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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987 고문기술자 이근안 "말해봐야 나만 미친사람"

사건/사고

    [단독]1987 고문기술자 이근안 "말해봐야 나만 미친사람"

    -고문·조작의 총책임 박처원, 고문기술자 이근안 키워
    -박처원, 이근안에 "김근태 맡아라", 이후 도피까지 지시
    -'김근태 고문' 무혐의…"드러났다면 박종철 죽지 않아"
    -박처원 번번히 풀려나…法 "대공분야 헌신 공로 참작"
    -박처원 분신 이근안 "혼자 떠들어봐야, 나만 미친놈 돼"

     

    ■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 SNS 참여 : 페이스북[www.facebook.com/981news]

    ◇ 김현정> 오늘 2부 첫 순서는 1987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요즘 영화 '1987'에 대한 관심이 뜨겁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서부터 6월 항쟁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관객수 400만을 넘겼고요,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영화관을 찾으면서 열기가 더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영화 속 인물들, 당시 실존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가려진, 실제로도 꽁꽁 숨어 지내왔던, 하지만 우리가 꼭 짚어봐야 하는 핵심 인물이 있습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 이 이근안씨의 행적을 김정훈 기자가 밟아봤다고 합니다. 김정훈 기자,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를 찾아봤다고요?


    ◆ 김정훈> 네. 하지만 이근안 찾기에 앞서 이 사람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한번 들어보실까요?

    [녹취: 영화 '1987' 예고편 中]
    "정황상 고문치사가 확실해요."
    "각하께서 심려가 크십니다."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에?"

    ◇ 김현정>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그 유명한 표현이 나오는, 영화 1987의 한 대목이죠?

    영화 1987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이먼트 제공)

     

    ◆ 김정훈>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박종철 군이 어떻게 숨졌는지 설명하면서 나온 표현인데, 영화에서 대공처장 역을 맡았던 김윤석씨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기자들에게 그렇게 말했던 인물은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라고 하네요.

    ◇ 김현정> 경찰청 생겨나기 전이니까 치안본부가 있었고, 그 치안본부의 장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이 표현을 썼단 얘기예요.

    ◆ 김정훈> 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진 대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하거나 수사 결과를 마음대로 조작하던 일련의 행위를 직접 지휘한 총책임자는 김윤석씨가 연기했던 대공처장, 박처원 치안감이 맞습니다.

    ◇ 김현정> 영화 속에서 배우 김윤석씨가 북한 사투리 쓰면서 연기했던 그 박 처장이요.

    ◆ 김정훈> 실제 박처원 치안감은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했습니다. 해방 후 월남해 1947년 경찰이 됐고요. 이후 줄곧 대공파트에서만 근무했는데, 간첩 수사에서는 상징적 인물이라고 하네요.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한홍구 교수]
    "박처원이란 사람은 경찰서장도 안 하고, 도경국장도 안 하면서 치안본부 2인자까지 올라간 사람이거든요. 자기가 잡은 간첩이 수백명이다, 수천명이다 그러면서 있는 거죠. 그런데 그 중에 상당 부분이, 70년대 이후에 잡았다고 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크고요."

    ◇ 김현정> 대공분야, 그러니까 그 당시 시쳇말로 하면 '빨갱이 잡는 일'만 죽 해왔던 거네요?

    ◆ 김정훈> 네. 그렇게 해서 이른바 '박처원 사단'을 형성했는데, 같은 일을 했던 경찰들 무리죠. 그 존재가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 김현정> 오늘 우리가 찾는 사람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인데, 그 이근안도 그 사단의 일원인가요?

    ◆ 김정훈> 맞습니다. 그런데 박처원과 이근안의 관계는 그저 상사와 부하, 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분신이었습니다.

    ◇ 김현정> 서로가 말을 안 해도 통하는 정도?

    ◆ 김정훈> 이근안은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는데, 곧바로 당시 대공분실장이던 박처원의 경호원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박처원의 도움으로 대공업무에서 경력을 쌓았고, 둘의 관계는 평생 이어집니다.

    ◇ 김현정> 우리에게 이근안이 부각된 게, 바로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 가해자로 지목되면서부터 아닙니까?

    ◆ 김정훈> 한말씀만 더 드리면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근안을 끌어들인 게 박처원입니다. 박처원 치안감은 '김근태가 입을 열지 않는데 당신이 맡아야 겠다'며 이근안에게 고문을 지시한 것이죠. 그때 받은 고문의 경험을 김근태 전 의원이 생전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고문을 받았던 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사진=자료사진)

     

    [녹취: 故김근태 전 의원]
    "전류를 때로는 강하게. 길게도 하고 또 짧게도 하고. 고통과 공포는 주되, 사람이 목숨을 잃지는 않도록…"

    ◇ 김현정> '전류를 강하게 길게. 고통을 주되 죽지는 않을 정도로' 이게 이근안의 고문 기술이었던 거예요. 이때 개입이 된 게 박처원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 김정훈> 그럼에도 이근안이 드러난 건 그보다 한참 뒤입니다. 고문 피해를 당한 김 전 의원 측이 1986년 1월 고문 가해자들을 고발했지만, 이때도 직접 고문한 게 누군지도 몰라 이근안이라는 이름을 고발장에 쓰지도 못 했거든요.

    ◇ 김현정> 어쨌든 고발을 하긴 했잖아요.

    ◆ 김정훈> 고발장이 접수돼 수사가 이뤄졌지만 사건은 1년만에 무혐의로 종결됐습니다. 고문 주장은 있지만 그 증거가 없다는 것이죠. 고발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는 건데, 검찰이 그 결론을 내린 게 1987년 1월 6일입니다.

    ◇ 김현정>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숨지기 바로 직전이예요?

    ◆ 김정훈> 딱 8일 전입니다. 제대로 수사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요? 당시 김 전 의원과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던 문용식, 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문용식 위원]
    "남영동 수사팀, 한 팀이거든요. 박종철 고문했던 그 팀이 결국은 김근태도 고문했던 것이고요. 김근태 의장의 고발을 받아들여서 엄정하게 수사하고 단죄했더라면 박종철 고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죠. 누가보더라도 고문의 명백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무혐의 처리를 한 건, 100% 검찰 잘못이거든요. 그때의 검찰이 박종철을 죽인 거죠."

    ◇ 김현정> 김근태 전 의원의 고발까지 했잖아요.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무혐의만 주지 않았더라도 박종철군은 고문당해 죽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예요.

    ◆ 김정훈> 김 전 의원의 고문 사건은 오히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뒤 이어진 민주화의 흐름 속에 재수사 대상이 됐는데요,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뀐 1988년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기소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이근안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 김현정> 심판대에 섰습니까?

    ◆ 김정훈> 아닙니다. 그 무렵 11년에 이르는 도피 행각을 시작했습니다. 그 도피를 지시한 게 또다시 박처원입니다. 박처원 치안감은 이근안이 고소되자 1988년 12월 24일, 이씨를 불러 도피를 지시했습니다. 이 부분을, 이후 이뤄진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의 한 대목으로 들어보시죠.

    [녹취: 1999년 11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中]
    "너마저 개입되면 곤란하니까 일단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을 잘 돌봐주십시오"라고 부탁한 다음에…"

    ◇ 김현정> 이전에 고발당했을 때는 도피조차 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정권이 지켜줄 거니까. 이제는 방법이 없어 보이니까 도피행각이 시작된 겁니다.

    ◆ 김정훈> 경찰은 이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씨에 대해 '피의자 지명수배'도 아닌 '직장이탈자 발생 수배'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 김현정> 경찰이 이근안의 도피를 방조한 거네요. 박처원은 직접 지시를 한 거고요. 이근안은 그렇게 달아난 건데, 박처원 치안감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때 처벌 안 받았습니까?

    (사진=자료사진)

     

    ◆ 김정훈> 영화 1987에서는 박 치안감이 구속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사실 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그때 판결문 내용을 잠깐 들려드릴까요? "피고인들이 경찰에 봉직하면서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대공분야에 헌신했고 유죄판결 자체만으로도 그동안 쌓아올린 공로에 치명상을 입게 된 점을 참작,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내용입니다.

    ◇ 김현정> 숱한 고문과 조작, 이런 것들이 공로로 인정된 거네요?

    ◆ 김정훈> 풀려난 박처원 치안감이 했던 일이 뭔 줄 아십니까? 이근안을 비롯한 고문 경찰들에 대한 뒷바라지였습니다.

    ◇ 김현정> 이근안이 숨어있을 동안 도와준 게, 또 박처원 치안감이요?

    ◆ 김정훈> 박 치안감은 카지노업자로부터 10억 원을 챙겨 이중 일부를 이씨 등 고문 경찰들에게 건네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근안이 1999년 자수하면서 드러났고요. 그럼 그때라도 박처원 치안감이 범인도피 혐의로 다시 처벌을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 김현정> 당연하죠. 아니었습니까?

    ◆ 김정훈> 박 치안감이 불구속 기소되긴 했지만, 이번엔 '고령과 당뇨병' 등을 이유로 또다시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됩니다.

    ◇ 김현정> 아니, 사람 죽이는 고문을 지시하고, 그 고문기술자의 도피를 도운 사람인데 단 한번도 제대로 처벌을 안 받았다는 얘기입니까?

    ◆ 김정훈> 이에 대한 박 치안감의 입장을 꼭 듣고 싶었는데, 취재 결과 10년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를 대신해 이야기를 해줄 사람을 찾게 됐습니다.

    ◇ 김현정> 이근안씨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이근안씨 찾아보셨어요?

    ◆ 김정훈> 박처원 치안감의 분신과도 같은 이근안은 자신의 고문 행위뿐만 아니라 박 치안감을 중심으로 진행된 당시 고문 수사의 전모를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찾아봤는데요. 지난주 이근안이 사는 주소를 파악해서 서울 동대문구의 주택가를 찾아봤습니다. 먼저 들어보실까요?

    [녹취: 이근안]
    "똑똑똑"
    "안녕하세요, 잠깐 인터뷰 가능하신지 여쭤보려고…"
    "인터뷰 안해."
    "여러가지 사건도 있는데, 들어보려 왔거든요."
    "인터뷰 안해."
    "왜 안 하시는지…"

    ◇ 김현정> 매몰차게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 김정훈>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 사는 이근안은 내복 차림으로 취재진과 맞닥뜨렸습니다. 한때 별명이 '곰'이었다는데, 지금의 행색은 늙고 배 나온 80대 노인 딱 그 모습이었네요. 부인은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홀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강하고 날카롭던 예전의 눈빛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김현정> 단 한마디도 안 하던가요?

    이근안 집 계량기. 낮에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사진=박윤혁 인턴기자)

     

    ◆ 김정훈> 이튿날 다시 찾아봤습니다. 여전히 인터뷰는 거절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기더라고요. 들어보시죠.

    [녹취: 이근안]
    "지금 30여 년 전 얘기요. 본인 기억도 잘 안나고, 관련된 사람들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 봐야 나만 미친놈 돼. 살 거 다 살고 나와서 지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이라도 행복하게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안 해."

    ◇ 김현정> 관련된 사람도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봐야 나만 정신 이상자 된다,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 김정훈>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아니죠? 이근안은 앞서 간간히 있었던 언론과의 접촉에서도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할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고,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었죠.

    ◇ 김현정> 지금 들어보면 억울하다 이런 뉘앙스예요.

    ◆ 김정훈> 현재도 그런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전 처음인 것 같아요. 이근안의 목소리를 들은 게. 30년이 지나 돌아봤습니다. 1987년, 그리고 그 이후의 움직임까지 죽 살펴봤는데요. 그 당시 악행을 저지른 장본인들이 지금도 사과나 반성의 기미 없이 여전히 억울하다는 입장이라는 게 충격적이고요. 1987년 민주화를 향했던 몸부림은 어쩌면 여전히 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정훈 기자, 오늘 여기서 멈추지 말고 관련된 후속 보도도 더 준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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