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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대통령이 만화 봤단 뉴스 안 나오잖아요"

    [인터뷰] 만화 보기 권하는 책 '고우영' 펴낸 문화평론가 김봉석

    지난 7일 서울 용산CGV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들과 함께 영화 '1987'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왜 한국에서는 여전히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이 굳건할까?

    만화·소설·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이름난 문화평론가 김봉석은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경악스러운 범죄가 일어나면 영화 얘기가 꼭 나왔어요. '범인이 이러이러한 영화에 영향을 받아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말이죠.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영화가 맡고 있던 이러한 역할은 만화나 게임이 대신하게 됩니다."

    최근 서울 용산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간 영화는 다양한 예술영화들이 소개되고, 관련 잡지 등을 통해 담론이 만들어지면서 예술 장르로 인정받아 왔다"며 "'대통령들이 무슨 영화를 보러 갔다'는 기사가 나오는 시대잖나. 그런데 '대통령이 무슨 만화나 게임을 봤다'는 뉴스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영화계가 그랬던 것처럼, 만화계가 나서서 만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앨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점이 만화계는 약합니다. 포털 사이트 등 웹툰 플랫폼도 여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메인에 노출하는 식으로 특정 만화를 띄워서, 사람들이 많이 보게만 하면 된다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죠."

    그는 갈수록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웹툰을 "만화의 하위개념"으로 규정했다.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만화의 컷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봅니다. 그런데 상당수 웹툰이 그래요. 만화는 컷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장르입니다. 물론 웹툰 중에도 이러한 완결성을 갖춘 작품들이 있지만 소수에 머물고 있죠. 여전히 스토리 전달에 치중하는 웹툰을 만화의 하위개념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 "고우영 화백, 실패한 영웅 통해 사회 모순 꼬집은 시대정신"

    문화평론가 김봉석(사진=김봉석 제공)

     

    김봉석은 최근 펴낸 책 '고우영'(커뮤니케이션북스)을 통해 "상위개념으로서의 만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삼국지' '수호지' '일지매' '임꺽정' 등의 걸작으로 유명한 고우영(1938~2005) 화백을 소환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특히나 거장일수록 그 사람의 생애와 작품을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고우영은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그가 중국 역사를 다룬 작품을 낸 이유겠죠. 이후 일제가 패망하면서 고우영 가족은 평안남도를 거쳐 다시 남으로 내려와 한국전쟁을 겪죠."

    김봉석은 "고우영이 이미 1970년대부터 작품으로 보여준 무정부주의적인 반골 기질은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체제 변혁을 꿈꾼 '임꺽정'(박정희 독재체제가 극단으로 치닫던 1972년 연재 시작)을 작품 소재로 선택한 것만 봐도 그는 시대정신을 구현했던 작가"라고 평했다.

    "자라면서 고우영의 '삼국지'를 40~50번은 봤어요. 무궁무진한 지식과 정보를 얻었죠. 그 안에서 세상을 알 수 있도록 돕는 통로로서 대중문화의 역할을 발견하기도 했죠."

    그는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 김수정 화백의 '날자 고도리'와 같은 당대 뛰어난 만화는 공통적으로 실패한, 반영웅적인 인물을 통해 사회 모순을 꼬집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 "혹독한 검열에 맞서 싸워 온 만화의 역사가 있다"

    고우영ㅣ김봉석 지음ㅣ커뮤니케이션북스

     

    "이처럼 뛰어난 만화의 전형은 지금의 만화계에도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 김봉석의 지론이다.

    "이를 테면 '미생'과 같은 사회 비판적인 만화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작가는 반골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사회 체제는 너무나 좋은 거야'라고 여기는 순간 작가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러한 인식 아래에서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겠어요. '세상에는 모순이 있다'고 여기고 파고들었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을 테죠."

    이는 독재정권 시절 혹독한 검열 행태에 맞서 싸워 온 만화계의 역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김봉석은 "공교롭게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당대 기득권의 인식 아래 청소년 만화를 심하게 검열하는 과정에서, 성인만화는 상대적으로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만화도 다 검열을 받아야만 발행할 수 있었는데, 일간으로 발행되는 스포츠신문에 매일 연재 되기 시작하면서 신문사의 편의를 위해 정부측에서 사후 검열을 인정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수위 높은 컷이 있으면 신문사 관계자가 밤에 작가에게 달려와 격하게 싸우기도 했다더군요. 그런 식으로 작가들이 검열과 싸웠던 역사가 있어요."

    그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나 소설 매체와 비교해도 만화는 상대적으로 자기 표현에서 자유로웠고 다양한 패러디도 가능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나 고우영은 작품 속에서 사회적 사건을 역사와 엮어서 나타내고는 했어요. 이를 테면 '삼국지'에서 학살 장면을 그릴 때 미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자행한 '미라이 학살'을 대비시키는 식이었죠. 그때는 보면서도 몰랐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봉석은 "책 '고우영'을 통해 만화가 얼마나 흥미로운 매체인지를 말하고 싶었다"며 "일간지에도 만평이나 네컷 만화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의 컷 안에 이야기는 물론 정보, 지식까지 집약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만화의 이점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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