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최근 사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정부가 서둘러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기업 담당자 등의 전문성 제고 방안이 더 강화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정부는 2013년 이후에만 5번이나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대책을 발표해왔지만, 최근 불거진 한샘, 현대카드, 성심병원 등 사례처럼 사내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서 지난 9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 발맞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노동부가 모든 근로감독에 '직장 내 성희롱' 분야를 필수항목으로 포함한 점이다.
그동안 일부 근로감독에서만 선택적으로 성희롱 관련 조치를 감독했는데, 이번 대책을 통해 대상 사업장의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감독에서 반드시 '직장 내 성희롱' 분야를 살피도록 바뀐다.
문제는 실제로 사업장을 감독할 근로감독관들이 과연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전문성을 갖췄냐는 점이다.
근로감독관의 전문성 문제는 비단 성희롱 관련 문제만이 아니다.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지난 8월 인사청문회 당시 "화학물질·IT·게임 등 여러 분야의 근로감독관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근로감독관의 전문화를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근로감독관은 별도 직렬 없이 일반행정직 공무원 가운데 배치되고 있어 감독관의 기본 소양인 노동법 등에 관한 기초소양조차 갖추기도 쉽지 않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은 "지난 6년 동안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내려 적발된 사례는 겨우 26건, 이 중 기소된 사안은 겨우 2건"이라며 "근로감독관들이 충분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선 근로감독관을 상대로 성인지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사상 처음으로 감독관을 대상으로 교육을 벌이는만큼 부족하더라도 첫 발을 내딛었다고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감독에 더해 1인당 한 해에 350여건이나 되는 신고사건까지 처리하는 격무에 시달리는 감독관들이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지는 미지수다.
박 실장은 "일반 감독관을 대상으로 단 몇차례 교육한다 해서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라며 "자칫 조사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사내 성희롱 전문 감독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이번 발표에서 사업장 스스로 사내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정부가 강하게 권고했다.
성희롱 고충처리담당자를 운영하거나 사내 전산망에 사이버 신고센터를 설치하도록 한 것 등인데, 전문성이 없는 일반 사기업에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예를 들어 피해자 신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경우 피해자들이 사내 평판 등을 우려해 신고하기 부담스럽다. 반대로 익명 신고제를 운영할 경우 사측이 피해사례를 접수해도 이를 추적해 조사하기 어려운데, 전문성이 낮은 기업들이 능숙하게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또 가해자는 사측의 처벌에 불복하고 항의할 수 있지만, 가해자에 내려진 처벌이 성희롱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더라도 피해자가 문제삼을 수 있는 통로가 없어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박 실장은 "예컨대 취업규칙에 성희롱 대응 사항을 반드시 다루도록 강제하거나 노사협의에서 성희롱 고충담당위원을 두는 등 사업장 특색에 맞춘 별도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사내 담당자들에게 관련 교육을 이수하도록 권고를 넘어 의무화하고,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는지 확인하도록 관련 서류를 일정 기간 보관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은 "사내 성폭력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며 기업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성희롱을 예방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강력한 처벌이 내려지는 사례가 유의미하게 누적되야만 신뢰할 수 있는 사내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