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9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의 신빙성과 세부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사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원장은 이날 국정원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관여' 여부에 대해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국정원장의 공식 견해'라고 규정했고, 민주당은 "사견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이완영 의원은 국감 직후 브리핑에서 '나의 질의'라고 소개한 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제일 먼저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자고 제기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원장이) '맞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김 전 원장이 '남북경로를 통해 확인해보자'고 한 데 대해 문 전 대표가 '그렇게 하자'고 결론 낸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도 원장은 답변했다"며 이 원장의 구체적인 워딩에 대해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공개했다.
이 의원이 전한 이 원장의 발언은 여야 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예민한 사안이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우리 정부가 지난 2007년 11월21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기권' 표결을 하기 직전 같은 달 18일 김 전 원장이 북측에 의견을 구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문 전 대표가 '그렇게 하자'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북측에 의견을 듣고 결정하자고 발상한 자체가 상상할 수 없다"며 "황당하고 이해가 안 된다. 수치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이 의원이 전했다.
이밖에 또 다른 쟁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권' 결정 시점에 대해서도 이 원장은 '11월20일'로 답변했다. 이 원장은 "회고록은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라며 "근거를 갖고 치밀하게 기술돼 있다"고 했다고도 했다.
이 의원은 이 원장 증언의 신뢰도에 대해 "계속 'NCND(긍정도 부정도 않음)' 얘기가 나오는데 분명히 국정원장은 '자료 요청에 대해선 NCND, 회고록에 대해서는 NCND가 아니다'고 했다"며 "야당 의원들이 '사견 아니냐'고 한 표현에 대해서 '국정원장으로서 오늘 질의응답에서 나온 공식적인 얘기'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라며 이 의원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 원장이 공식적인 위치에서 답변을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이 원장이) 자기 개인적인 생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자기 상식적으로 볼 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저희(민주당) 의원들이 '자료에 근거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자료를 본 것은 없다'고 했다"며 이 원장 발언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했다.
김 의원은 "이 원장이 '공식적인 의견'에 대해 물으니 'NCND'라고 해서 사안을 재차 물으니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보기에 대답한 것 뿐인데 내 의견의 진의가 왜곡됐다면 그것은 언론이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도 했다.
이 원장은 주관적인 견해와 해석, 평가 등을 언급한 것일 뿐인데, 새누리당이 아전인수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에 대해 "최씨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여러 행적을 보이고 있는데, 기업‧기관과 접촉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직원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점검해달라고 (야당이) 요청했다"며 "이 원장이 '아는 바는 없지만, 알아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보위 국감에 참석한 여야 간사의 엇갈린 주장은 이 원장의 견해를 공식 입장으로 보느냐, 사견으로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에 근거한다.
여야는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의 신뢰도를 판단할 수 있는 한 자료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20일 북한 측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쪽지(혹은 대북동향보고)'를 꼽고 있다.
이 원장은 자료 공개 가능성에 대해 "계속 찾아보고, 조금 더 검토해본 후에 추후 기회가 있을 때 답변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이 의원이 전했다.
당초 국감 초반 새누리당이 자료를 공개하자고 한 반면, 민주당은 강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 원장이 회고록의 구체적인 사안에까지 '사실'이라는 견해를 밝힘에 따라 쪽지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