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오르는 제주 송악산에서 한 여행객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다. (사진=한국관공공사 제공)
"사랑과 낭만의 섬 제주에서 편안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일 오전 10시께 김포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1시간 만인 11시쯤 제주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렀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자그마한 창 밖을 내다보니 망망대해에 선박이 하나 떠 있다.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던, 차마 이곳 섬에 닿지 못하고 별이 된 아이들이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과 낭만의 섬 제주에서 편안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기내 방송이 다소 허망하게 다가왔다.
이날 공항을 벗어나 접한 제주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토해낼 듯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밝은 햇살 아래 섬의 풍광을 즐기는 것과는 또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으며, 점심 식사가 예정된 식당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여행사 ㈜뭉치 김영훈 회장은 제주의 공동체 문화를 강조했다.
"제주에는 여전히 마을 공동 목장이 많아요. 해녀들은 지금도 어촌계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학자금을 지원합니다. 새로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 오신 분들도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일면식이 없더라도 경조사에 참석해야 해요. 어울리지 못하면 배제되기 십상입니다. 더불어 살자는 거죠."
"제주의 가치는 욕심을 버리는 데 있어요. 지금 해녀들이 입는 검은 수트도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바뀐 건데, 이 옷을 입으면서 해녀들의 잠수시간이 2시간에서 5시간으로 늘었죠. 그러면서 해녀들이 잠수병에 걸리기 시작했어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 회장은 언뜻 "제주의 공동체 문화는 4·3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을 내비쳤다. 4·3, 제주 주민 3만여 명이 군인·경찰 병력 등에게 학살된 사건. 버스에서 내린 뒤 이 회장에게 '4·3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4·3 이전의 문화는 철저한 공동체 문화였어요. 그런데 4·3 이후에는 의심의 문화, 죽음의 문화가 돼 버렸죠. 공동체 문화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거예요. 옆에 살던 삼촌이 경찰이 돼 '폭도'로 낙인찍힌 친척에게 총질을 해야 했으니…. 최근에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어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 아픔의 역사, 여전히 선명한 색깔로 섬 곳곳에 각인
제주 서귀포시 상모리에 있는 송악산 해안가 절벽에 뚫린 일제 동굴진지가 보인다. (사진=이진욱 기자)
점심식사를 마친 뒤,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를 이동해 서귀포시 상모리에 있는 송악산 초입에 잠시 머물렀다. 그곳 한켠에 세워진 관광 안내판을 보니 4·3 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학살 현장에서 수습한 유골을 안장한 '백조일손지묘'도 있었다. 원혼들을 달래는 듯, 안내판 뒤편 너른 들판에는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이곳 해안가에는 최남단 섬 마라도를 오가는 여객선 선착장이 있다. 그곳으로 향하다 보니 깎아지른 절벽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 송악산해안 일제동굴진지'라고 적힌 작은 안내판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 시설물은 일제강점기 말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소형 선박을 이용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고자 구축한 군사 시설이다. (중략) 제주도 주민을 강제 동원하여 해안 절벽을 뚫어 만든 이 시설물은 일제 침략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함과 더불어 전쟁의 참혹함과 죽음이 강요되는 전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무 계단을 걸어 내려가니 해안가 절벽을 따라 뚫린 여러 개의 동굴이 눈에 들어왔다. 옅은 비를 머금은 물살이 동굴 바로 앞까지 밀려들었다. 이 지역 일대에 흩어져 있는 일제군사시설은 지난 1931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1945년 일본 패망 직전까지 폭격, 방어를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됐다.
당시 일본군은 지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비행장, 격납고, 지하벙커 등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주민들은 "이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으리라. 하지만 광복 2년도 채 안 돼 4·3으로 제주 사람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그 피땀으로 얼룩진 아픔의 역사는 여전히 선명한 색깔로 제주섬 곳곳에 깊이 각인돼 있었다.
◇ 검은 현무암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꽃피는 거센 물살
제주 모슬포항에서 뱃길로 20여 분 걸리는 가파도에 너른 청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오후 2시쯤, 송악산을 뒤로하고 가파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모슬포항으로 향했다. 모슬포항을 출발해 남쪽으로 거친 물살을 헤치며 20여 분을 이동하니 가파도였다.
배 안에서는 "가파도 보리밭에 들어가 사진 찍지 말라. 수확기여서 지역민과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안내방송이 두 차례 나왔다. 가파도를 비롯해 제주 안에서는 보리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맥주업체와의 계약재배로 도내 보리 재배가 활성화된 이후, 요즘에는 수제 맥주 재료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자전거로 가파도 해안가를 여유있게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 분. 해안도로 안쪽으로는 너른 청보리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18만여 평에 달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비에 젖어 싱싱한 빛깔을 머금은 청보리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을의 집과 집은 자연석의 면과 면을 맞춰 쌓아 올린 돌담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얼마나 정교한지를 실감할 수 있는 돌담이, 주민들의 희로애락으로 빚어진 제주 역사를 오롯이 증언하는 듯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센 물살은, 섬 해안을 이룬 검은 현무암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꽃피었다. 검은 조약돌이 널려 있는 서북쪽 '조약돌 해안'은 가파도의 으뜸 풍광으로 꼽힌다. 해안 도로를 따라가는 동안, 남근석 등 기암괴석 위에 쌓아 올린 작은 돌탑도 눈에 띄었다.
한 마을 어귀 담벼락에는 다음달 10일까지 열리는 유용예 사진전 '할망바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가 유용예는 가파도에서 수 년째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제주 주민들의 소소하지만 깊은 역사를 지닌 일상을 길어 올리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곶자왈' '엉'…말에 담긴 제주 절경의 가치
남원큰엉 산책로를 걷다보면 나뭇가지들 사이로 드러난 '한반도' 형상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약 2시간에 걸친 가파도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여객선을 타고 모슬포항으로 되돌아온 시각은 오후 5시경. 버스로 30여 분을 달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문화예술인마을에 도착했다. "제주는 봄이 되면 낮에는 더운데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을 실감했다.
도에서 운영하는 제주현대미술관, 김창열미술관 등이 들어선 이곳 문화예술인마을은 숲길 등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주민 쉼터로 제격이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교통편이 불편해 주민들이 이곳까지 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현지 주민들의 삶과 제대로 연결돼 있지 못한 문화예술인마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튿날인 21일 아침 8시 30분께, 숙소를 나와 화순 곶자왈로 향했다. 제주말로 '곶'은 숲을, '자왈'은 돌이나 자갈을 가리킨다.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숲이 곶자왈이다. 울창한 숲과 돌이 어우러진 화순 곶자왈은 인위적인 도심 속 숲과는 달랐다. 마치 영화 속에서 보던 밀림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산골짜기나 암석지에 나는 '좀작살나무'의 존재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길 곳곳에는 쇠똥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에서 소를 방목해 키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곶자왈에는 비가 온 다음날 뱀이 자주 출몰한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화순 곶자왈에서 차량으로 1시간여를 이동해 남원큰엉에 닿았다. 제주말로 '엉'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그늘을 뜻한다. 이곳 남원큰엉에는 해안가 2.2㎞에 걸쳐 높이 15~20m에 이르는 기암절벽이 성을 두르듯 서 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식물의 잎은 염분 덕에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웠다. 1.5㎞가량의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독특한 식물들, 산책로를 둘러싼 나뭇가지들 사이로 드러난 '한반도' 형상 등도 볼거리다.
마지막 여행지는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단층짜리 폐교를 새롭게 꾸민 포토갤러리 '자연사랑미술관'이었다. 소정의 관람료를 받는 이곳에서는 사진가 서재철 관장이 찍은 사진을 전시한다. 제주 사계절 풍광을 비롯해 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컬러·흑백 사진이 그 면면이다. 서 관장은 "카메라를 빌려 쓰던 시절, 한라산에 갔다가 우연히 사진기를 접하고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됐다"고 전했다. 그의 딸 역시 뒤를 이어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니, '기록하는 자'로서의 과제가 대물림된 셈이다.
◇ 체질 개선 꾀하는 제주 관광…"주민들 삶에 뿌리내린 정책 필요"
하늘에서 본 제주 송악산(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1박 2일간 짧게 제주를 돌아다니면서 "이 땅도 중국 사람이 샀다" "부동산 붐으로 집을 많이 지어서 도로가 좁아지고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한 현지 주민은 "과수원이 평당 10만 원 정도 했는데, 중국인들이 들어와 '100만 원 주겠다'고 하니 안 팔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중국인들이 대량으로 집을 짓고 하면서 땅값을 엄청 올려놨다"고 토로했다.
최근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면서 관광산업 타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 역시 마찬가지인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관광시장 다변화를 위해 이달 일본 직항기가 출항하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도 전세기 운항을 협의 중"이라며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던 주민들의 경우 자금 상환을 1년 미뤄 주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길게 봤을 때 긍정적인 현상으로 여기고 있다"며 "사드 문제가 풀리더라도 그 동안 중국과 만들어졌던 '절대 갑을' 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간 단체관광 위주로 제주를 찾았던 중국인들은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소 등을 이용함으로써, 절대적인 양에 비례하는 경제적인 보탬을 주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안에서 누구보다 큰 피해를 입어 온 이들은, 당연히 최일선에서 관광객들을 상대해야 했던 현지 주민들이었을 터이다.
여행사 뭉치 김영훈 회장은 "관광의 주체는 당연히 지역 주민들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관광객의 편의만을 강조하다 보니 정작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는 등 주민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예를 들어 도로를 닦더라도 관광도로만 만들어 지역 주민들의 일상이 상대적으로 배제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흔히 우리는 여행을 통해 고단한 일상을 이겨낼 활력을 얻어 간다고들 말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지인 제주도 역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치유의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제주 주민들은 국내외적 정치·경제·사회 환경에 따라 공동체가 휘둘리는 현실에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 말 그대로 '아이러니'다.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험난한 굴곡을 경험해 온 제주. 중국 의존을 벗어나 관광산업의 체질 개선을 꾀한다는 정책의 중심에 주민들의 안정적인 삶이 자리잡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