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탄핵반대 집회를 갖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친박단체들이 주도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맞불집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그 이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맞불집회 현장에는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의 친형인 이재선 씨가 "박사모 성남지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극우매체) 미디어펜의 보도에 의하면, (전 대통령) 이명박이 반박(反朴)에 서고, (미소재단에서) 2조 이상의 돈을 거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걷은) 800억 원이 무슨 문제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는 "이명박은 3표가 헌법재판소에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2표, 새누리당 1표가 있습니다"라며 ""만약에 이게(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통과·인용 된다면 이명박이 반박에 선 결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현재 헌법재판관 9명을 추천, 임명했던 주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3명씩 추천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을 맡고 있는 박한철 재판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이상 이 씨가 주장하는 '이명박 3표')했다.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박 대통령(2표)이, 안창호 재판관은 여당(새누리당 1표)이 각각 추천해 임명됐다.
그는 "이명박은 해외 투자로 1조 4000억 망했습니다"라며 "UAE 원전 신규 가설은 거짓말"이라고 주장을 이어가며 이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날 맞불집회 현장에 뿌려진 '이명박 前(전) 대통령도 촛불 편이신가요?'라는 제목을 단 유인물 역시 '새누리를 분당시켜 또 다시 패거리 정치 장사를 하실 작정입니까?'라며 이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가세했다.
전 서울시 재향군인회장 김모 씨 명의로 된 이 유인물은 '(가칭 개혁보수신당은) 분당의 명분으로 박근혜정부의 정체성을 거론하는데 오히려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 폐쇄, 통진당 해산 등 보수의 가치를 확실히 지켰다고 보는데 한마디로 적반하장입니다'라며 '오히려 이명박정부가 정치적 자살골인 중도통합으로 좌 클릭하여 보수가 지리멸렬하여 천신만고 끝에 정권재창출이 된 것을 잊으신 겁니까?'라고 이 전 대통령을 질타했다.
이어 '보수당의 제 모습을 찾지 않은 상태에서 분당은 재앙입니다. 더구나 거짓 촛불이 겁나 뛰쳐나간 자들은 사내도 아닙니다. 당초 친박이 잘못은 했지만 촛불이 겁나 공소장과 언론기사로 탄핵에 찬성한 저 비겁자들은 곧 폐족이 될 것입니다'라며 이 전 대통령과 탈당파를 싸잡아 맹비난했다.
◇ "'탈당파는 개혁보수 아닌 이명박 추종 배신자' 낙인 찍기"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탄핵반대 집회를 갖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박사모 등이 이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데 대해 논객들은, 새누리당 탈당파를 견제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차단 또는 희석시키려는 친박세력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보수층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은 3일 "새누리당 탈당파 상당수가 친이계이고 이명박도 (새누리당을) 탈당하겠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저들(친박단체)은 탈당파가 배후에 있는 이명박이라는 흐름 안에서 뭉쳐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10년 동안 보수가 집권하면서 이회창 등은 이미 보수의 유실된 유산이 됐다. 결국 좋든 실든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커다란 흐름이 만들어진 셈인데, 이명박이 실용적·친경제적 흐름이라면 박근혜는 이념적·고전적 흐름이다. 친이계를 중심으로 탈당이라는 현상이 일어난 상황에서 자연스레 보수층의 내부 갈등이 큰 문제로 떠오른 건데, 보수 내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 소장은 "친박세력 입장에서 탈당파의 배후에 이명박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굉장히 강한 생존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것 같다"며 "결국 시간이 지나면 보수 내에서 어떤 식으로든 (합당이나 흡수 통합 등의) 재편이 이뤄질 텐데, 이 점에서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또 하나의 흐름에 대한 견제·차단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는 작가 최준영은 같은 날 "(박사모 등의 이명박 까기는) 다목적용"이라며 '폭탄 돌리기' '박근혜의 부정부패 희석' '탈당파 명분 없애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먼저 폭탄 돌리기는 자기들(친박세력)에게 떨어질 폭탄을 이명박에게 돌리는 의미가 있다. 이명박은 직전까지 공적이지 않았나. 이명박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박근혜의 그것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부정부패의 규모 비교를 통해 (이명박이라는) 새로운 타깃을 만들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만약 그런(이명박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는 인물이 나름 정치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라면, '친이계로 대표되는 비주류 탈당파들은 배신자'라는 논리를 펴는 것"이라며 "친이계를 중심으로 '개혁보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탈당한 것은 논리적으로 명분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봤다.
결국 "탈당파의 주모자·원격조종자가 이명박이라고 내세움으로써, 탈당파가 보수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명박을 추종하는 배신자일 뿐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최준영은 "친박세력의 주장은 모두 논리나 근거 자체가 없는 어거지로 봐도 무방한데, 헌법재판소에 '이명박 3표' '박근혜 2표'가 있다는 주장 역시 원거리 상상으로까지 나아가 어거지가 심해진 데 따른 결과"라며 "논리적 연관관계를 따져 보면 저들의 주장은 '맹탕'이다. 어거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끼워 맞출 수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저들(친박세력)의 생각은 양가적이다. '친박 물러나라'고 딴지 걸며 당 내 분란을 일으키던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떠나는 것에 대해 시원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탈당파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자신들을 위로하려는 심리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