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광일 기자)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최근 숨진 농민 백남기 씨의 유가족과 의료·법률 전문가들이 시신을 부검하겠다는 경찰을 비판하고 나섰다.
유가족과 변호인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등은 27일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검 반대를 주장했다.
상복을 입은 백 씨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이날 "경찰의 손에 의해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절대로 또다시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며 "이미 경찰이 확보하고 있는 10개월간의 의료기록이면 충분히 고인의 사인을 규명할 수 있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이어 "사고 직후 담당 의사는 수술 후 모든 약물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신장이 워낙 건강하시다는 점을 들었다"며 "경찰이 계속 우기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급성 신부전증(질병사)'라는 병원의 사망진단을 토대로 사인을 명확히 하겠다며 시신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 검찰과 함께 재청구했으나 법원의 추가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은 상태다.
이에 대해 인의협 이보라 전문의는 "급성 신부전은 물대포 충격 이후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하고 온갖 약물 투여를 통한 합병증이므로 기저질환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것을 근거로 질병사라고 한다거나 부검을 한다는 건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건의료연합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대한의사협회나 통계청에서도 원 사인(외상성 뇌출혈)을 사망원인으로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며 "교통사고 환자가 나중에 장기부전으로 돌아가셔도 교통사고를 사인으로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뇌출혈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며 "논쟁거리도 안 되는 걸 경찰은 의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호인단을 포함한 법률 전문가들은 경찰이 부검 영장을 통해 범죄 혐의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유가족 측 변호인단 이정일 변호사는 "사고 당시 '빨간모자 사나이'의 경우 백 씨 방어를 위해 앞으로 나서다 물대포를 맞고 중심을 잃으면서 어르신의 배 부분을 짚었다"며 "사망 원인인 '높은 곳에서 떨어진 정도의 충격'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부검은 다른 방법으로 사인을 밝힐 수 없을 때 필요성이 인정되는데 이 경우는 숨지게 된 과정을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고 사진과 동영상이 있는데 경찰이 자꾸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단 측은 이날 오후 유가족의 입장을 담은 탄원서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