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희 작가의 장편소설 '불운과 친해지는 법'이 출간되었다.
2016년 정릉, 엄마의 병구완 때문에 직장도 잡지 않고, 5년 동안 온갖 요리를 만들어야 했던 형진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집밥 먹는 셰어 하우스'를 연다.
대학 행정실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곧 정규직 계약의 꿈에 부풀어 있는 민규.
돈 많고 직장 탄탄한 남자와 결혼하여 추후 해외여행을 다니는 삶을 꿈꾸는 혜진.
유복하지만 가부장적인 부모의 속박에서 도망 쳐버린 젊은 뮤지션 정우.
경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비행학교에 다니며 패러글라이딩 조교를 하는 수진.
이혼 후, 밤 근무 전문 수의사가 된 호준.
현대 한국 사회의 평범한 젊은이들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 형진의 셰어하우스 입주 공고를 통해 정릉의 사과나무집에 모이게 된다.
한 사람이 들어왔다는 것은, 한 사람 이상의 관계를 끌고 들어온 것이며, 한 가지 이상의 사건을 끌고 들어온 것이다.
다섯 사람이 들어온 뒤로 밤마다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고,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각자의 과거에 따른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찾아오고, 숨어들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남자 넷과 까탈스러운 여자 혜진. 그리고, 순진하고 건강한 자매 수진이 있음으로 해서 젊은이들 간의 애정이 싹트기도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그 대상이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빗나간 사랑에 좌절하게도 한다. 그리고 집주인인 형진 역시 예상치 않았던 여자를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책 속으로슬픔이란 것이 이런 것인 줄 그가 이전에 어떻게 알았으랴. 모든 경험은 첫 경험으로부터 시작되고 첫 경험이란 이전의 어떤 것도 안겨준 적 없는 정서적 공황상태에 던져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닌가. 슬픔 역시 첫 경험은 이후의 모든 슬픔의 전범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슬픔이란 것은 모든 것을 일시 멈춤의 상태로 만들었다. 유보하게 하고, 지체하게 했다. 형진은 말 그대로 슬픔에 잠겼다.
- p.25
방현희 지음 | 답 | 280쪽 | 13,000원
김이은 작가의 소설 '11:59PM 밤의 시간'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인간 내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악해질 수 있는지,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점점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런 무너짐과 악해짐의 원인이 그 사람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주변 사람과 이 시대 이 사회의 주류 가치관의 왜곡과 무너짐에 더 크게 있음을, 또 그렇기에 그것을 멈출 수 있는 힘 역시 그 주변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비슷한 것들을 소비하면서 비슷한 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상을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누구나 욕망하는 것은, 꿈꾸는 것은 브랜드 있는 삶이라고 믿고 있다. 이 소설 속의 해선 브랜드를 경멸하면서도 동경하고, 욕 하면서도 꿈을 꾸는 것처럼.
이 시대는 품격 있고 가치 있는 삶이란 남들과는 다른 더욱 훌륭하고, 아름다운 브랜드 상품들-브랜드가 있는 차, 브랜드가 있는 아파트, 브랜드가 있는 옷, 구두, 시계, 백 등-
을 소비하고, 향유하고, 소유하는 것이라고 부추긴다.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욕망이, 희망이, 꿈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약간의 변절과 사기성이 짙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이 나쁜 거라 말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지 못할 때 생기는 박탈감에 더 분노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디까지 가면 우리는 이러한 소유와 소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세상 속 소비 마케팅에 속고, 사람에 속고, 그리고 서로의 허상에 속고 속아 상실감과 허전함 속에 우리는 지금도 허우적대고 있다.
책 속으로술과 수면제에 취해 몸을 흔들던 동식이 먼저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문자는 졸린 눈을 부비면서 마지막 카나페를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해선은 문득 상스럽고 추잡한 말들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 말들을 했을 때 어 떤 효과가 생겨날 것인지 궁금했다.
브라도 하지 않아 조롱박처럼 축 늘어진 젖퉁이에다 배는 또 돼지처럼 튀어나와 있는 문자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다리를 잘라버리면 오뚝이처럼 둥글게 굴러다닐 거야. 다리가 없어지면 똥구멍으로 바닥을 밀어서 벌레처럼 꾸물꾸물 기어 다니려나.’
기분이 좋았다면 진심 어린 걱정을 담아 문자에게 살 좀 빼 라며 한마디 건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해선의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