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오락가락' 교육부…싹 사라진 '올바른 역사교과서' 표현

교육

    '오락가락' 교육부…싹 사라진 '올바른 역사교과서' 표현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브리핑실.

    이준식 교육부총리가 나와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결과와 2018년 국검정 혼용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이 부총리는 국정 역사 교과서 대신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표현을 시종일관 사용했다.

    "2017학년도에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희망하는 모든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하여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고 다른 학교에서는 기존 검정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의 현장 적합성을 높이고 교과서의 질을 제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달여가 지난 1월 31일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 완성본이 발표되는 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브리핑에 나선 이영 교육부 차관은 대신 언론에서 사용해온 '국정 역사 교과서'라는 표현을 줄곧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국검정 혼용방침이 정해진만큼 국정 교과서만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표현 대신 '국정 역사 교과서'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국정 교과서도 다른 검정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교과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부총리 발표 당시에도 국검정 혼용 방침이 서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국정 교과서 추진 동력 약화가 명칭변화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국정 교과서 명칭 뿐만 아니라 검정 교과서 내용에서도 나타난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냐'를 놓고 큰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민국 건국시기'와 관련해 국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하되 검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표현도 가능하도록 했다.

    그동안 의견수렴 과정에서 국정 교과서의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1157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정부는 '대한민국 수립' 표현만을 고집해 왔다. 건국절 논란에도 정부가 서술표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 대한민국 정통성 강화를 위해서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검정 교과서 집필기준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2015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수립이 적시돼 있기 때문에 검정 교과서도 국정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수립이 들어가야 한다'면서 '다만 표현상 어떻게 할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은 검정 교과서에서는 슬그머니 바뀌었다. 검정 역사 교과서 편찬기준에 유의사항으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출범에 대해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 유의한다"는 문구를 추가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을 전면 허용한 것.

    이와 관련해 이영 차관은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검정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도록 편찬 유의점을 정했다"며 "국민의 시각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 또는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비전문가로서의 저의 솔직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정부수립' 표현과 관련해서는 편법적인 허용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다.

    국정은 물론 검정교과서의 편찬(집필)내용과 방향을 규정한 '2015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수립'을 학습요소로 적시하고 있는데, 이를 개정하지 않고 하위 개념인 집필 유의점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을 허용한 것은 편법이라는 지적이다.

    교육과정을 개정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시간에 쫒기는 검정 교과서 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을 검정 교과서에 한해 허용한 것도 집필 거부를 선언한 검정 교과서 필진들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시기구분'이 중요한 요소인 역사과목에서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의 해로 볼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해로 볼 것인지 모호하게 혼용할 경우 수업과 수능준비 등에서 일선 학교의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김태우 회장은 "만약 학교 내신 시험이나 수능에서 대한민국 건국시기가 나왔을 경우 어떻게 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이라며 "교육부의 무책임한 행정이 학교현장의 불신을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가 '건전한 국가관과 균형있는 역사인식을 가르치겠다'며 무리하게 시작한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불필요한 갈등과 국민적 불신만 남긴 채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해 이영 차관은 브리핑에서 " 하나의 교과서만 쓰겠다는 취지 자체는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국정교과서를 둘러싼 혼란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동의한다. 어찌 됐든 교육부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포함돼 있던 사람으로서 사과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