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16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한 건물 앞에 지진 피해를 입은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지표면 아래 불과 9킬로미터에서 5.4의 강력한 지진을 맞은 포항 주민들의 지진 트라우마는 매우 심각했다.
지진 피해가 심각한 포항시 흥해읍과 양덕면 등 북부권 지역 주민 1500여명은 이틀째 밤을 흥해 실내체육관이나 인근 교회의 대피소에서 보냈다.
특히 가장 많은 이재민이 머물고 있는 흥해 실내체육관에서 700명에서 1천명 가량의 주민들은 한밤중에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모습이었다.
실내 체육관 바닥에는 여섯줄의 스티로폼 바닥이 길게 깔렸고 그 위에 주민들은 빽빽히 들어앉았다. 자유롭게 몸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아이들은 종종 체육관 안과 밖을 뛰어다녔지만 나이 든 주민들은 담요를 덮고 누워있거나 망연히 체육관 어딘가를 응시할 뿐이었다.
◇공무원·학생·아파트 주민도 '트라우마' 호소이들 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지진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렸다.
포항시 양덕동 18층 아파트에 사는 50대 김 모씨는 5.4의 강진이 났던 당시를 생생하게 전하며 몸서리를 쳤다.
"작년에 경주지진으로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번에 본진이 오기 전 전진 2.4정도 있었는데 간격이 길지 않았다. 쿵쿵하고 흔들렸고 우르릉 쾅쾅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한 김 씨는 "대피를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18층에서 1층으로 뛰어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신없이 슬리퍼만 신고 내려오는데 한참을 내려 왔다고 생각했는데 11층이었다. 또 한참 내려왔는데 9층, 2층... 그랬다"고 전했다.
김 씨는 "주차장에 내려와 2시간쯤 뒤 다시 4.0의 여진이 왔는데 마치 덤프트럭이 빠르게 지나갈때 가만히 서있는 승용차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술회했다.
"그 다음 이불을 챙기러 올라갔더니 싱크대, 서랍장 다 문이 열려 있었다. 빌트인 냉장고 냉동실 문도 열려져 있었다. 겨우 이불만 가지고 나와서 주차장의 승용차에서 밤을 샜다."
김 씨는 "경주 지진 이후 공황장애가 생겼는데 이번 지진으로 약간만 흔들려도 두렵다"고 말했다.
또 "텐트치고 놀러가면 내가 돌아갈 곳이 집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돌아갈 집이 문제가 생겼다. 정말 멘붕이다. 내가 집에 들어가는 이유는 1층에 살면 들어갈 것 같은데 18층에 살아 계단이 너무 많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16일 흥해실내체육관 임시대피소에 이재민들이 대피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16일 포항 장성동 한 건물의 기둥들이 지진으로 인해 부서져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트라우마를 호소하는건 '지진피해 이재민 현장조사'를 나온 포항시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 공무원은 "아파트에 사는데 너무 흔들려서 1주일 후 임용고시를 앞둔 아이가 안정이 안된다며 지금 처갓집에 가있다"고 말했다.
외벽에서 타일 벼락이 떨어진 한동대학교 학생도 고통을 호소했다. 이 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신바람 군은 인근 교회(기쁨의 교회)에서 대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 군은 "학교내 느헤미아라는 건물이 있는데 지은지 오래됐고 진앙지에서 불과 7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아 외벽이 떨어지고 모레같은 것이 흩날렸다"고 말했다.
신 군은 "학교가 수업을 언제 재개할지 모르지만 오래된 건물이나 증축한 건물에서 수업을 다시 재개한다면 불안할 것 같다. 특히 3층,4층 사진을 보면 다시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꼭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학교에서 다른 강의실을 배정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흔들리지 않아도 흔들린다는 착각"일부 주민들은 지진 피해가 큰 집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허탈해 했다.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진료소와 심료상담실이 운영됐다. 흥해체육관 진료소에는 하루동안 150여명이 찾아왔다. 이 가운데 98명은 약을 타갔다.
역대 두번째 규모인 5.4 지진이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가운데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지진 피해현장 주변으로 구급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역대 두번째 규모인 5.4 지진이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가운데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지진피해를 입은 아파트 주민들이 필수품만을 가지고 대피소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진료소의 백성민 내과전문의는 "지진 이후 불안감, 수면장애. 땅이 흔들리지 않는데도 흔들리는 느낌을 계속 느끼는 분도 있고 계속 그런쪽으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분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불안해 하고 어지러워 하고 지진이 생길까봐 무서워 하는 그런 분이 많고 그런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어지럽거나 두통을 호소하거나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피소를 둘러 본 공무원은 "주민들의 트라우마 심료치료를 해줄 인력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항 이재민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상당기간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힌가지 위안은 자원봉사자이든, 공무원이든 각자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로가 돕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