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년 군함도 추적…"잊지 않기 위해"
- 생존자들 "배고프다" 제일 많이 말해
- 조선인 지옥 군함도, 일본에선 '낙원'
- 피폭현장에서도 '인간의 길' 걸었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변상욱 대기자 (김현정 앵커 대신 진행)
■ 대담 : 한수산 (소설 '군함도'의 작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끌려가 일했던 하시마탄광.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고들 계실 겁니다. 영화로도 군함도가 이번에 개봉돼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만 영화라는 건 아무래도 상상력이나 허구가 더해지기 마련이라, 진짜 군함도 얘기를 좀 들어보겠습니다. 군함도의 역사적인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 무려 27년을 취재 그리고 집필에 몸을 바친 작가가 계십니다. 잘 알고 계시죠. 지난해에 발간됐던 소설 군함도의 한수산 작가를 오늘 전화로 연결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한수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변상욱> 오랜만에 인사드리겠습니다. 27년 전 도쿄 고서점에서 일본인 목사가 썼던 책이죠?
◆ 한수산> 맞습니다.
◇ 변상욱> 거기에서 충격을 받으시면서 이것을 집필하겠다라고 마음먹으시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십니까?
◆ 한수산> 지금 와 생각하면 그 책을 만났다는 건 운명처럼 느껴져요, 이제 와서 생각하면요. 왜냐하면 내가 이런 걸 몰랐나 하는 거, 우리가 히로시마 그러면 원폭 투하지로 알고 있는데 나가사키에서 그것도 이렇게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말인가하는거 때문에 경악을 했고요. 그때 또 특히 중요한 것은 실제 조선인, 그러니까 한국인이죠. 한국인 서정우 씨라는 분이 실제 피해현장에 있던 분이에요.
그래서 그분과 함께 현장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군함도를요. 그분과 함께 섬을 돌면서 여기서 뭘 했다, 여기서 뭘 했다. 여기에 뭐가 있었다 이런 걸 쭉 자세히 듣게 되죠, 사진도 찍으면서요. 그런데 이분들이 제 취재를 도와주셨던 분들이 지금 살아계신 분이 한 분도 안 계세요. 이거는 운명적으로 그때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 쓰여질 수 없는 소설이었죠.
◇ 변상욱> 그러면 실제 만나셨던 피해자 서정우 씨, 지금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는 거죠?
◆ 한수산> 책이 나와서 제가 책을 들고 갔더니 2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1년 반 전, 2년 다 됐다 그래서 좀 안타까웠죠.
'군함도'라는 불리는 일본 하시마섬. (사진=한수산 작가 제공)
◇ 변상욱> 가장 기억에 남는 그 분의 이야기나 사연은 어떤 거였습니까?
◆ 한수산> 그 많은 게 있습니다만, 배고프다는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 그게 제일 안타깝죠. 왜냐하면 징용군 그러면 나이가 든 사람으로 생각하는데요. 요새 피해자들이 지금은 연세를 많이 드셨으니까요.
◇ 변상욱> 할아버지분들이죠.
◆ 한수산> 90세, 이런 분들이 영상에 나오니까 할아버지들이 끌려갔나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런데 그 당시 19살, 20살들이 끌려갔거든요. 그 혈기왕성할 때에 배가 고팠다는 것처럼 비극이 없죠. 어느 날 서 선생님과 방파제를 걷다가 '서 선생님, 여기 좀 앉읍시다.' 해서 앉아서 보는데 저기를 가키키면서 '저쪽이 조선이다. 내 고향이 저기에 있다.' 하시더라고요.
여기서 너무 힘들고 배고프고 일이 힘들고 잠도 못 자고 벌레들 깨물리면서 그 열악한 환경에 있었을 때 죽으려고 몇 번이나 여기 이 방파제에 섰었다 하면서 바다쪽을 가리키는 거예요. 쭉 듣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렀죠. 그때 그 쓰라린 마음들 좀 잊혀지지가 않죠. 그러면서 결심을 하게 됐었죠.
'저쪽이 조선이다, 저기가 내 고향이다.' 하는 이 장면만은 내가 소설을 쓸 때, 첫 장면을 꼭 넣으리라. 그래서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소설 군함도까지 첫 장면은 완전히 바꼈습니다. '저쪽이 고향이다, 저쪽이 조선이다.' 하는 얘기를요.
◇ 변상욱> 지금 배고프다는 말씀하셨는데 흔히 하시마 군함 탄광 얘기를 할 때는 한글로 벽에다 긁어서 글을 남긴, '배고프다, 엄마 보고 싶다.' 이 장면을 흔히 얘기하는데 그러면 이건 탄광벽에 있던 문구인가요?
◆ 한수산> 그거는요. 좀 잘못돼 있는 거예요. 이번에도 그런 사건이 터지던데 일본인들로 하여금 어떤 빌미를 주면서 원천적인 걸 날조하고 있는거 아냐? 이런 식의 얘기를 만들게 하거든요. 그건 하시마 탄광, 즉 군함도에서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 낙서라든가 사진들이요.
◇ 변상욱> 다른 탄광인가요?
◆ 한수산> 다른 탄광에서 있었던 것이고. 현재까지 나와 있는 정확한 자료로는 제가 알고 있는 한 그런 글씨, 낙서가 없습니다.
◇ 변상욱> 그러니까 그런 잘못된 사진이나 일본인 광부들 사진을 조선인 광부들이라고 찍어서 어딘가에 내놓으면 '봐라, 너희들 다 조작하고 있지 않냐.' 이런 분위기가 되는군요?
◆ 한수산> 네. 말하자면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이 문제는, 과거사 문제는 철저히 교차검증을 하고 그리고 또 그 검증을 거쳐서 합리적인 추론을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지 않느냐 하고 그렇게 주장할 때만이 일본이 아무 말을 못하게 되죠. 자기들도 납득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어설픈 추론이라든가 또는 근거 자료 없는 얘기들에 우리가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꼭 그런 사태들이 생깁니다. 본말이 전도돼가지고 그 사람들이 작은 꼬투리를 가지고, ‘우리를 보고 날조다, 왜곡이다. 너희들이 더 나쁘지 않냐.’ 식의 결과가 나오니까 이거야말로 큰일이죠.
◇ 변상욱> 그런 건 진짜 안타깝네요.
◆ 한수산> 네.
군함도를 27년 취재한 소설 '군함도'의 한수산 작가
◇ 변상욱> 그런데 이번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라는 영화는 선생님 걸 원작으로 한 건 아니죠? 다른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 한수산> 네, 아닙니다. 류 감독하고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일찍이 만났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제 소설 군함도는, 군함도에 끌려간 그 사람들이 나가사키를 나왔다가 피폭을 당하는까지를 그리고 있는데요. 자기는 그거까지는 못 그리겠다, 자기는 군함도까지만 그리겠습니다라고 했었고, 좋은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이런 이야길 했었죠.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영화가 이제까지 한 편도 우리 문화 쪽에 일하면서 부끄러움이다 그런 얘기를 했었죠.
◇ 변상욱> 군함도에서는 주인공들이 군함도를 탈출하는 장면들이 계속 나옵니다. 죽어야 나갈 수 있는 섬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진짜 탈출자가 있었나요?
◆ 한수산> 조선인 경우는 어땠냐 하면 나무 등걸이거나 이런 걸로 휘저어 나가는데 이 섬의 조류가 이렇게 빙빙빙 도는 특이한 곳이에요. 그래서 나가다가 붙잡히게 된다, 또는 쫓아오지 않겠습니까 나간다는 게 발견됐을 때? 일본 기록을 보면요, 저는 일본 기록을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다. 자료에 보면 쫓아나간 감시원들 말하자면 다 이쪽 직원이겠죠, 그 직원들이 노 같은 걸로 때려서까지 죽였다는 기록이 나와요.
◇ 변상욱> 나뭇조각 하나에 의지해서 헤엄쳐가는데 뒤에서 배를 타고 쫓아와서?
◆ 한수산> 네. 목숨 건다는 게 바로 그런 거겠죠. 그런 고난의 얘기들이 실제 나오긴 합니다.
◇ 변상욱> 군함도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은 됐습니다마는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에 대한 기록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 한수산> 먼저 우리 정부나 우리 언론의 대응이 미숙했습니다. 첫째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이거예요. 강제징용을 해서 강제노동을 한, 강제사역이 된 아주 범죄적인 노동을 자행한 곳이 어떻게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게 우리의 논리였거든요. 하지만, 당연히 됩니다. 왜냐하면 영국 리버풀에 있는 노예시장 이것이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왜? 인류가 저지른 범죄적 문제는 후대에 알려야 한다. 그래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거예요.
◇ 변상욱> 야만의 증거군요?
◆ 한수산> 그럼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복역했던 조그만 감방.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도 이런 일이 되풀이되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어떤 걸 했어야 했냐면 그걸 적시에 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일본이. 군함도에도 팻말 붙이고 안내문에도 전부 쓰고 ‘여기서 조선인이 500명에서 1000명까지가 강제노역이 행해졌었다. 그리고 가혹한 15시간의 노동을 했다.’ 하는 것을 적도록 했어야했는데 이걸 지금까지도 뒤로 미룬 채 지금까지도 일본이 강제노역을 한 거기가 어떻게 문화유산이 되느냐만 논란 삼는 건 아주 거대하는 거대한 미스입니다.
◇ 변상욱> 군함도에다가 침략과 만행이란 딱지를 붙였어야했다?
◆ 한수산> 네. 그래서 지금 군함도에 관광객들이 들어가면 해설하는 것이 여기가 낙원이었다, 이러고 있었거든요. 일본 애들은 낙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끌려간 조선인들에게는 지옥이었다는 거죠. 이것도 분명히 갈라서 얘기를 했어야 되고요.
한수산 작가의 소설 '군함도'
◇ 변상욱> 알겠습니다. '과거의 진실에 눈 떠서 미래를 볼 수 있었는데 좋겠다.' 이 말씀은 젊은이들을 향해서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죠?
◆ 한수산> 그럼요. 한 주인공이 원폭을 맞고 사흘 동안... 원폭을 맞았는데 원폭을 맞은지 모르고 피 흘리면서 돌아다녀요. 그러다 죽는데 이것도 실제 있었던 증언에의한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 대사로 그런 말을 해요. '오늘 우리의 후손들아, 우리를 잊지 말아라. 우리를 잊는다는 건 희망을 잃는 것이다.' 하는 대사를 집어넣었었죠. 죽어가면서 하는 말.
◇ 변상욱> 저는 소설 속에서, 나가사키 피폭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든 병원으로 막 옮기다가 조선말로 '물 좀 주세요.' 하면 조선인이라고 버려버리는 그 장면이 생각나요.
◆ 한수산> 다쳤는데 일본말이 나오지 않죠, 몇 마디 할 수 있는데. '물 좀 주세요. 엄마엄마엄마' 부를 수밖에 없죠. 조선말 쓰면 조센징이라 그래가지고 버리는 겁니다. 그랬는데 오랫동안 자료를 들여다 보니까 놀라운 걸 발견했어요.
미쓰비시 조선소에 부장급 간부가 쓴 주간지의 증언서에 보면 징용을 간 한국인들은 어떻게 했느냐면 다니면서 일본인들을 구출하고 들것에 실어나르고 주먹밥을 나눠줬다고 그 얘기를, 전부 노고를 썼어요, 그 간부가. 맨 끝에 가서 딱 세 줄이 그런 게 나옵니다. '주도적으로 구조에 나섰던 젊은 조선징용군 제군들의 활약을 잊을 수는 없으리라.' 하는 감사의 말을 달아요, 딱 세 줄을요. 그거 보고 눈물이 왈칵했었어요. 한국인은, 조선인은 그때 간 사람들은 인간의 길을 걸어갔다는 거죠. 그걸 그린 게 군함도라는 소설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 변상욱> 이번 영화에선 군함도에서 탈출해 나가는 그런 이야기만 군함도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마는 지금 얘기한 원폭, 피폭 당시와 한국인들의 인간, 휴머니티를 살린 그 장면들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 한수산> 여러 감독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잊지 말 것은 강제징용 노동자를 다룬 이게 첫 영화입니다. 이제까지 강제 징용 노동자를 다룬 영화는 한 편도 없었어요.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일본 정부, 일본 언론에서 영화를 비판하는 그런 기사들이 나오고 하는 모양인데 내년에도 나오고 후년에도 나오고 열 편, 열 댓 편 나올 때 그 말을 못하게 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바르게 재현시켜야죠. 문화인들의 책무가 거기 있는 거죠.
◇ 변상욱> 소설로 영화로 다큐멘터리로 또 시로 뭐든지 막 나와야...
◆ 한수산> 그럼요. 뮤지컬로도 나오고 연극도 하고요. 과거라는 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지금 여기 있지 않느냐 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곳의 희생자가 됐던 분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길들을 계속 만들어 가야죠. 그게 우리 후대가 해야 될 책무입니다.
◇ 변상욱> 알겠습니다. 그 말씀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아무튼 27년의 지난한 수고가 결국 이렇게 결실로 하나둘 맺어져서 정말 좋습니다.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 선생님이었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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