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사진=노컷뉴스DB)
오승환(35·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2017시즌 메이저리그 개막 첫날부터 다사다난한 하루를 보냈다.
오승환은 8회초 위기에서 등판하자마자 '끝판대장'의 위용을 널리 과시했다. 그러나 좋은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조기 등판의 여파 그리고 1루수의 결정적인 수비 실수가 겹치면서 흔들렸고 결국 동점 3점홈런을 허용,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오승환은 3일(한국시간) 미국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의 개막전에서 팀이 3-0으로 앞선 9회말 윌슨 콘트라레스에게 동점 3점홈런을 얻어맞고 팀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
오승환은 1⅔이닝동안 홈런을 포함한 2안타와 몸 맞은 공 2개를 내주고 3실점을 기록했다. 탈삼진은 2개. 시즌 평균자책점은 16.20이 됐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가 9회말 끝내기 안타로 4-3 승리를 거두면서 오승환은 개막전 승리투수가 됐다.
오승환에게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경기였다.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가 1-0으로 앞선 8회초 1사 1,2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7회까지 탈삼진 10개를 솎아내며 무실점으로 호투한 세인트루이스 선발 카를로스 마르티네스는 8회 들어 안타 2개를 맞고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투구수가 105개에 이르자 마이크 매서니 감독은 불펜에서 몸을 풀던 마무리 오승환을 조기 투입했다.
컵스는 1번타자 카일 슈와버부터 타순이 시작됐다. 오승환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는 상황에서 2017시즌 첫 등판에 나섰다. 때마침 빗줄기도 굵어졌다. 오승환에게 여러 모로 불리한 조건이 형성됐다.
오승환은 첫 타자 슈와버를 몸 맞은 공으로 내보냈다.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던져 2스트라이크를 잡고 시작했지만 이후 슈와버가 유인구를 잘 골라내 결국 1루로 걸어나갔다.
1사 만루 위기에서 만난 다음 타자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 크리스 브라이언트.
오승환은 볼카운트 2볼-1스트라이크에서 슬라이더를 던졌고 브라이언트가 때린 빗맞은 공은 오른쪽 방면으로 힘없이 떠올랐다. 우익수가 앞으로 달려와 여유있게 공을 잡았다. 3루주자가 홈으로 뛰기에는 타구 거리상 무리였다.
한 고비를 넘긴 오승환은 2사 만루에서 앤소니 리조와 맞붙었다. 리조는 지난해 타율 0.292, 32홈런, 109타점을 기록한 컵스의 간판 타자다.
세인트루이스 포수 야디어 몰리나는 앞선 타자들과 승부할 때와는 달리 리조를 상대로는 오승환에게 직구를 계속 요구했다.
초구 91마일의 직구는 볼이 됐고 2구 92마일의 직구는 한복판에 꽂힌 스트라이크가 됐다. 리조는 몸쪽으로 파고든 3구 91마일 직구에 방망이를 돌렸으나 이번에도 공은 힘없이 외야로 떴다. 우익수 스티븐 피스코티가 우측선상에서 여유있게 포구해 이닝을 끝냈다.
오승환이 왜 개막전 마무리 투수로 낙점을 받았는지, 왜 그가 '끝판대장'으로 불리는지 확인시키는 뛰어난 호투였다.
고비를 넘긴 세인트루이스는 8회말 랜달 그리척의 투런홈런으로 스코어를 3-0으로 만들었다.
8회초 14개의 공을 던진 오승환은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매서니 감독 마음 속에는 오승환보다 더 믿을만한 불펜투수가 없었다.
3점차 여유있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밟은 오승환은 첫 타자 벤 조브리스트를 몸 맞은 공으로 내보냈다. 이어 애디슨 러셀을 헛스윙 삼진 처리해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다음 타자 제이슨 헤이워드가 평범한 1루 앞 땅볼을 때릴 때까지만 해도 흐름이 좋았다.
그러나 1루수 맷 카펜터의 판단이 좋지 않았다. 카펜터는 2루로 공을 던지려고 했으나 글러브에서 공을 빼려다가 그만 흘리고 말았다. 그 사이 타자 주자까지 1루를 밟았다. 공식 기록은 실책이 아닌 안타.
3점차로 앞선 상황에서 굳이 득점권으로 전진하는 주자를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1루 승부를 선택해 두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도 충분히 좋은 수비가 됐을 것이다. 카펜터의 실수 때문에 오승환은 또 다시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콘트라레스와의 승부 때 투구수는 30개를 넘어갔다.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던진 오승환의 32번째 공, 84마일짜리 슬라이더를 콘트라레스가 잘 받아쳤다. 낮게 제구된 공을 퍼울려 왼쪽 담을 넘겼다. 스코어는 3-3이 됐다.
오승환은 존 제이와 하비에르 바에즈를 각각 삼진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힘겨웠던 9회초 수비를 마무리했다. 공수교대 때 미국 현지 중계 카메라는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오승환 대신 아쉬운 수비를 선보인 카펜터의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오승환은 세이브 대신 승리를 챙겼다. 8회말 투런홈런의 주인공 그리척이 9회말 2사 만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끝내기 안타를 때려 세인트루이스의 4-3 승리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