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지원배제지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화예술인들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일종의 '검열'로 작용했으며 관련자들이 처벌받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은 취지로 증언했다.
하 평론가는 201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의 문학부문 책임심의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문체부의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배제를 거부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5명의 책임심의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문학부문 지원 대상자 102명을 선정하고, 마지막 심의를 앞둔 2015년 5월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 2명을 만났다.
문예위 직원들은 매우 곤혹스러워 하며 "18명이 검열에 걸렸는데 문체부의 강력한 지시사항이다. 위에 청와대가 있는 것 같다"면서 "도저히 막을 수 없으니 (최종 지원 대상자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조차 18명이 배제된 기준을 잘 모르겠다며 "(18명 가운데 한 명인) A 작가가 좌파문인은 아니다. 문재인 (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 평론가는 다른 책임심의위원들과 마지막 심의를 한 2015년 6월 5일 "우리가 (18명을 배제한 지원 대상자 명단에) 도장을 찍으면 '을사5적'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가 장난을 치는 것인지 모르는데, 이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면 분명히 감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심의위원들도 이에 동의했다.
검열로 볼 수 있는 지원배제는 범죄라는 인식을 당시 책임심의위원들이 모두 공유했다는 것이다.
이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이사회가 임의로 지원 대상자를 70명만 선정하고, 책임심의위원제도를 폐지했다.
하 평론가는 "1년 내내 심사를 하는 책임심의위원들은 명예로운 자리"라며 "책임심의위원들을 없앤 것은 (지원자 선정 과정에) 장난을 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