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병원 장례식장 입구. (사진=고무성 기자)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인하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로비.
영흥도 낚싯배 사고로 숨진 3명의 유가족들이 모여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옹진군청에서 나온 공무원으로부터 장례 절차와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사망자 A(53) 씨의 남동생 B 씨는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밖으로 나가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낚시를 좋아했던 A 씨는 다른 낚싯배의 사무장으로 근무했다. 영흥도에 들어간 지는 4~5년 됐다고 한다.
사고 당시 자신이 타던 낚싯배의 손님이 적어 나가기 어렵자 자신의 단골 손님과 함께 선창1호에 몸을 실었다. 보통 낚싯배들은 정원에 한참 못 미칠 경우 일명 선단을 꾸려 한 배에 몰아서 간다는 것이다.
A 씨는 이번엔 손님 자격으로 선내에서 머물다 사고 충격으로 배가 뒤집히면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선장이 꿈이었다. 4년 전쯤 자격증도 땄지만 선장이 되기 위해 사무장으로 경력을 쌓고 있었다. 내년에는 드디어 배를 살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동생 B 씨는 형제들의 슬픔을 더 걱정했다. 9남매 중에서도 8째인 A 씨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또 지난 1월에는 홀어머니마저도 돌아가셨다.
형제들은 모두 서울과 경기, 인천 등에 거주하며 우애가 두터웠다고 한다. 특히, 막내인 B 씨는 9남매 중에서도 바로 위인 고인과 가장 각별했다.
A 씨와는 두살 터울 밖에 되지 않아 함께 대학을 나오고 사회생활도 비슷한 시기에 겪었다. 매달 1~2번씩 낚시도 같이 해왔다. 최근에는 운송업을 하던 B 씨가 바빠지면서 하지 못했다.
3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대교 남방 2마일 해상에서 크레인 선박이 전복사고로 침몰한 낚싯배를 인양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B 씨는 사고가 발생한 좁은 해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선주와 선장들이 위험을 많이 느껴 군청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다고 전했다. 사고 후에는 선주나 영흥도 주민들로부터 언제 한 번 사고가 날 것 같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사고가 난 해역은 폭 200~300m, 수심 10~18m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B 씨는 직접 형의 스마트폰을 꺼내 생전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사고로 형과 함께 바다에 빠졌지만 다행히 방수 기능 덕분에 아직도 멀쩡하게 작동됐다.
A 씨가 직접 대어를 잡고 찍은 사진부터 A 씨의 아내가 대어를 낚어 잡지에 소개된 사진, 손님들을 찍어준 사진 등에는 모두 활짝 웃는 표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B 씨는 "형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사고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형이 좋아하던 낚시를 하러 가다 숨진 것에 대해 좋게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