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공여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재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5시간 넘는 고강도 조사 끝에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에도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검은 혐의 입증에 자신, 이르면 15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 한다는 방침이다.
전날 오전 9시 30분 특검에 두번째로 소환된 이 부회장은 자정을 넘겨, 15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이날 새벽 1시쯤 돌아갔다.
고강도 조사를 받은 뒤 특검 조사실에서 나온 이 부회장은 "순환출자 관련해 청탁한 사실이 있냐",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순환출자나 경영 승계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게 있냐"는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입을 굳게 다문 채 대기중이던 차량에 탑승한 뒤 빠져나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특검은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일가를 지원한 것이 삼성 합병을 넘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의 완수를 위한 대가로 보고, 박근혜 정부와 삼성간의 연결고리 전체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1차 소환 당시, 특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합병 이후 순환출자 고리 해결로 수사 범위를 넓힌 것이다.
특검은 합병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 1천만주에 대한 처분 결정을 내렸다가, 이후 절반인 500만주로 축소하는 과정에 청와대의 외압이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검은 공정위의 이같은 결정이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의 2015년 7월 독대 이후에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이 가능하도록 한국거래소가 규칙을 바꾸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는지 여부도 강도높게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삼성측 주장대로 '돈을 뺏긴 피해자'라면 이렇게 우회 지원을 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는 결국 '뇌물'과 관련한 정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최씨 지원은 청와대의 압박 때문이었고 그 대가로 특혜나 지원을 받은 게 없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교착상태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와 별개로 이번주중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전날 브리핑에서 "현재 상태로는 대통령 대면조사는 언제 이뤄질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 반면 이재용 부회장 영장 재청구 여부는 수사 기간을 고려했을 때 빠른 시한 내 결정될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며 "두 가지 사안은 일단 원칙적으로 별개로 진행한다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보름밖에 남지 않은 수사기간을 고려했을 때 특검이 대통령 대면조사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죄를 묻겠다는 강한 의지도 엿보인다.
아울러 특검이 영장 기각 이후 3주동안의 보강수사를 통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만한 새로운 증거나 단서를 확보한 데 따른 자신감으로도 읽힌다.
특검은 전날 이 부회장과 최씨 일가의 가교 역할을 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과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를 동시에 소환했다. 모두 피의자 신분이다. 특검은 세 사람에게 국정농단 의혹이 터진 이후 삼성이 최씨 일가를 지원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특검은 지난해 9월 박 사장과 최씨가 독일에서 만나서 우회 지원 방안과 정유라씨에게 새 말을 사주자는 논의를 한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얼마 뒤 정씨가 산 수십억원에 달하는 명마 '블라디미르'의 몸값을 삼성측이 대납한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특검은 이와 관련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인 지난해 10월 26일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가 박 사장에게 '금일 중 내부 결재 후 내일 송금 예정'이라고 보낸 문자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 서열 1위 삼성의 총수인 이 부회장의 운명은 이르면 15일 중 판가름날 것으로 예측된다.
또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피의자로 입건된 삼성 수뇌부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함께 결정될 예정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제외한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을 불구속 기소한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특검이 지난주 법원에 제기한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 불승인처분 효력정지 소송의 심문기일이 15일로 잡혀, 인용여부가 마지막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