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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마지못해' 국정원장, 이병기를 위한 변명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의혹과 관련해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2014년 6월 주말이었던 것 같다. 휴일을 맞아 모처럼 단잠을 자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일본이었다. 이병기 주일대사가 나의 늦잠을 타박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부르신거냐?"라고 그에게 물었다. "대사 노릇 오래못할 것 같다"라는 말과 함께 "일본에서 잘하고 있는데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라는 푸념이 들렸다. 주일대사로 간지 1년 2개월이 지났을 때다.

    그의 새로운 직업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시는 대선 댓글 사건으로 국가정보원 개혁 요구가 거셌던 시기로 남재준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주일대사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이병기 국정원장은 취임 이후 국내정치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며 탈정치 선언을 했다. 군 출신인 남재준 전임 원장의 강경하고 단호한 스타일과 달리 이병기 원장은 '조용한 국정원'을 지향했다. 그런 국정원장직도 불과 7개월 만에 끝났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윤회 동향 문건' 파문으로 물러나고 후임 비서실장을 맡았다. 이병기 비서실장의 청와대 시절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처음 비서실장을 맡았을 때만 해도 김기춘 전 실장과 달리 여의도 정치와 소통하려하고 언론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가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고 한숨 소리가 잦아졌다.

    "대통령 얼굴은 자주 볼 수 있는거냐? 3인방(안봉근 이재만 정호성)의 권세가 그리 센거냐?"라고 물으면 역정을 냈다. "다 내 책임이니까 그런 소리 좀 하고 다니지 말고 기사도 그렇게 좀 쓰지말아달라"고 했다. 그래도 말 느낌에 3인방의 위세에 눌려 제 역할을 못하는 자괴감마저 지우지는 못했다.

    2016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는지 갑자기 언론사 보도국장·편집국장 간담회를 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간담회 내내 한마디도 하지않았고 표정은 밝지못했다.

    그 간담회 자리에 배석했던 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병기 실장, 안종범 경제수석 등 수많은 수석과 비서관, 참모들이 불과 1년여 뒤에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간담회가 끝나고 떠나는 길에 이병기 실장과 잠시 귀엣말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거요?"라고 물었다.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만 기다려봐. 이 생활 오래 못해. 내가 죽겠어"라는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가 하는 예의 푸념으로 여겼다. 이 말은 한 달 뒤 현실이 됐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5월에 퇴진했다. 그의 비서실장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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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이 전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결정으로 삼성동 사저로 돌아올 때 딱 한번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7개월 뒤인 지난 13일 서초동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섰다.

    이병기 전 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하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 전임 원장과 마찬가지로 동참했다. 뿐만아니라 매달 5천만원씩 상납하던 액수를 1억원으로 올린 장본인이고 비서실장으로 가서는 후임 이병호 국정원장으로부터 다시 상납을 받는 처지가 됐다.

    그는 평소 '권력의 위험성'에 대해 누구보다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의전수석을 거쳐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국정원장 특보와 2차장을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3명의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권력의 부침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어느해 봄날 여의도에서 한가롭게 둘이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그에게 "적적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 전 원장은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다”라며 "권력과 돈은 불(火)과 같아서 너무 멀리 있으면 춥고 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는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타 죽는 것 보다는 좀 춥더라도 견디는게 낫지 않느냐?"며 껄껄 웃었다.

    이병기 전 원장은 2007년 대통령선거에 이어 2012년 대선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다시 선택해 확실한 '친박인사'가 된다.

    이병기 전 원장에게 "왜 이명박이 아닌 박근혜를 선택했나?"라고 물었다. 그는 "나는 MB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이다. 그는 사기꾼이다. 그런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남는 사람은 박근혜 밖에 없지않나"라고 말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특보 시절에도 양정규 김기배 하순봉 등 이른바 '민정계 3인방'의 등쌀에도 이 총재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공천 제안도 있었지만 그는 물리쳤다. 직접 전면에 나서 정치하는 것이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병기 전 원장에게 일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를 위해 동문인 이인제 후보에게 돈심부름을 한 일이다. 이른바 '후보자 매수 공작사건'이었다.

    그때 검찰수사 받은 일은 그에게 가장 힘든 기억이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병기 전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사건으로 소환된 다음날인 14일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병기 전 원장이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어 검찰이 신병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원장은 검찰에 출두할 때 국정원 특활비를 엉뚱하게 국가안보에 연결지어 목소리를 높인 남재준·이병호 전 원장과 달리 "국민께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검찰조사에서도 혐의 사실을 순순히 시인하고 조사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과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이병기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병기 전 원장에게는 치욕과 트라우마가 한겹 덧씌워지게됐다. 권력에 불타 죽을 수 있음을 누구보다 경계했던 그였지만 결국은 타 죽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마지못해' 친박인사가 됐고 주일대사를 지냈고 국정원장을 맡았으며 청와대 비서실장직을 떠안았다 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운명공동체로서 주홍글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지향하지도 않았고 마지못해 권력 주변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사는 변명으로 밖에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변명을 해준다면 차라리 불에 타 죽지 말고 '얼어죽는 길'을 택했더라면 좋았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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