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자료사진=윤창원 기자)
2014년 1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아젠다 2020'을 발표했다. 올림픽 개최국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변 도시나 나라에서 대회를 분산 개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경우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는 경기장 건설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은 아젠다 2020의 가장 직접적인 대상이었다. 경기장 신축이나 개보수에 들어갈 비용을 아껴 대회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개최 도시의 자존심에 상처가 갈 수 있지만 현실적인 경제적 효과는 확실했다.
이에 따라 평창올림픽도 분산 개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아이스하키나 빙상 종목 등을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에서 치를 경우 수천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절감될 수 있었다. 그해 치러진 인천아시안게임이 200억 원 가까운 적자가 났고, 사후 경기장들의 활용에도 매년 약 10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이었던 만큼 평창 대회의 분산 개최는 상당한 힘을 받았다.
다가올 테스트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강릉 빙상장.(자료사진=평창 조직위원회)
일례로 아이스하키 경기장만 하더라도 강릉 신축보다 서울의 시설을 이용하면 1500억 원 정도가 절약된다. 1만 석 규모의 잠실 수영장과 6000석이 가능한 목동 아이스링크를 각각 남녀 경기장으로 개보수하면 약 350억 원이면 되지만 강릉 지역 신축은 2000억 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북미아이스하키(NHL)의 특급 스타들이 머물 도시는 5성급 호텔이 있는 서울이 적격이었다. 강원도 지역은 이들이 머물 만한 숙소가 전무한 상황.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당시 국제연맹에서도 아이스하키의 서울 개최는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밝혔다.
여기에 빙상 종목까지 서울에서 열린다면 많은 관중까지 올림픽 붐 조성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장 등 최대 1조 원 가까운 예산이 절약될 수 있었다.
▲대통령 반대, 최순실 씨의 입김이었을까하지만 분산 개최 논의는 한번에 없던 일이 됐다. 그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까닭이다. 박 대통령은 12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분산 개최 불가 원칙을 확고하게 밝혔다.
이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의아하게 여길 만큼 뜻밖의 상황이었다. 문체부 실무진은 이미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에 관련한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평창 대회의 가장 큰 목표가 '경제올림픽'이었던 만큼 비용 절감을 위해 충분히 분산 개최를 검토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불가 방침을 세우면서 논의는 멈춰섰다. 당시 문체부의 한 실무자는 "보고까지 준비를 다 했는데 대통령이 비서관 회의에서 반대를 하면서 모든 논의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현 정권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자료사진)
체육계에서는 여기에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원도 평창 일대 부동산을 대거 매입한 최 씨 일가의 올림픽 특수를 위해 분산 개최를 막았다는 것이다. 분산 개최가 되면 어쨌든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여기에 사후 경가장 활용에도 최 씨 일가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 씨의 조카 장시호가 사무총장을 맡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올림픽 이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사후 운영권을 따내려던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분산 개최 불가 방침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는 의견도 적잖다. 당시 아젠다 2020이 발표되자 일각에서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는 일본 나가노와 분산 개최 얘기도 나왔다.
여기에 북한 마식령 스키장과 전북 무주 등 현실성이 떨어지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강원도민의 반발까지 이런 어수선한 상황을 박 대통령이 정리해야 할 필요성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은 왜 극구 부인했을까하지만 그럼에도 분산 개최 논의가 단박에 쑥 들어간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나가노와 북한 등은 비현실적이더라도 아이스하키와 빙상 종목의 서울 개최는 충분히 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IOC까지 나서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려는 방안을 제안한 상황이었다. 철거와 존치 등 사후 경기장 활용 방안을 놓고 각 의견이 첨예하게 맞선 것을 감안하면 분산 개최 논의는 한번쯤 진지하게 이뤄졌어야 했을 부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사퇴한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발언이다. 당시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에 대해서는 전혀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10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와 관련해 문체부의 검토는 전혀 없었다"면서 "논의를 했다는 것은 언론 보도에 의해 나온 것일 뿐 문체부 내에서는 아예 검토조차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보고까지 준비했다는 실무진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자료사진)
김 차관은 사퇴 전까지 '체육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올림픽 분산 개최라는 중대한 사안과 관련해 문체부 실무진이 보고를 준비했던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실무진이 '실세 차관'에 보고도 하지 않고 예민한 사안을 검토할 리는 만무하다.
만약 김 차관이 잡아떼는 것이라면 그 목적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박 대통령 구하기다. 만약 분산 개최 검토가 있었는데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면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아예 검토조차 없었다고 해야 대통령의 반대 의견도 그나마 무리가 없는 모양새가 된다.
만약 정말 실무진의 준비를 몰랐다면 김 차관은 무능한 상관이 된다. IOC가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주무 차관이라면 분산 개최를 실무진에 한번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려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김 차관은 그러나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는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러면 대통령이 의혹에 쌓이고, 저러면 무능하게 되는 진퇴양난의 문체부와 김종 전 차관이다.{RELNEWS: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