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 임상욱 매니저. 경기 사진 중 매니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KBL 제공)
농구 코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코트 위를 누비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주연으로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조연들도 필요하다.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니저를 비롯해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주는 트레이너, 상대를 면밀하게 파악해주는 전력분석원, 그리고 외국인 선수의 손발 역할을 하는 통역까지. 농구 코트의 숨은 조연들에게도 잠시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보려 한다.[편집자주]
매니저(manager). 사전에 따르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의 일정을 관리하고, 그와 관련된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다만 프로농구에서 매니저의 역할을 사전적 의미로만 단정 짓기는 어렵다. 사전적 의미처럼 선수단 일정 관리도 하지만, 실제 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굳이 쉽게 표현하자면 선수단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역할이다.
매니저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
일단 선수단의 이동 스케줄과 원정 숙박을 책임진다. 또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식당 섭외도 매니저의 몫이다. 선수들의 간식, 또 선수들에게 필요한 물품도 모두 매니저를 거쳐 지급된다. 의식주 해결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선수, 선수단과 사무국의 중간 네트워크 역할까지 한다. 이처럼 경기 외적인 부분은 모두 매니저가 맡는다고 봐도 과장은 아니다. 경기 때는 엔트리 등록과 기록 등도 책임진다.
모비스 임상욱(33) 매니저는 "스케줄을 감독님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간식이나 필요한 물품, 농구화 같은 경우도 선수들이 고르면 내가 사서 전달한다"면서 "선수단이 편하게 운동만 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KGC 황정하(35) 매니저는 "의식주는 다 매니저가 해결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한다. 항상 매니저는 코칭스태프와 선수의 중간, 프런트와 선수단의 중간, 딱 중심에 있어야 한다. 선수들은 물론 스태프들도 챙긴다. 뒤에서 지켜보는 직업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만큼 10개 구단 매니저 모두 선수 출신. 특히 처음 시작하는 매니저의 경우 대부분 감독들이 뽑는다. 선수 출신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
쉬운 일은 아니다.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만약 원정 경기가 연장이라도 갈 경우 섭외한 식당이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매니저 경력이 쌓이면 식당에서도 알아서 선수단을 기다려준다. 또 설 연휴 이동 스케줄을 잡는 것도 애를 먹는 일 중 하나다.
황정하 매니저는 "가장 힘든 일은 스케줄을 잡는 것"이라면서 "원정에서 식당을 잡아놨는데 연장을 가면 문을 닫을 시간이 된다. 처음에 가장 힘든 일이다. 다만 오래 가다보니까 기다려준다. 또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신경도 잘 써준다. 어딜 가든 선수단이 편하게 이동하고, 스케줄 차질 없이 딱딱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욱 매니저도 "원래 원정 이동시 비행기를 탄다. 미리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감독님이 한 번 설 연휴에 KTX를 타고 가자고 하셨는데 새벽 6시에 ‘땡’하자마자 클릭했는데도 몇 만명 대기가 있었다. 물론 그럴 때는 감독님도 인정해주신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역할 중 하나가 기록이다. 맨 오른쪽이 KGC 황정하 매니저. (사진=KGC 제공)
이런 사정 덕분에 10개 구단 매니저들은 정보를 공유한다. 자주 가던 식당이 문을 닫았을 경우, 평소 쓰던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서로 해결책을 준다. 경기 전 훈련 스케줄 공유는 필수다.
선수단을 챙기다보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임상욱 매니저의 경우 선수단 식사를 위해 고속도로에서 내린 뒤 편의점을 찾은 경험도 있다.
임상욱 매니저는 "훈련을 위해 울산에 내려갈 때 비가 너무 많이 와 도로가 잠겼다. 고속도로에서 계속 멈춰있는데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면서 "트레이너 2명과 고속도로에 내려 밖으로 나간 뒤 편의점을 찾아 빵을 사서 버스에서 먹였다. 조금 난감했었던 기억"이라고 웃었다.
매니저는 선수단과 늘 함께 움직인다. 황정하 매니저는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늘 선수단과 함께"라고 표현할 정도.
가족이 있는 매니저들에게는 가장 힘든 점이다.
임상욱 매니저는 "집을 자주 못가는 탓에 와이프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면서 "한 달에 1~2번 집에 가도 밤에 들어갔다가 다음 날 저녁에 숙소로 돌아온다. 매니저라는 직업이 선수단을 잘 돌아가게 먼저 생각하고, 밑에서 일하는 직업인데 정작 가족에게는 소흘해진다"고 말했다.
당연히 기쁠 때는 경기에서 이길 때. 또 선수들의 "고맙다"는 표현에도 힘들었던 기억도 눈 녹듯 사라진다.
황정하 매니저는 "경기에 이기고 식사할 때, 이동할 때가 가장 기쁘다"고 강조했고, 임상욱 매니저는 "선수들이 고마워해주면 가장 뿌듯하다. 또 순조롭게, 막힘없이 돌아가면 스스로 뿌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