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승만을 독재의 권좌에서 끌어내린 4·19혁명이 57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통령 박근혜를 몰아내고 더 나은 새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차마 꽃피우지 못한 4·19혁명은, 촛불혁명의 과정에 있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그 여정에 함께해 온 역사가들의 심층 분석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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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4.19는 왜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나[하] 4.19혁명 '완성' 절호의 기회, 왜 지금일까
1960년 4·19혁명 당시 탱크를 몰고 도심에 들어온 계엄군(사진=4·19혁명기념도서관 제공)
지난 겨우내 불타오른 촛불혁명은 "대한민국이 원래 그렇지 뭐"라는 무력감에 허우적대던 한국 사회를 깨웠다. 그간 켜켜이 쌓여 온 폐단을 깨부술 변화의 물꼬도 텄다.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금처럼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화끈한 승리를 거둔 것은 1986년 6월 항쟁 때도 맛보지 못한 것으로, 1960년 4월 혁명 이후 처음 아닌가"라며 "역사의 전환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절이다. 시민들이 온몸으로 역사를 썼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촛불혁명으로 빚어낸 5·9조기대선 국면이 '표 경쟁의 덫'에 빠져 변질되고 있는 데 대해, 역사가들은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역사학자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 4·19혁명으로 무너진 이후 들어선 당대 민주당 정권은 혁명 주체와의 괴리가 상당히 심했다. 이는 4·19혁명이 미완으로 끝나게 만든 주된 요인"이라며 "이 점에서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데 기여했던 세력들이 과거의 무책임한 판단과 선택에 대한 반성 없이, 이번 대선에서 또다시 검증되지 않은 이미지 정치에 쏠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역사가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도 "자성 없는 보수가 큰 문제"라며 말을 이었다.
"보수층 역시 왜 촛불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잘 안다. '박근혜 시대의 종언', 더 나아가 '박정희 시대의 종언'이라고 본인들이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다. 박근혜 한 사람만 사라졌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그 시대와 체제가 지닌 정신과 문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간 보수층이 추구해 왔던 성장과 산업화에 대한 일반화, 젊은 층이 지닌 구체적인 개혁 의지에 대한 몰이해 등을 반성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점에서 '미래' '통합' '혁신'과 같은, 촛불혁명의 열망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구호에 머무는 특정 후보에게 보수층의 표가 전략적으로 모이는 것은 상당히 우려된다."
역사가들은 촛불혁명을 가능케 했던 강력한 동력으로 세월호 참사를 지목했다. 결국 지금의 조기대선과 세월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결국 대선후보들이 세월호를 대하는 각각의 태도는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대목이다.
주진오 교수는 "여기까지 온 데는 세월호 참사가 컸다. (대선 후보가) 그 상처를 보듬어 왔던 사람이냐, 외면했던 사람이냐에 따라 선택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본다"며 "세월호를 보듬으려고 나름대로 애써 왔던 사람, 촛불혁명으로 드러난 젊은 층의 의지와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촛불혁명의 2단계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홍구 교수는 "1980년 광주 이후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동력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면, 세월호 사건은 1980년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공유한, 슬픔의 공동체를 만들어줬다"고 진단했다.
"세월호 사건은 생떼 같은 아이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간 비극이었다. 대한민국은 왜 세월호의 유리창 한 장을 깨지 못했고, 단 한 명의 아이들도 구해낼 수 없었을까. 이 단순한 질문은 2년 반 동안 답을 얻지 못한 채 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그 답을 구했다."
◇ "촛불혁명, 4·19에 이어 또다시 미완으로 남지 않도록 두 눈 부릅떠야"
'세월호 참사 3년 기억식'이 거행된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국민의당 안철수·정의당 심상정·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대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미완의 혁명 4·19를 반면교사 삼아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용환 소장은 "4·19혁명 이후 혁신계가 보여준 정책 아젠다는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들이었기에 지지를 얻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며 "현재 대선 국면에서도 촛불혁명을 통해 시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재벌·노동·교육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 없이 인물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대통령으로 '구원자' '해결사'를 바랄 것이 아니라, '조력자'를 뽑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 민간사회가 지닌 역량은 4·19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각 분야의 수많은 학자·전문가들이 있고, 경제·사회·문화적 자원도 탄탄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국민들이 사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개성공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안다. 그러한 자부심이 투표 행위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이 알아서 다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어떠한 사람을 뽑아야 우리의 문제에 보탬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심 소장은 "이 시대에 필요한 대통령은 제왕적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네 생활 문제를 거들어 주는, 민의를 수용해 정치에 적용할 수 있는 '조력자'여야 한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이 된다면 의미가 클 것"이라며 "대통령 뽑은 다음에도 그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뜻을 모으는 과정이 수반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한홍구 교수는 "수십 년간 쌓인, 산더미 같은 적폐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정말로 긴요하다"며 "다시 말해 재벌·국정원·언론·검찰·사법·교육·경제·국방개혁 등등 수많은 과제 중 차기 정권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현명하게 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검찰개혁이야말로 다방면에 걸친 모든 개혁의 얽히고설킨 난제를 해결하는 핵심고리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언론개혁은 대통령이나 새 정권보다는 언론의 자정작용과 시민사회의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겠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한 교수는 "현명한 대중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며 마냥 들떠 있지만은 않다. 지난 수십 년의 현대사에서 거둔 적지 않은 성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날려버린, 여러 차례의 안타까운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탓"이라며 "역사의 반동은 우리가 거둔 성과가 내부의 수구세력이나 외세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질 때 대규모로 발생하곤 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한국에서도 트럼프, 아니 히틀러 같은 자가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진오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촛불혁명 2단계에 이은 3단계는 정권교체가 됐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이 촛불혁명의 가치와 비전을 배신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도록 견제와 감시의 끊을 놓지 않는 것"이라며 "촛불혁명이 4·19에 이어 또다시 미완의 혁명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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