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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예비군은 오늘도 미세먼지를 마신다

    '미세먼지 관련' 육군 규정 유명무실, 일선 부대 '지침은 지침일 뿐'

    훈련이 한창인 예비군. (사진=국방부 제공)

     

    "당연히 가야 하는 예비군 훈련인 건 알지만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어서 가기가 꺼려져요. 작년 훈련 때는 마스크랍시고 방한대를 주더라고요."

    직장인 장모(29)씨는 4년차 예비군이다. 상반기 훈련을 앞둔 그는 연일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를 보며 걱정이 앞선다. 폐암 가족력 탓에 매일 소금물로 입을 헹구고 배즙을 달고 살지만 이마저도 동원 훈련에서는 사치다.

    군 복무를 마친 성인 남성들은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 훈련장 여건에 따라 대동소이 하지만 대부분 실외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군이 마련한 미세먼지 대비책이 허술한데다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현장에서 예비군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지침은 지침일 뿐' 미세먼지 주의보에도 일선 훈련장 '시큰둥'

    육군 규정에 따라,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효되면 장시간 및 무리한 야외 훈련을 금지하고, 이를 실내교육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극성이던 지난 26일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평상시와 똑같은 훈련이 이어졌다.

    전주시예비군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온 4년차 예비군 김모(26)씨는 "미세먼지가 심했지만 훈련 중 실내로 이동하는 등 특별한 대책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가면 누군가의 남편이고 자식인데 예비군이라는 이유로 별 조치 없이 미세먼지를 들이키라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당시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은 전주지역에 초미세먼지(PM 2.5) 주의보를 발효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 제35사단 관계자는 "기상청에서 미세먼지 경보를 내는 줄 알고 기상청에다 잘못 물어봤다"며 "보건환경연구원이라는 곳이 있는 지조차 몰랐다"고 해명했다.

    관련 규정에 '지역별 미세먼지 경보수준에 따라 조치'라고 명시돼 있지만 해당 사단에서는 정작 경보를 발효하는 주체가 어디인지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던 셈이다.

    지난 26일 한 예비군이 전주시예비군훈련장에서 지급받은 방한대. 속을 뜯어 확인했으나 미세먼지 전용 필터는 없었다. (사진=김민성 기자)

     

    ◇ 개당 '648원' 보급용 KF80마스크는 어디로…일부 부대 '방한대' 지급

    지난 27일 전주시 예비군 훈련장 앞에서 만난 한 예비군은 인터뷰 도중 대뜸 기자에게 '국방무늬'가 그려진 천 마스크(방한대)를 내밀었다.

    그는 "전날에 이어 이틀째 훈련을 받고 있는데, 역시나 훈련은 어제와 똑같다"며 "마스크랍시고 훈련장 측에서 매일 지급하는 방한대 대신 약국에서 직접 산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있었다"고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은 불가피하게 야외 훈련을 강행할 때 예비군에게 KF80(식품의약품안전처 성능규격) 마스크를 지급하게끔 돼 있다.

    규정상 현역병에게 매년 14장씩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보건용 마스크를 지급해야 하지만 이를 어긴 것이다. 해당 마스크의 조달 단가는 648원으로 책정돼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방한대 등 KF 인증을 받지 않은 마스크는 미세먼지를 막는데 충분한 효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건용마스크는 말 그대로 미세먼지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할 수 있고, 여러가지 소재로 된 필터가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예비군에게 건네받은 방한대를 뜯어 속을 확인했으나 미세먼지를 걸러내기 위한 필터는 없었다. 사이즈도 성인 남성이 착용하기에 지나치게 작다는 지적이 많았다.

    군 관계자는 "육군본부에서 보급이 늦어져 보건용 마스크를 지급하지 못하던 중 해당 부대 대대장의 선의에 따라 방한대를 지급한 것이다"며 "우선 급한 대로 주변 부대의 마스크를 받아 예비군에게 지급하겠다"고 해명했다.

    (사진=자료사진)

     

    ◇현 예비군 교육훈련지침, "낡고 실효성도 떨어져" 지적

    미세먼지와 관련된 현행 예비군 교육훈련지침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다는 지적에 이어 실효성마저 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이종태 교수는 규정을 제대로 지켜 지급하더라도 마스크를 쓴 채 훈련을 받기는 힘들고, 예비군이 쓰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현 지침에 맞게 반드시 지급을 해야 한다고 보지만, 성능이 좋은 마스크를 쓸수록 숨쉬기는 더욱 곤란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방부는 수년 전부터 일부 예비군의 불성실한 훈련 참여 태도를 문제 삼는 한편 예비군 전투력 증강을 목표로 훈련 규정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오는 4월부터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까지 창설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작 예비군 훈련지침은 시대에 역행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국방부 전경 (사진=자료사진)

     

    ◇관련법 시행령 개정 따라 군 제도 손질 '불가피'

    더구나 군 당국의 초미세먼지 관련 지침 자체가 선진국 기준과 동떨어진 탓에 예비군들의 건강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개정된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초미세먼지 기준이 더욱 강화됐다.

    '좋음' 단계는 0~15㎍/㎥로 유지됐으나, '보통'은 16~50㎍/㎥에서 16~35㎍/㎥로 강화됐다. '나쁨'은 51~100㎍/㎥에서 36~75㎍/㎥, '매우나쁨'은 101㎍/㎥ 이상 에서 76㎍/㎥ 이상으로 강화됐다.

    이 교수는 "예비군 훈련을 받다 보면 아무래도 운동량이 많아 그만큼 예비군들의 호흡량도 많아진다"며 "바뀐 기준에 따르면 미세먼지 주의보 발효 기준인 90㎍/㎥도 '매우 나쁨'에 해당하는 만큼 반드시 야외에서 해야 하는 훈련이 아니라면 실내 활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급 지휘관에게 임의로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할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야외활동을 금지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최현수 대변인은 "조만간 군 미세먼지 관리 종합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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