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황교익 출연금지 사태 미해결'을 이유로 생방송 대담에 불참한 대선 후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보도'로 유감을 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잇따라 성명을 내어 KBS의 행태를 비판했다.
문 전 대표는 25일 방송 예정이었던 'KBS 특별기획 대선주자에게 듣는다' 대담에 불참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전문가 모임 '더불어포럼'의 공동대표 황교익 씨가 KBS로부터 출연금지 통보를 받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KBS는 같은 날 공식입장과 '뉴스9' 보도를 통해 문재인 전 대표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날 '뉴스9'는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황 씨 출연을 제재할 적확한 문구가 있는 양 자막처리를 하고 △'아침마당' 허완석 CP 인터뷰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발언으로 황 씨와 문 전 대표를 비판하며 △'국민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게 돼 송구스럽다'는 KBS 대담 제작진 입장을 담은 리포트를 내보냈다.
◇ 새노조 "불참 빌미 제공한 건 KBS, 대선주자 비난만"
지난 25일 방송된 KBS '뉴스9' 리포트 (사진=뉴스9 캡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는 26일 성명을 내어 "'뉴스9'는 '문재인 출연 거부'라는 자막 아래 문 전 대표가 KBS 대선주자 좌담회에 불참을 통보한 것에 대해 사실관계까지 왜곡해 가며 비난했다"며 "어느 언론사보다 정치적 중립과 공정한 선거보도에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 KBS가 공정보도는 고사하고 아예 선거판에 뛰어들어 특정 대선주자 죽이기에 나섰다"고 질타했다.
새노조는 "문 대표 측이 불참을 결정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것은 우리 KBS였다. 교양프로그램인 '아침마당' 측이 문 대표를 공개 지지했다는 이유로 황교익 씨의 출연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면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그래놓고 반성 없이 상대방에 대한 비난만 늘어놓았다"고 밝혔다.
새노조는 '아침마당' 제작진이 주장한다는 방송출연 관련 조항은 '선거보도'에 적용하는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분야별 세부 준칙' 중 하나라는 점을 들어, "음식 강연하는 '아침마당' 코너가 선거보도인가"라고 반문했다.
새노조는 또한 "당초 노조에게는 방송 예정일이 2월이라고 해명하다가 며칠 전부터는 3월이었다고 '아침마당' 간부는 주장하고 있다. 보도에서도 이런 주장이 그대로 방송됐다"면서 "2월이 됐든 3월이 됐든 선거법이 정한 선거기간은 선거일 전 23일부터로 현재 유력하게 떠오른 4월 말~5월 초 선거일을 기준으로 볼 때 녹화 및 방송일은 선거기간이 시작되기 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노조는 방송사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해 일방의 주장을 전달하여 시청자를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나 있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 4항을 언급한 후, "제작가이드라인을 잘못 적용해 토론회 불참의 빌미를 직접 제공한 이해당사자, 좌담회 불참으로 방송 차질을 빚는 이해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상대방이 잘못한 일인 것처럼 뉴스를 통해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는 명백한 방송심의규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새노조는 KBS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불참으로 대선주자 토론회가 무산되었던 당시에는 '침묵'했던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2012년 11월, KBS는 대선 후보로 나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각각 초청해 사흘 간 토론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박 후보 측이 '여권 후보는 한 명인데 야권 후보는 두 명'이라고 불참을 선언, 토론회 전체가 무산됐다.
새노조는 "KBS는 이에 대해 뉴스를 통해 비판은커녕 언급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5년 전에는 한 후보 때문에 전체 토론회까지 취소했던 KBS가 이번에는 불참한다는 특정 대선주자만을 상대로 비난을 쏟아내는 이중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새노조는 "문 전 대표 측의 토론회 출연 거부 결정에 대해 조금도 옹호하거나 지지할 뜻이 없다"며 "다만 토론회 무산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대선을 앞둔 주자에게조차 외면을 받는 공영방송 KBS의 추락한 위상을 다시금 확인했기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전했다.
◇ 민언련 "KBS판 블랙리스트 비판 목소리 없어… 편파적 행태"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역시 27일 논평을 내어 KBS의 보도를 비판했다.
민언련은 25일 KBS '뉴스9' 보도에 대해 "이 보도만 보면 공정한 선거방송을 하기 위해서 원칙에 따라 불철주야 고심하는 자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 전 대표가 국민검증 기회를 거부하며 오기를 부리는 것으로만 읽히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민언련은 "거듭 강조한 듯이, KBS가 제시한 구절은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없고 그 조항은 황 씨에게 적용될 수 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KBS가 자막까지 넣어서 강조한 이 보도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의 입장만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도, 정작 'KBS판 블랙리스트'라는 비판적 목소리는 전혀 담지도 않았다. 이는 불공정하고 편파적 행태"라고 혹평했다.
민언련은 "황 씨의 출연을 금지시키고, 자신들의 편파적 행태를 반성하기는커녕 보도를 통해서 문 전 대표의 방송출연 거부를 비판하는 KBS의 현실은 '이명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꾸준하게 이어졌던 KBS의 '친정부·친여당'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민언련은 "KBS는 황 씨에게 사과하고 정상적으로 방송이 진행되도록 해야 마땅하다. 또한 KBS가 진정 이번 대선에서 공정방송을 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보다 엄밀하고 분명한 기준을 세워서 모든 출연자와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KBS "새노조, 특정 대선주자 편애… 방송 개입 중단하라"하지만 KBS 측은 새노조의 성명을 정면 반박하며 새노조에게 오히려 "방송과 선거 개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KBS 측은 보도본부·제작본부 명의로 26일 입장을 내어 "'공정성 가이드라인'은 총론격인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실무 상황에서 보다 정확히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세부 지침' 격이다. 법률 아래에 있는 시행령 같은 것인데, 그렇다면 시행령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KBS 측은 '아침마당'이 '선거보도'는 아니라면서도 "비정치 분야 방송에서 정치적 편향성이 있는 사람이 출연할 경우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정치색이 발현돼 프로그램과 공영방송 KBS의 중립적이고 공정한 이미지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정성 가이드라인'에 있는 선거기간이라는 표현은 선거법상 공식 선거운동기간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며 "새노조는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대선 23일 전까지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공영방송 보도나 프로그램에 출연시켜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KBS 측은 "2012년 11월 계획했던 토론회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 3명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상호 토론을 시키는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이번 대선주자 대담과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