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국면을 앞두고 저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약속하는 대선주자들, 이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유독 '법정노동시간 준수'가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대선 행보를 서두르고 있는 여야 대권주자들의 노동 공약을 보면 한결같이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52시간 노동시간을 지키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 52시간 준수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주자로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를 꼽을 만 하다.
문 전 대표는 소정노동시간 40시간과 연장근무 12시간을 합친 주 52시간을 법적노동시간으로 준수하기만 해도 최대 20만 4천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의 노동 대통령'을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주 52시간을 넘어선 초과근무를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단속하기 위해 현재 1200여명 수준인 근로감독관을 최대 1만여 명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역시 '칼퇴근'을 보장하고 연간 초과근로시간도 제한하겠다면서 사실상 주52시간 준수를 선언했고, 같은 당 남경필 의원도 주 40시간, 연장노동 포함 주 52시간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야 후보 모두 하나같이 주 52시간 노동시간 준수를 노동공약의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 내내 노동시간 단축 논란은 노동계 주요 화두였다. 지난달 1월 임시국회까지도 노동시간 단축 방안을 담은 근로기준법 통과 여부가 노동부 최대 현안이었다.
현행법상 법정노동시간은 주40시간, 여기에 당사자 합의를 전제로 최대 52시간이란 예외를 둔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노동부는 주말 근무는 1주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최대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행정지침을 내려왔다.
이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불법 장시간 노동을 묵인하는 동안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OECD 국가 연간 노동시간 비교. 그래프 중간의 노란 막대가 OECD 평균, 오른편의 붉은 막대가 각각 한국(OECD 보고/경제활동인구조사)의 노동시간이다. 정부가 OECD에 보고한 한국의 취업자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2113시간으로 OECD 2위지만, 실제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는 2273시간으로 가장 길다.
2015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주40시간 근무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663만 명(34.3%)에 이르고, 주52시간을 넘는 불법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도 345만 명(17.9%)이나 된다.
이미 박근혜 정부도 2020년까지 OECD 평균인 1800시간까지 노동시간을 낮추겠다고 공언할 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실제 연간 노동시간은 2013년 2247시간에서 2014년 2284시간, 2015년 2273시간으로 2200시간의 벽을 깨지 못한 채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벽 때문에 '현행법이나 잘 지키자'는 다소 뻔한 원칙 수준의 공약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동시간 프레임을 선점한 바람에 야권 후보들조차 주52시간 논란을 뛰어넘은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충남대 윤자영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기준법 개정 문제로 국회에 쟁점이 붙으면서 그 프레임 안에서 대안을 논의하다 보니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주52시간에 집중된 것 같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현실을 감안해도 노년층이나 육아노동자 등 취약 분야에 관한 노동시간 정책 등 보다 꼼꼼한 정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시장의 근로감독관 확대안이나 유 의원의 '최소 휴식시간 보장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의 초과근로수당 비용처리 금지 방안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진보진영에서 제기되는 주35시간제나 주4일제 도입은 일부 노동자에게만 도입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회 법 개정 논의만 기다리느니 현행 법부터 확실하게 지킬 필요도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예외조항인 주52시간이 아니라 진짜 법정노동시간인 주40시간을 목표로 둬야할 것"이라며 "고령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주4일제 도입이나 잔업 금지, 연차휴가 수당 전환 금지, 최소휴식제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