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두고 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의 국회법 위반을 주장하며 정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교섭단체대표와 '협의' 여부가 핵심인데 헌법재판소는 협의 방식에 관해 국회의장의 폭 넓은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다.
정세균 의장은 지난 23일밤 국회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던 중 자정이 가까워오자 차수를 변경해 김재수 장관 해임안건을 상정했다.
차수변경은 '의장은 각 교섭단체대표와 '협의'해 회기 전체 의사일정 일부나 당일 의사일정 안건 순서 등을 변경할 수 있다'는 국회법 제77조를 적용한 결과다.
국회법은 77조 외에도 다양한 의사 진행 상황과 관련해 '의장과 각 교섭단체대표 간 협의' 규정을 곳곳에 두고 있다.
◇ 정진석 원내대표 "협의가 아니라 종이쪽지 전달"그러나 새누리당은 "'협의'는 없었다"며 '정 의장의 해임안 처리는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26일 의원총회에서 "23일 밤 국회 사무처 의사과장이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에게 '의사일정'이라는 종이 한 장 전달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정 원내대표는 "이를 의사일정 협의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지만, 종이쪽지 전달이지 협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3일 자정이 임박한 오후 11시 40분쯤 의사과장이 김도읍 수석부대표에게 본회의 차수 변경을 위한 '회기전체의사일정변경안' 등을 구두로 설명했다.
의사과장은 구두 설명을 마친 뒤 의사일정변경안 문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김도읍 수석부대표는 수령을 거부했다.
이 같은 의장실 측 시도는 과연 여당 주장대로 국회법상의 협의가 아닐까?
◇ 헌재, 반대 정당과 협의 아예 생략해도 하자 불인정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간의 권한쟁의' 심판 사건 두 건(사건번호 '2006헌라2'와 '2010헌라6') 결정이 주목된다.
2006헌라2는 2005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장이 국회법을 어겼다며 한나라당이 청구한 사건이다.
열린우리당 출신인 김원기 의장이 당일 의사일정에서 다섯 번째 안건이던 사학법 개정안을 제일 먼저 상정하면서 야당 원내대표와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때처럼 국회법 77조 위반이 논란이었다.
그러나 헌재는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한나라당 청구를 기각했다.
국회법상 '협의' 개념은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는 절차라는 성질상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고, 그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종국적으로 의장에게 맡겨 있다는 게 결정 요지였다.
특히 헌재는 당시 김원기 의장이 이번 정세균 의장과 달리 한나라당과 협의를 시도조차하지 않았는데도 국회법상 협의 절차의 하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학법 상정 자체를 반대하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협의는 실질적 의미가 없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 전화 일방 통보도, 팩스 송부도 모두 협의로 인정돼2010헌라6 사건은 2010년 12월 8일 본회의에서 이듬해 예산안 등 처리와 관련해 여당인 한나라당 출신 의장이 국회법상 협의 조항을 위반했다며 민주당이 청구한 것이다.
이 사건은 박희태 의장 위임을 받은 한나라당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예산안 등의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이를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는 과정이 논란이었다.
당시 국회법 85조와 93조의2는 각각 심사기간 지정과 직권상정에 의장과 각 교섭단체대표 간 협의를 규정했다.
정의화 부의장은 심사기간 지정 방침은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전화로 야당 원내대표에 통보하도록 했고, 직권상정 계획은 팩스 송부만으로 협의 절차를 대신했다.
앞서 2006헌라2 사건과는 여야가 뒤바뀌었지만, 헌재 결정 요지는 변함이 없어 2010헌라6 사건에서도 야당의 청구는 기각됐다.
비서실장의 전화 통보와 팩스 송부 모두 국회법상 협의 절차로 인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