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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그림, "현대의 여성 편견은 그때부터 반영"

책/학술

    빅토리아 시대 그림, "현대의 여성 편견은 그때부터 반영"

    신간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필립 칼데론, <깨어진 맹세>, 1856, 캔버스에 유채, 91.4x67.9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결혼생활 중에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여자는 동정섬을 유발하는 장면으로 연출되곤 했다. 그 중 인기 있었던 작품 중 하나가 필립 칼데론의 <깨어진 맹세="">이다. 이 그림은 판화로 쓰이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여자 한 사람밖에 없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부 세 사람이 등장한다. 우선 벽에 기대에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는 여인이 전면에 묘사되어 있다. 여인의 손에 반지가 끼워진 것으로 결혼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발밑에 떨어진 팔찌로 보아 그녀의 결혼이 평탄하지 않을 것이 느껴진다.
    울타리 뒤쪽으로 남자의 옆얼굴이 보이는데, 아마도 반지와 팔찌를 끼워준 남자일 것이다. 남자는 모자 쓴 금발의 여자에게 장미꽃을 건네며 유희를 즐기고 있다. 핑크빛 장미는 막 피어오르는 사랑을 의미하는 꽃이다. 그림의 왼편 아래, 울타리 안쪽에 서 있는 여인의 치맛자락 근처에는 힘없이 시든 아이리스가 보인다. '잃어버린 사랑', '말없는 슬픔'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다. 사랑은 울타리 밖에서만 피어나고, 안에서는 아픔으로 말라 죽어간다. -80~82쪽

    우리는 혹시 또 다른 빅토리아 인들이 아닐까?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에서는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미술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 미술을 지금 선보이는 이유,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단독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해마다 증가하고, 결혼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제도이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그런만큼 가족 단위보다는 개인 단위로 삶의 환경이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게 쉽지 않다. 결혼이 고정관념이 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인간을 결혼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때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였다는 것이다. 즉, 남자에게는 아버지로서 돈 버는 역할이 강조되고, 여자에게는 어머니로서 가족을 돌보는 임무가 덧씌워진 것이 이 시대부터이며, 아동에게는 자녀답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면모만을 기대하기 시작한 것도 빅토리아 시대부터였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때가 “결혼과 성이라는 기준”을 통해 여자를 매우 구체적으로 분류해서 편견을 강화한 시기라는 점을 두번째 이유로 든다. “나이가 찼는데도 청혼 받지 못하면 ‘문제 있는’ 여자, 결혼은 안 하고 오랜 연애 상태에 있으면 ‘알 수 없는’ 여자. 그 밖에도 남편을 먼저 죽게 만든 ‘기 센’ 과부, 호색기가 있는 ‘밝힘증’ 여자, 남자 대신 생활비를 버는 ‘가엾은’ 여자, 직업적 야망이 커서 ‘가정에 위협적인’ 여자, 책을 과하게 읽어 따지기 좋아하는 ‘피곤한’ 여자, 피임을 하며 몸의 자유를 즐기는 ‘이기적인’ 여자, 자전거를 타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남자 같은’ 여자 등, 입담에 오르내리던 여자들의 종류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여자에게 들러붙어 있는 고질적인 편견들에 대해 논하려면, 빅토리아 시대의 여자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필수”라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결혼과 가족’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편견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빅토리아 시대 라파엘전파의 그림’을 통해 살펴볼 것을 권한다.

     

    아름다운 명화와 여자는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었는가

    라파엘전파의 그림은 그 동안 ‘아름다운 그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림’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림의 소재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자들’이며, 그들은 나른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색채 또한 화려하다. 19세기 영국의 회화는 ‘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철학과 미학을 기반으로 한 현대미술이나 상징의 언어로 싸여 있는 중세나 르네상스 미술에 비해, 관람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아름다운 명화’라고 부르는 이 작품들에는 ‘아름답다’라는 수식어 하나로 넘길 수 없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가 다수 숨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사회적 함의와 비밀 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고정관념의 역사, 특히 여자에 대한 편견의 역사적 맥락을 ‘그림’이라는 단서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지금 우리의 모습을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런 사회적 분석은 물론이고,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여자 이미지를 그리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을 교차시킨 미술사적 분석 또한, 놓치지 않고 이 책에 담았다. 가정이라는 영역에 갇힌 여자들처럼 세상 안에 갇혀 자유를 꿈꾸던 예술의 위상에 대해서도 논한다.

    당시 영국 왕립 미술원에서 최고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며, 영국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진보적인 예술가 단체가 라파엘전파였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존 에버렛 밀레이 등의 20대 중반의 젊은 왕립 미술원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던 단체로, 당시 산업화로 인한 자연파괴와 물질주의를 배격하며 미술은 기본적으로 창조적인 영역이라는 신념을 기본으로 한다. 이들의 신념이 그림 속 여성의 이미지와 맞물리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우리의 미술사적 지식을 확장시켜준다.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를 ‘여자’ ‘결혼’ ‘정상과 비정상의 분류’ ‘노동’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라는 주제로 살피면서도, 우리가 그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디테일한 장면들을 포착하여 “빅토리아 키워드”라는 코너를 통해 미술사적 정보를 한번 떠 꼼꼼하게 짚어준다. 빅토리아 시대의 명화 뿐만 아니라 그림에 영향을 준 시와 신화 소설, 그리고 분석틀을 제공하는 예술론, 사회학 이론을 흥미진진하고 짜임새 있게 소개한다. 70점의 명화 도판이 실려 있어 생생하고 실감나는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책 속으로

    마음을 주었던 남자에게서 버림을 받으면, 진지한 사랑에 혐오를 느껴 잠시 향락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어진다. 테세우스를 떠나보낸 아리아드네가 방탕한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와 사귄 것은 그런 차원에서가 아니었을까?-20쪽

    적령기에 결혼해서 어머니가 되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유일한 행복이라고 간주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오래도록 독신의 수도생활을 해야 하는 수녀의 모습을 이상화한 것은 예의적이다. 이것은 시대의 여성상이 아니라 시대의 예술가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술만을 소명으로 사는 예술가의 순수한 의지가 폐쇄적인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수도자의 이미지로 재현된 것이다. -48쪽

    <깨어진 맹세="">가 1856년에 발표되고, <너무 늦었어요="">가 1858년에 제작되어 그 이듬해에 전된 데에는 1857년 결혼 법안 통과하라고 하는 뜨끈뜨끈한 사회적 이슈가 하나 걸려 있었다. 여성이 시민의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고, 기혼녀의 법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던 시절의 여자에게 결혼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기혼녀가 처할 최악의 상태를 피하고자 1857년 결혼법안은 여성의 최소한의 권리를 명시해놓았고, 이로써 드디어 여자에게도 이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가령 남편은 아내가 간통했을 경우 곧바로 이혼할 수 있지만, 아내의 경후 남편의 간통 외에도 근친상간, 잔혹행위, 중혼, 강간, 2년 이상의 유기 등 복합적인 위법행위로 죄질이 아주 나쁜 경우에만 이혼 소송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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