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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명박은 '보수'입니까?



문화 일반

    그런데 이명박은 '보수'입니까?

    [대한민국 보수史 ①] 단죄된 구시대 보수의 역습

    지금 한국 보수는 "보수답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시대의 준엄한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 한 축으로서 건강한 보수는 어떠한 얼굴을 지녀야 할까요. 해방 뒤 한국 보수가 걸어온 오욕의 길을 파헤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진단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그런데 이명박은 '보수'입니까?
    ② 노무현이 '보수의 나라'에 뚫은 숨구멍
    ③ 끈 떨어진 '박정희' 붙드는 요지부동 구태
    ④ "모든 적폐는 '이승만의 승리'에서 비롯됐다"
    <끝>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영종도 인천공항에서 바레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이러한 것(적폐청산)은 국론을 분열시킬 뿐 아니라 중차대한 시기에 안보외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전 세계 경제 호황 속에서 한국 경제가 기회를 잡아야 할 시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세간을 뒤흔드는 물음이 하나 있다.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 이 형식을 빌려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자입니까?"

    정치학자 강원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물질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고 답했다. 물질주의에 대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물질적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윤리학의 한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강원택 교수는 "한국 보수의 기본 틀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박정희 시대가 지닌 핵심 개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반공', 나머지는 '성장'이다. 흔히 말하는 '빨리빨리' 문화가 가리키듯이 성장은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물질적 성공과 발전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개념이다. 이는 박정희 시대를 거쳐 온 한국 보수의 중요한 특성이다."

    결국 박정희 시대의 유물인 '성공' 개념이 이 전 대통령의 보수 성향을 규정하는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 대통령을 보수주의자로 볼 수 있다. 다만 '반공'보다는 '성장'에 강조점을 둔 물질주의적 보수주의자"라는 것이 강 교수의 진단이다.

    "동반성장정책이 나오기 전이던 초기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수출 중심 정책으로 낙수효과를 만들어내면 그 성과를 사회 전반에 파급될 수 있다고 봤다. '일단 되는 데 투자해 빨리 성장시키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박정희식 경제 보수주의가 극대화된 면을 포착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보수 성향에 '주의'(ism,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를 붙이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철학자 박동천(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주의라는 용어가 나름의 정합성을 지닌 가치 체계를 가리킨다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현실 정치인 가운데 보수주의자는 없다"고 말했다.

    "(근대 보수주의 원조 격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 등은 남들이 보수주의자로 부르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적극적으로 썼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철학자·사상가 또는 최소한 작가 등 지식인이었는데, 그 정도 되는 현실 정치인은 젊은 시절을 자유당원으로 보낸 영국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1874~1965) 정도에 머문다. 가령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체계적인 사상을 지닌 보수주의자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이명박과 박근혜도 트럼프 정도 수준으로 봐야 한다."

    그는 "결국 (이 전 대통령 등은) 현실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도모하기 위해 참모들이 지어낸 말로 대중 연설을 했던 정도 수준"이라며 "머릿속에 일관된 가치체계로서 정치철학이 스며든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 '박정희 신화' 등에 업은 MB…"막연한 기대" "철학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오후 영종도 인천공항을 통해 바레인으로 출국하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이 전 대통령의 수사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펼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특징과 역사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 이나미(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특별한 정치 지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보수 뒤에 '주의'가 붙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이전 정부가 '문민정부'(김영삼), '국민의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로 간 것과 달리, 이명박 정부는 초창기 '실용정부'라고 이름 붙이려다가 의견이 분분하니까 무색무취한 '이명박정부'로 갔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특별한 정치적 가치관이나 목표를 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나미 연구위원은 '보수'와 '수구'를 구분해 설명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그는 "보수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는 데 반해, 수구는 맹목성을 띤다"고 운을 뗐다.

    "보수주의자를 현실주의자라고도 얘기하잖나. 보수는 맹목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기 손익 계산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는 점에서 공익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이들은 대세가 뭔지를 아는, 현실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이어 "수구의 경우 자기 나름의 신념을 좇는 탓에 말이 안 통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부정적"이라면서도 "그 신념이 한 번 꺾일 경우, 본인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다른 신념에도 설득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제가 볼 때 이명박의 경우 실리주의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수구보다는 보수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다소 갈린다.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중도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표가 많이 갔다. 제 주변의 합리적인 중도파도 이명박을 많이 찍었다. 보통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시대를 '산업화시기'로 구분하는데, 이명박은 신격화된 박정희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제2의 산업화'에 대한 기대,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경제 도약을 이루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자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 배경에 대해 강원택 교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임기 후반이 되면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민주주의에 대한 만족감이 전반적으로 높아진다"며 "이 정도면 우리 민주주의가 충분히 달성됐다고 생각할 무렵, 사람들은 경제적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 무렵 '박정희 신드롬'이 나타난다. 박정희 신드롬 안에서 반공에 뿌리를 둔 정치적 억압에 대한 두려움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피부로 강하게 와닿지 않을 만큼 약화됐다. 대신 박정희 시대의 또 다른 한 축인 경제성장에 대한 기억, 그리움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이때 사람들의 눈에 띈 인물이 이명박 당시 후보였다."

    그는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 고속성장의 신화가 됐던 것이 현대건설이었다"며 "그곳에서 오너도 아니었으면서 그 신화에 동참했던 '좋았던 시절'을 대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 '산업화 병폐' 부활…"부정부패·정경유착이 한국 사회 집어삼켰다"

    전 대통령 박근혜(왼쪽)와 이명박(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이명박 정부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이러한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역사가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산물과 부정부패, 정경유착이 삼위일체처럼 한국 사회를 집어삼켰던 탓"이라고 진단했다.

    "지금은 다소 잊힌 측면이 있지만 이명박의 등장은 '실용' 개념과 함께였다. 실제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버스전용차로, 청계천 복원 등 굵직한 성과를 냈는데, 이는 박정희식 산업화와 맥을 같이한다.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었다"는 것이 박정희 신화이듯, 이명박 역시 성과를 강조하면서 정치적 논쟁을 멀리하고 실용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겠다고 어필하지 않았나. 그렇게 박정희 시대를 향수하던 이들은 이명박이 그 시대의 좋은 점만 귀환시킬 것이라 본 셈인데, 이것이 이명박 정권의 성립에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심 소장은 "문제는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성과가 박정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가 비슷한 시기에 뚫리면서 강남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강남지구가 개발된다. 그런데 강남에 많은 거주공간이 들어서면서 그 정보를 미리 빼낸 관료의 식구들이 소위 '복부인'으로 변신해 땅 투기로 폭리를 취하는 흐름이 함께 왔다. 이명박의 집권은 이러한 기득권의 귀환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사익을 취하는 행태가 자연스레 다시 벌어졌다."

    그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한국 사회에서는 개발보다 부정부패가 이뤄지기 딱 좋은 환경일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시대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악영향만을 양산한 최악의 시대"라고 비판했다.

    심 소장이 이 전 대통령을 '구시대적 보수'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명박은 보수다. 이명박 같은 사람들은 이미 단죄된 구체제에서 호의호식을 누리던 기득권 세력"이라며 "과거 독재 유산을 여전히 따르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이기에 그러한 폐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고 질타했다.

    박동천 교수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박정희 신드롬을 물려받은 이명박과 박근혜는 오히려 박정희보다 퇴보했다"고 봤다.

    "둘 다 박정희보다 못했다. 한 가지만 진화한 것이 있는데, 선거를 두려워한 박정희와 달리 이명박·박근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경우 '선거에서 진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 병적인 자기 확신이 있었다. 이 부분은 자기 아버지보다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안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스스로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그는 "박정희는 적어도 여러 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정부 업무를 파악하려 애썼던 데 반해, 박근혜는 (정부 업무를) 전혀 몰랐다"며 "이명박의 경우 드러나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정희 시대의 폐해인 사리사욕만 챙기는 수준을 극대화시켰다는 데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 이명박·박근혜 거치며 드러난 '민낯'…"폐쇄·경직된 사고, 보수 아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이명박 정부에 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부르면서 구시대적 보수의 한계를 오롯이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심용환 소장은 "국정교과서 강행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박정희의 딸로서 박근혜는 말 그대로 아버지의 유신체제 부활을 꿈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은 박정희 시대의 권력자라기보다는, 그 시대 산업화 과정에서 성공한 사람인 만큼 그 범위 안에 머물면서 활동했다. 반면 박근혜의 궁극적인 목적은 박정희 시대의 재현이었다고 본다. 시대가 바뀐 상황에서 굉장히 무리하게 박정희 시대의 철권통치 방식을 재현하려 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완전히 단죄된 통치 방식을 강요했으니 일찍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원택 교수도 "큰 틀에서 보면 전통적인 박정희식 보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할 수 있다고 여긴다"며 "반공이라든지 중앙집권주의, 관료주의 등 이념적인 것들이 그 증거다. 반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녔던 보수는 그런 전통적인 보수보다는 물질주의에 기댄 보수적 색채가 강했다"고 전했다.

    심 소장은 "박정희 신드롬은 적어도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끝났다고 본다"며 "그 잔영이 남아 친박집회 등이 벌어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드러난 민낯으로 인해 한국의 보수세력은 강력한 변화의 요구와 맞닥뜨리고 있다.

    강 교수는 "보수는 말 그대로 현재의 가치와 질서를 지키고 싶어하는 세력"이라며 "좀 더 빠른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와 진보가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세상이 계속 바뀌어 나가는 상황에서 과거의 가치를 그대로 지켜낼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치는 조선시대, 1930년대, 40년대, 60년대의 가치와는 전혀 달라졌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보수는 놓여 있는 상황에 걸맞게 스스로 자기 변신을 하면서 고유의 가치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그는 "옛것을 그대로 고집하면서 그 가치를 전혀 바꾸지 않겠다는 폐쇄적인 형태, 경직된 사고를 보수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여러 가치들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보수 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② 노무현이 '보수의 나라'에 뚫은 숨구멍]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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