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 교과서 사용을 위한 연구학교 신청을 놓고 교육부와 교육청 등의 편법과 꼼수가 난무하면서 학교 현장의 혼란과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 교육부, 꼼수를 먼저 꺼내들다꼼수는 정부가 먼저 시작했다. 교육부는 탄핵국면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2017년 국정 교과서 사용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자 이를 1년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7년에는 연구학교만 국정 교과서를 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1년 연기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연구학교 안을 들고 나오면서 교육부가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의 강력한 요구에 '1년 유예+연구학교'라는 '고육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했다.
교육부의 편법은 연구학교 운영계획이 발표된 1월 이후 잦아졌다. 연구학교를 신청하는 학교 가운데 심사를 거쳐 최종선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교육부는 '신청하는 모든 학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연구학교 지정 권한을 갖고 있는 시도 교육감 가운데 일부 진보적 교육감들은 "연구학교 신청문제를 놓고 학내 혼란이 우려된다"며 "국정 연구학교를 지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학교당 최대 1천만원의 예산지원과 교사 승진 가산점 부여 가능의 '당근책'까지 제시하며 연구학교 신청을 독려했다.
그럼에도 연구학교 신청률이 저조하자 교육부는 신청 마감 이틀전 갑자기 마감일을 2월 10일에서 15일로 늦추는 꼼수를 또 동원했다.
그러면서 대국민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국정 연구학교 신청이 저조한 것은 국정 교과서 자체의 문제가 아닌 전교조 등 일부 시민단체 등의 방해행위로 인한 것"이라며 책임전가에 나섰다.
이준식 교육부장관의 이같은 주장은 교육부 내부의 분석과는 다르다. 교육부 관계자는 " '국정화 금지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 연구학교 신청 저조에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자체를 금지하는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선 학교들이 새학기를 앞두고 불법이 될지 모르는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모험은 피하자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꼼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15일 마감 결과 전국 1,450여개 중고등학교 가운데 단 2곳만 연구학교를 신청하자, 학교가 원한다면 국정 교과서를 '보조교재'로 무료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연구학교에 '국한'해 쓰겠다던 방침을 슬그머니 바꾼 셈이다. 주교재로는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보조교재로 쓰는 것은 교사의 재량인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게 교육부 설명이다.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내용 부분
◇ 경북 교육청, 예상못한 꼼수까지 선보여연구학교를 신청한 곳은 경북지역에 몰려 있다. 경북 항공고와 경산 문명고 등 경북지역 사립고 2곳이다.
연구학교 신청이 매우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자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 추진 의지가 높은 이영우 교육감이 있는 경북 지역을 집중공략했다. 관내 개별학교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보고받고 '외부세력'의 움직임도 파악하는 등 공을 들였다.
경북 교육청의 꼼수는 연구학교 신청에 결정적이었다. 우선 연구학교 신청 제한 규정을 대폭 낮췄다. '교원 동의 80% 미만 학교는 연구학교를 신청할 수 없다'는 연구학교 운영지침을 이번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경북 교육청 관계자는 "'신청하는 모든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교육부의 취지를 반영해 국정 연구학교 신청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의 경우 일선 교사들의 반발이 거센만큼 이를 우회하기 위한 꼼수를 부린 것이다.
경북 교육청은 또 연구학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사립학교의 경우 자문)' 등 학내 의견을 수렴하도록 한 교육부 지침도 느슨하게 적용했다.
"연구학교를 신청했다면 당연히 학교운영위를 거쳤을 것으로 생각해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는 신청단계에서 요구하지 않았다"는게 경북 교육청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느슨하게 지침을 적용하다 보니 구미 오상고는 교사 동의나 학교운영위원회 심 등 절차에 문제가 제기되자 신청을 자진철회했고 경북 항공고는 학교운영위를 열지 않아 경북 교육청 심의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17일 밤 현재 경산 문명고만이 경북 교육청의 심의를 통과한 상태다.
그러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에 따르면 문명고 역시 학교운영위는 통과했지만 교원 80%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상고는 교원 동의를 얻었지만 학교운영위는 열리지 않았고 경북 항공고는 두 가지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
경북 교육청은 꼼수로 일관했다. 교육부가 마감 날짜를 연장했다면 경북 교육청은 마감 시간을 연장했다. 통상 근무시간인 오후 6시에 신청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밤 12시까지로 마감시간을 연장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일선학교에 공문을 보낼 때 마감일은 적시했지만 마감시간은 정해놓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공문이 마감시간을 안 적는 것이 일반적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감시간이 비상식적으로 연장되면서 오상고의 경우 15일 오후 5시쯤 교장의 결재가 빠진 신청서류를 접수했다가 이날 밤 9시에서야 보완해 다시 제출하기도 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신청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이같은 꼼수는 학내 혼란을 가져왔다. 오상고의 경우 학교 100여명과 교사들의 반발에 밀려 신청 하룻만에 자진철회했다. 이 학교 박상원 교장은 "외부의 반대라면 몰라도 내부의 반발이 심해 교장으로서 (철회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명고 학생 200여명도 17일 학내시위를 갖고 연구학교 신청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당초 신청이 예상됐던 김천고의 경우 학부모 50여명의 항의로 신청을 포기했으며 이 과정에서 연구학교 신청을 지지하는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 서울시 교육청도 편법 논란학내 혼란을 우려해 연구학교 지정을 반대했던 일부 교육청의 경우도 편법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시 교육청.
교육부가 지난달 10일 국정 연구학교 방침을 밝히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즉시 성명서를 내고 "서울교육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연구학교 지정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국정 연구학교를 시행할지 말지를 심의하는 연구학교 심의위원회는 그로부터 이틀 뒤에 열렸다. 이후 조 교육감은 국정 연구학교를 추진할 수 없는 근거로 '연구학교 심의위'의 결정을 들고 있다. 실제로 조 교육감은 최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교육감이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모양새 갖추기식 '사후심의'를 하고, 이 심의 결과를 다시 근거로 삼는 '편법'을 썼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심의 전이라도 교육감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업무 담당자는 "정상적이라면 심의위를 먼저 열어 정책을 결정하는게 맞다"면서도 "이번은 예외적인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44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1년여에 걸쳐 만든 국정 역사 교과서는 0.07%라는 저조한 채택률을 보이며 혼란과 불신만 남긴 채 교학사 교과서의 희미한 발자취를 따라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