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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문화 일반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 ①] 소문·모델·스캔들-여성문학의 탄생, 그 원초적 장면

    가히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2년 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전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문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비평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가 주관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사업단이 후원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도 그 흐름 중 하나다. 한국문학과 민주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이 강의는 13일부터 24일까지 평일 열흘 동안 이어진다. 총 10강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계속>

    1920~1930년대 '신여성'의 이미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치스럽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사진은 조선일보 1932년 1월 지면 (사진=문화콘텐츠닷컴)

     

    1920~1930년대의 '신여성'은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 선진문물을 경험했다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동안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고 여겨졌던 '집안일'을 제대로 못한다거나 사치스럽고 방탕하다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했다. 당대 여성들은 각자의 개성이 고르게 존중받지 못한 채, '신여성'이라는 이름 안에 갇혀 지냈고 그것도 모자라 공공연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첫 강의 '소문·모델·스캔들-여성문학의 탄생, 그 원초적 장면'을 발제한 심진경 교수는 하나의 믿음처럼 굳어졌던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대재생산된 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근대문학은 평범한 개인들의 사생활을 다룬다. 이 점이 고전문학과의 가장 큰 차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사생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관심의 대상이 됐는데, 사람들은 어떤 여성이 처녀인가 아닌가 하는 여부에 호기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이광수의 '무정'에도 나타나 있듯, 이 작품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은 '영채가 처녀인가 아닌가'이다. 이 문학적 재현의 대상이 되는 여성은 주로 성과 육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신여성'에 대한 소문이 원래 있던 가운데 남성작가들이 이를 작품 속에서 언급함으로써 신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더 활발하게 유통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여대 심진경 교수는 13일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첫 강의 '소문·모델·스캔들-여성문학의 탄생, 그 원초적 장면'의 발제를 맡았다. (사진=김수정 기자)

     

    심 교수는 "1920~1930년대 신여성, 모던걸에 대한 이미지는 사치스럽고 방탕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미지가 소문에 의해 유통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소설이었다. 많은 남성작가들이 신여성의 이미지를 문학적으로 재현해 더욱 더 확고한 하나의 여성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유명한 염상섭의 '제야'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굳힌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인이라는 여성은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 있음에도 방탕한 성생활을 하다가 다른 남성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결국 쫓겨난다. 남편은 정인을 용서한다고 편지를 보내지만, 정인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살을 통해 더러운 죄악의 씨(뱃속 아기)까지 같이 데려가겠다고 한다.

    심 교수는 "소설이 불완전하게나마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오히려 소설을 통해 어떤 현실이 '구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라며 "염상섭뿐 아니라 김동인 등 굉장히 많은 남성작가들이 그런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남성작가들은 이처럼 '신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을까. 심 교수는 "신여성을 굉장히 성에 미친 지나치게 타락한 존재로 끊임없이 재현하는 작업이 거듭돼 왔다는 것은, 당대 사회가 그런 여성에게 얼마나 위협을 느꼈는지를 보여준다. 갑자기 부상하는 선구적인 여성에 대한 불안과 위협이 신여성을 부정적으로 형상화하는 배경이 된 것 아닐까"라고 평가했다.

    심 교수는 "팩트는 그 자체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고 팩트를 둘러싸고 있는,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유통돼 왔던 이야기와 함께 소비된다. 사람들의 무의식, 고정관념,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 폭발력을 드러낼 수도 있다"며 "언제나 여성이 개입되면 여성의 성적 향방을 주목한다는 거다. 근대문학은 스캔들을 자양분 삼아 형성됐고, 이를 '신여성 모델 소설'이라 부른다"고 전했다.

    염상섭, 김동인, 전영택 등은 실존하는 여성작가들을 모델로 삼아 소설을 쓰기도 했다. 신여성의 표본으로서 '모델 소설'의 주인공으로 활용된 김명순, 나혜석 (사진=문화콘텐츠닷컴)

     

    남성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실존하는 여성작가를 공공연히 조롱하기도 했다. 제1기 여성작가로 분류되는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은 창작의 주체이면서도 스캔들의 대상으로만 인구에 회자됐고, 남성작가들은 여성작가들을 모델로 해 작품을 썼다.

    염상섭의 '제야'와 김동인의 '김연실전', 전영택의 '김탄실과 그의 아들'은 모두 김명순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염상섭의 '해바라기'는 나혜석의 결혼 사건을, '너희들은 무엇을 어덧느냐'는 김일엽과 이노익의 결혼생활 및 이혼, 임노월과의 동거에 대해 다뤘다.

    심 교수는 "그런 소설들을 통해 김명순 등으로 대표되는 신여성들은 성적으로 방종한 이미지를 얻게 됐고, (그 이미지가) 하나의 사실로 굳어졌다"며 "(여성작가들은) 남성작가들과 (문단생활을) 같이 시작했지만 끊임없이 남성작가 입에 오르내리고 모델 소설의 주인공으로 활용되다 문단 밖으로 추방됐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바라봤다.

    심 교수는 "남성은 표준이고 기준이기 때문에 사유의 대상이 되지 않는 반면, 여성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존재로서 쉽게 이미지화됐다. 문학사 초창기에 만들어진 여성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문학적으로 재현됐고,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는 최근까지도 된장녀, 개똥녀 등 여성에 대한 많은 '네이밍'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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