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이틀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난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바라본 하늘이 뿌옇게 보이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한국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오염이 심각해지고 대기질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면서 불똥이 한중관계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 오염물질 대부분이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다는 설이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란에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 정부에 항의해 달라'는 청원의 참여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는 열풍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에게 "한국의 미세먼지가 국내적 요인도 있지만, 중국 요인도 있는 만큼 한중 간 긴밀한 협력을 원하는 목소리가 우리 국민 사이에 높다"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국내 분위기를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리꾼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환호했다.
분명 미세먼지 문제는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고 한반도 대기질 악화 문제가 중국을 빼놓고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 확대되면서 이에 대한 지나친 감정적 대응이나 '가짜뉴스' 수준의 루머가 횡횡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근거 없는 소문 중 하나로 '중국 정부가 오염배출 업체들을 수도인 베이징 일대에서 한국에 가까운 산둥(山東)성으로 이전시켜 오염물질들을 한반도 쪽으로 밀어 보내고 있다'는 설(設)을 꼽을 수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출신 환경문제 전문가는 "적어도 중국 정부가 고의적으로 베이징에서 오염기업을 빼내서 한국으로 오염물질을 보냈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 근거로 소문의 근원이 된 것으로 보이는 징진지(京津冀,베이징·톈진·허베이의 약칭) 협동 발전안에 대한 오해를 꼽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수도 베이징 산업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해 주변 도시들과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베이징에는 수도 기능을 남겨두고 나머지 물류·도매·교통·생산 등의 기업들은 허베이(河北)나 톈진(天津) 등으로 분산시키도록 했지만 산둥성은 분산유치 대상이 아니었다.
중국이 수도인 베이징을 둘러싼 6개 성시는 통합해서 대기질 개선을 관리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산둥성 역시 국가나 지방정부가 오염물질 배출기업의 진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후커우(戶口·호적)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중국 특성상 대규모 기업 이전 자체가 수월하지 않다는 점도 있다.
산둥성으로 오염물질 배출 기업이 집중됐다면 산둥성의 대기질이 급격하게 악화돼야 하지만 지난 5년간 오히려 대기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지표는 과학적 근거가 된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공기 질 개선을 위해 오염물 배출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을 벌여 오염물 배출공장 7만8천 개를 폐쇄했는데 폐쇄공장 수가 두 번째로 많았던 곳이 산둥이었다.
근거 부족에도 한국에서 '오염기업의 산둥 집결설'이 힘을 얻고 있는 데에는 최근 중국의 대기질이 상대적으로 매우 개선된데 비해 오히려 한국의 대기질이 악화된 것이 동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번 스모그가 창궐하면 그 범위가 중국대륙의 1/3에서 절반까지 이르는 것이 최근 현상이다. 단순히 공장을 베이징에서 산둥성으로 이전하고 오염물질을 한반도로 밀어내는 수준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중국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스모그와의 전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한·중 양국이 협력해 스모그 발발 원인을 규명하고 그 원인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스모그의 가장 큰 어려움은 단순히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점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도 스모그가 심각해질 때마다 공장가동 중단과 차량통행 2부제 등의 극약처방을 동원하지만 잠시 증상만 늦추는 단기처방에 불과하다.
스모그와 전쟁을 위한 양국의 공동전선은 이미 구축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국빈방중 때 양국 정상은 환경 개선을 위한 한중협력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한중 환경협력센터를 중국에 건설하는데 합의했다. 이미 한국 환경부 실무진들이 올해 초 중국을 방문하는 등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적어도 대기질 개선에 있어서 중국이 현재 필사적이라는 점이다.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계속되는 정부의 환경검열로 공장이 연중 절반 이상을 멈추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다. 올 겨울에도 난방연료로 석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밀어붙이면서 하층민들의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외국의 환경오염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때 여기에 대한 정당한 항의와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권리다. 하지만 비판은 냉정하고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경문제 해결이 엄청난 재원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국 협력까지 저해할 수 있는 감정적 대처는 '득보다 실'만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