. Vaughn) 상병은 한국군이 들어간 뒤 총성과 폭음이 울리고 화염이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1시간 반 뒤 무전 명령을 받고 상관인 실비아 중위와 함께 마을로 들어간 본 상병은 처참한 광경을 마주한다.

    본 상병이 찍은 '그날'의 사진 중 하나. 한 미군 병사가 주검들을 살피고 있다. (제공 사진)

     

    본 상병은 사진을 찍었다. 20여 장 필름을 흑백사진으로 인화해 ‘타버린 집들’, ‘가슴이 잘린 채 살아있는 여자’, ‘잿더미에 묻힌 마을 주민’, ‘사진 가운데 임신한 여자는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맞음’ 등 간단한 설명을 붙여 상급부대에 제출했다. 74명의 주검이 발견됐다는 이 보고서는 미국 군 당국에 의해 극비문서로 분류됐다.

    조용히 사라질 역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2000년이었다. 그해 6월 1일 기밀해제 된 문서를 고경태 기자는 11월 23일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최초 보도한다.

    이듬해 4월 고 기자는 본 상병이 찍은 사진을 들고, 퐁니·퐁넛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사진 속 주검을 보여주며, 이름은 무엇인지, 가족은 누구인지, 당시 사건의 앞뒤 정황은 어떠했는지를 조사했다. 주검 속 누군가의 아들, 엄마, 누이, 오빠, 형, 삼촌, 이웃들이 기억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고 기자는 총 6회 퐁니·퐁넛 마을을 찾아갔다. 1968년 2월 12일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였다. 이어 한 맺힌 비극을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그날 이후’의 주민들을 사진에 담았다.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그날 이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갤러리 아트링크 전경.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이 기록들을 모아 지난 9일부터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을 서울시 종로구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전시 중이다. 오는 10월1일까지 전시가 열리며, 무료이다.

    전시는 크게 3개 장면으로 나뉜다. ‘그날 이전’, 희생자들의 일상의 기록과 본 상병이 기록한 ‘그날’,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과 증언이 담긴 ‘그날 이후’다.

    전시 첫날인 9일 오프닝 행사에서 고 기자는 말했다.

    “베트남 언론 <뚜오이쩨>에서 ‘진실이 상처를 치유한다’고 제목을 거창하게 달아줬습니다. 저는 진실이 상처를 치유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단편적 취재를 하고 나서 아무도 나서지 않아,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하는 욕심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비극적입니다. 비극 이후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니 이야기는 전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일 진행된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 오프닝 행사에서 고경태 기자(오른쪽)가 전시 사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그는 거창한 의미는 없었다며 쑥쓰러워했지만 보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베트남 사람들은. 그날 오프닝에 참석한 베트남인 리엔 씨의 말이다.

    “저는 베트남사람이지만 한국군이 참전하고 학살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봉사활동에 참석한 뒤 알았습니다. 한국분들이 학살의 진실을 베트남과 한국에,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주시고, 매년 베트남까지 가서 봉사뿐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들 위로해주고,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트남 국민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한편, '그날'의 퐁니·퐁넛 마을 주민 학살 정황을 <한겨레>가 1999년부터 수차례 보도했지만,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사한 작전은 없었다"며 부인했으며, 여전히 같은 입장이다.

    전시 문의 : 02-738-0738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