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두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내놨지만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통령 본인은 물론, 여당 지도부도 '권력 내려놓기'를 거부하면서 '박근혜 염증(厭症)'만 가중되고 있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5일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의 자진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김 내정자의 기대를 꺾는 관측이 잇따른다. 이미 국민의당 천정배 의원은 "김병준은 버리는 카드"라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김 내정자에 대한 신임 표시를 하는 대신,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자신의 권력 의지만 재확인했다. 김 내정자 발탁이 단순한 국면전환용 이벤트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권 관계자는 "야권 총리, 야권 비서실장, 2차 사과에 이어 박 대통령이 더 내놓을 카드라면 '총리 지명철회'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한발 물러서는 모습으로 야권의 한발 양보를 얻어낸다는 얘기지만, 이미 '정권 퇴진운동'까지 거론하는 야권에 후퇴 명분으로 작용하기에는 미흡하다.
박근혜정권의 한축이자, 최순실 사태의 공동정범인 새누리당의 지도부도 사태수습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자리 보전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이정현 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도 "시간을 갖고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내놨다.
이탓에 의원총회에서는 친박계·지도부와 비박계 간 욕설이 오가는 설전을 벌였다. 유일한 비박계인 강석호 최고위원만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에서 새누리당 계파간 내홍만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도 못하는 사람들이 알량한 자리 욕심만 부린다"(비박계 인사)는 한탄이 나온다.
여권의 지리멸렬한 행보는 '하야 민심'만 키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악의 '한 자릿수' 국정 지지율을 확인했고, 주말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는 서울에만 20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몰렸다. 하야 촉구 집회는 다음주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야권은 '대통령 2선 후퇴' 없이는 아무 협조도 할 수 없다고 벼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조만간 야당 대표들과 회동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야권은 총리지명 철회, 대통령 탈당 및 특검수사 실시 등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 "국민의 뜻을 거역한다면 국민과 함께 정권퇴진 운동에 들어갈 것을 재차 경고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SNS에 "(요구조건을) 조속히 실행하지 않으면 민심대로 하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