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발견된 삼성메모가 가진 위력의 실체를 현단계에서 한마디로 진단하는 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삼성 메모의 작성자와 작성 시기가 드러난다면 메모의 위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가공할 영향력을 미칠 사안이다.
청와대로부터 문건을 전달받은 특검 관계자는 "문건의 실체에 대한 어떤 추론도 말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메모 내용 자체가 매우 민감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과 검찰 등 복수의 관계자들은 "메모 내용이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때문에 특검이 이번주 초 검찰에 전격적으로 수사를 요청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메모가 2014년 8월에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일단 문건을 직접 본 청와대의 설명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이 사건 핵심인 메모를 누가, 왜, 언제 작성했고 왜 경제수석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에서 삼성 경영 승계문제까지 관여했는지는 의문이다.
메모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메모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작성 시점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라는 삼성내 현안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 박 전 대통령, 이건희 쓰러지자마자 삼성과 화끈한 '딜' 돌입?청와대는 메모 작성 시기와 관련 "2014년 8월로 추정되는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작성 시점을 왜 그렇게 보는지 구체적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2014년 8월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그해 5월과 그해 9월 15일 박근혜-이재용간 1차 독대 시점 사이에 존재한다.
만약 8월 메모가 맞다면 이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박근혜 정부가 이건희 회장이 '코마'상태에 빠지자마자 삼성의 승계 현안을 재빠르게 파악했고 곧바로 삼성과의 딜에 착수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놀랍도록 신속하고 주도면밀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과 1차 독대에서 "삼성이 한화를 대신해 대한승마협회장을 맡고 정유라를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즉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불과 3개월만에 박 전 대통령은 삼성 현안을 미끼로 재단 설립과 정유라 지원 '딜'이라는 '로드맵'을 완성한 셈이 된다. 이는 박 전 대통령측과 이재용 부회장측이 장기 로드랩을 가지고 화끈하게 초장부터 '딜'에 들어갔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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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논란된 2015년 상반기 가능성은 없나?하지만 메모가 2015년 상반기에 작성됐을 개연성도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삼성 메모'는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문건'과 함께 포함돼 있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 의결권이 큰 주목을 받은 때는 2015년 5월 말부터 이다. 합병 주총을 한달 반 가량 앞둔 시점이다.
그러나 삼성물산 최대주주 가운데 하나인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엘리엇 등장 이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삼성 합병 추진 사실이 2015년 2월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 메모는 정부가 실질적으로 삼성합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라는 빅카드 활용방안을 구체화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눈 앞에 다가 온 만큼 '삼성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라는 식으로 정리를 한 문건으로 볼 수 있다.
메모 작성시기가 2014년 하반기냐, 아니면 2015년 상반기냐에 따라 큰 의미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하반기였다면 박근혜 정부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자마자 작정하고 삼성과 '딜'에 용의주도하게 돌입했다는 것이고, 2015년 상반기라면 '삼성합병'이라는 현안이 등장하자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강한 기대 뒤의 실망과 배신감?어쨌든 메모 내용처럼 박근혜 정부는 화끈하게 삼성합병을 국민연금을 통해 지원했다. 그 결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에게 의무없는 일을 시켜 삼성합병에 찬성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심 법원에서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결과는 돌아오지 않았다. 2014년 9월 1차 독대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마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삼성은 원하는 결과를 주지 못했다.
그로인해 박 전 대통령은 삼성합병 직후 열린 2015년 7월 '2차 독대'에서 이 부회장을 매섭게 몰아 붙인다.
박상진 대한승마협회장은 특검조사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를 마치고 돌아와 긴급 회의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 눈길이 레이저 빔 같을 때가 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며 얼음장 같았던 독대 분위기를 전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날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30분 면담중 15분을 정유라 승마지원 얘기만 했다. 삼성합병을 무리하며 지원했는데 삼성은 고작 '이렇게 밖에 못하냐'는 배신감과 질책의 화살이었다.
삼성 합병은 국민연금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합병 직후 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무리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사장은 "무리한 게 아니고 무식하게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측근이다.
◇ 왜 민정수석실이 삼성합병까지 관여했을까삼성 메모가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 서랍에서 발견된 것도 매우 놀아운 일이다. 지금까지 국정농단 재판에서 삼성 경영승계 문제는 안종범 전 수석의 경제수석실이나 정책조정수석실에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승계 문건을 왜 민정수석실에서 생산했는지 큰 의문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이 윗선 지시를 받아 적은 것이 '삼성메모'라면 모르겠지만 그 정보와 문서를 수집하고 생산했다면 그 자체가 '블랙리스트 '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민정비서관실은 민정팀과 사정팀을 아우르고 있었다.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사정 정보는 물론 국정원 등의 민심 정보까지 민정비서관 소관 업무 였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경제수석실 외에도 민정수석실을 통해 별도로 삼성경영승계 관련 정보를 취합하고 대응 문건을 작성한 것 아닌가하는 의혹이 추가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우병우 전 수석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
특검은 "문건과 메모 생산 부서가 민정인지 사정인지도 확인해야 하고 왜 대기업 경영승계 문제까지 민정에서 관여했는지도 경위를 확인해 봐야 할 사안"이라며 "앞서가서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