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사 때 해경에서 저지해서 구조 못해
- "막막하게 옆에 떠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 정말 이해가 안 되던 상황
- 기름 유출 피해 크지만 우리도 똑같은 부모 입장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3월 31일 (금)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소명영 어촌계장(동거차도 동육마을)
◇ 정관용> 세월호 오늘 오후 1시쯤 목포신항에 도착했습니다. 침몰사고 후 1080일 만에 반잠수정에 실린 채로 마지막 항해를 이렇게 마친 거죠.
오늘은 3년 전 사고가 났던 바로 그날 사고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갔던 동거차도 주민 가운데 한 분, 전화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동거차도 동육마을 소명영 어촌계장님 안녕하세요.
◆ 소명영>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3년 만에 인근 바다에서 세월호가 떠났네요, 그렇죠?
◆ 소명영> 오늘 떠났습니다.
◇ 정관용> 느낌이 어떠세요?
◆ 소명영> 무사히 가서 좋고 이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어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좋겠네요.
◇ 정관용> 3년 전 사고 난 당일날 우리 소명영 계장님도 배 몰고 세월호 옆으로 가셨죠?
◆ 소명영> 그랬죠.
◇ 정관용> 어떻게 가시게 됐어요?
◆ 소명영> 최초에 이제 해경에서 연락, 지시를 받고 처음에는 여객선인지를 잘 몰랐어요. 해경에서 요청받기를 낚싯배가 침몰하고 있다..
◇ 정관용> 낚싯배요?
◆ 소명영> 그렇게 알고 우리가 현장을 갔었는데 그게 아니라 엄청난 큰 물체가 떠 있더라고요. 옆으로 누워서. 우리가 판단할 때는 낚싯배는 아닌데. 물살, 조류에 밀려 우리가 접근을 하고 가까이 붙다 보니까 여객선으로 우리가 판정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래서 구조도 하셨어요?
◆ 소명영> 그때 당시는 가까이 오니까 구조를 하려고 접근을 했죠. 그래서 이제 여러 해경이 이렇게 오고 근해에 배가 이렇게 움직이고 사람들이 가까이 해서 그때 당시에는 임의대로 저지도 없이 구조를 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제 해경정이 갑자기 연락을 받고 오고요, 헬기도 오고 그때 저희들의 구조를 저지를 하더라고요.
◇ 정관용> 해경이 저지를 했어요? 배 근처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 소명영> 네, 위험하다고 이렇게 접근을 금지를 시키대요.
◇ 정관용> 그래요? 뭐가 위험하다고요?
◆ 소명영> 일단 우리들이 위험하다는 거죠. 어선들이 거기에 접근을 하면 저 배가 빨려들어가고 있으니까 접근을 하지 마라.
저희는 그런 내용으로 알고 저희 어민들 심정에서는 다가가서 빨리 그 애들을, 죽어가고 가라앉기 전에,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유리창으로 보이니까 구조하고 싶은데. 우리들 배 어선에 망치랑 모든 기구가 있잖아요. 그걸로라도 두드려 부숴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이렇게 강력하게 저지를 하니, 못 들어가게 방송으로, 선내 방송으로 하면서. 그래서 막막하게 옆에서 떠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그 옆에 떠서 지켜보실 때 유리창 속으로 학생들 모습이 다 보였습니까?
◆ 소명영> 보였어요.
◇ 정관용> 그런데 세월호가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가까이 가는 어선들도 위험할 수 있나요?
세월호의 목포신항 입항이 임박한 30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석양이 지고 있다. 이한형기자
◆ 소명영> 그런 부분은 아니죠. 위험해서 빨려들어가거나 배가 들어가는 사안은 아니에요. 거기서 이렇게 공기압력으로 인해서 안에 공기가 밖으로 유입되다 보니까 분수처럼 솟기만 하대요. 그래서 어민들은 다가가서 위험하면 빠져나올 수도 있고.
◇ 정관용> 그러게 말입니다.
◆ 소명영>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는데 그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 정관용> 해경이 저지한 게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 소명영> 그렇죠, 왜 그렇게 했는지.
◇ 정관용>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대목입니다, 그 대목이.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동거차도 주민들 조금 불편함도 많으셨죠, 솔직히?
◆ 소명영> 한 3년 동안 그 후로 어떠한 적정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민들이.
그 후로 모든 어족 고갈이라든지 양식 시설에서 양식을 해야 하는데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배가 있어서 계속 지속적으로 거기서 그 배들에 매달려서.. 그런데 그런 쪽으로 해서 모든 우리 생산량이 감소가 돼요.
◇ 정관용> 그래요?
◆ 소명영> 예를 들어 가령 하나를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미역이 옛날에는 그 세월호 사고 있기 전에는 이렇게 총 기장이 우리 생산하는 날 마지막까지 한 2m이상이 됩니다.
◇ 정관용> 그런데요, 그 후에는?
◆ 소명영> 그런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3분의 1도 안 자라요.
◇ 정관용> 3분의 1도.
◆ 소명영> 그러다가 뿌리를 지탱을 못하고 그러다가 뿌리가 지탱을 못 하니까 바람만 살짝만 불어버려도 날아가고 빈 줄만 남고. 이제 그런 점에서 모든 어획이 고갈이 되고 모든 멸치라든지 갯바위의 전복 폐사라든지 아주 이제 물속에 들어가서 이렇게 잠수를 하다 보면 거의 바닷속에 가라앉은 빈 껍질, 전복 껍질만 있어요.
그래서 어민들이 참 어촌계 일대로 해서 그것을 생계유지를 하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막막하게 되어버렸고 참 답답한 심정으로 그렇게 살았죠. 그래서 저희 어민들은 그때 당시는 많이 참았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안 벌어도 어쩌겠냐, 우리가 그러지 말자 했죠.
◇ 정관용> 워낙 희생이 컸으니까.
◆ 소명영> 희생자를 생각하면 우리가 참 자식들 다 똑같은 입장인데. 같은 부모 심정으로서 많이 참았습니다.
◇ 정관용> 이번에 인양하면서 기름이 유출되어서 양식도 피해 많이 보셨죠?
◆ 소명영> 지금 완전히 덮쳐갖고 완전히 지금 전량 폐기로 갔어요.
◇ 정관용> 지금 그것은 그래도 배상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 소명영> 받아야 되는데 지금 받아주라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앞으로 잘 되기를 어촌계장 심정으로서 바라고 있고요.
◇ 정관용> 지금 정부도 전남도도 다 피해 부분에 대해서는 배상한다는 원칙은 갖고 있으니까. 되겠죠.
◆ 소명영> 그러기를 바라겠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충분한 보상 되도록 저희도 응원하겠습니다. 계장님 오늘 고맙습니다.
◆ 소명영> 네.
◇ 정관용> 동거차도 소명영 어촌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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