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 소피텔호텔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드갈등을 봉합하고 관계회복에 방점을 찍은 한중 양국 정상의 2라운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공세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완급조절 모양새를 띄었다.
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필리핀에서 중국의 '2인자' 리커창 총리와 단독 회담을 열고 "사드로 침체된 한중관계로 한국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포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긴 약 50분간의 회동에서 우리 기업이 생산한 전기 자동차 배터리 보조금 제외 문제와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수입규제 문제 등을 직접 언급하며 중국측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드로 한국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해, 사실상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를 중국 고위급 앞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앞서 지난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한중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공감하고, 양국 협력관계를 긴밀히 하자는 수준에서 사드 갈등을 봉합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배터리 보조금 제외 문제는 지난해 7월 한반도 사드 배치 이후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경제보복 조치 중 하나로 분류된다.
문 대통령이 다자회의 중 열린 양자회담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 자리에서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더라도, 다음달 한중 3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보복 조치 등을 의제에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7월 26일 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기업총수 호프타임을 진행할 때 참석했던 구본준 LG 부회장은 "저희가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를 중국이 아예 받지 못하게 명문화해놨다"며 "중국이 현대차 중국 모델 수입을 막아버려 저희 배터리도 못들어가고 있다"고 성토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한국 기업 피해 구제 요구는 사드갈등 봉합 이후 본격적인 한중관계 복원 의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기존의 경제보복 조치들이 장기화되면서 모처럼 불어온 한중관계 훈풍이 자칫 발목잡히면 안 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런 기조는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 이전부터 감지됐다.
청와대는 이틀 전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부터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양국간에 좀더 실질적인 개선 방안들에 대한 방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 총리는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공세에 차차 해결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즉답을 피했다.
리 총리는 "일부 구체적이고 예민한 문제들을 피하긴 어렵지만, 중한 간의 실질협력 전망은 아주 밝다", "양국은 상호보완성이 강해 중한 관계의 미래는 자신할 수 있다" 등 원론적인 답변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리커창 총리는 회담 초반 "봄이 오면 강물이 먼저 따뜻해지고 강물에서 있는 오리가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다"며 먼저 봄을 기다려야한다는 뉘양스의 말도 내놨다.
또 문 대통령이 먼저 꺼낸 바둑 얘기를 언급하며 "바둑은 대승적이고 전반적인 국면을 파악하고 종합적이면서 전략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도 언급하면서 속도조절에 나선 모습도 연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오늘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이 부분들은 12월에 중국에 가니까 그 때 더 많은 얘기를 나누자"며 대화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마음이 급하지 않냐. (중국이 사드 제재를) 빨리 풀어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리 총리를 만나 '하나라도 더 빨리 풀어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 리 총리가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자고 한 것"이라고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