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폐기물 수입 규제로 촉발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앞두고 정부가 긴급 대책을 내놓았지만, '언 발 오줌누기'식 졸속 대처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 정부, 수거 업체 지원 약속으로 분리 수거 정상화 성공… 근본 대책 다음 달 발표
환경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중국의 폐기물 수입금지 조치 등에 따른 대응방안'은 이번 달 안으로 실행할 단기 대응과 다음 달 이후에 진행될 후속 대책으로 나뉜다.
우선 정부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폐비닐 등 일부 재활용 쓰레기 수거를 거부한 48개 업체들을 설득해 정상 수거하기로 합의했다.
또 재활용 쓰레기를 종량제 쓰레기 봉투로 배출하도록 한 안내문을 제거하고, 분리수거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현장점검 및 행정지도에 나서기로 했다.
손해를 뒤집어 쓸 위기에 놓인 업체들을 위해서는 긴급지원책을 제시했다. 그동안 '사업장폐기물'로 분류됐던 재활용품 선별 후 잔재물을 '생활폐기물'로 처리하도록 관련 규정을 이달 안으로 개정하기로 했다.
민간소각장을 이용해야 하는 '사업장폐기물'은 톤당 약 20~25만원이 소요되지만, '생활폐기물'은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공영소각장에서 처리할 수 있어 톤당 약 4~5만원만 들기 때문에 처리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생산자에게 폐기물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지원금도 조기 지급해 수거업체들의 자금난을 막기로 했다.
이 외에도 재생원료 사용업계가 국산 재활용품부터 쓰도록 실태조사를 벌인 뒤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동남아 등 재생원료를 수출할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TF도 꾸리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분리수거 실태점검 등에 대한 지자체 권리권한을 강화하도록 상반기 안에 관련 지침을 개정해 분리수거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또 재활용 비용이 크게 늘어나 수거 거부대상에 올랐던 폐비닐, PET 등에 대해 EPR 분담금을 증액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다음달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줄이고, 재활용 효율을 높이기 위한 근본 대책을 다음달 초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 1년 전 예고에도 졸속 대응 급급… 쓰레기 줄이도록 시민·기업 규제 받아들여야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효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놓았다. 정부의 대책이 '뒷북' 대응인데다 내용마저 알맹이가 부실한 '졸속'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지난해 7월 중국 환경부는 자체 폐기물만으로 재활용 수요가 충족되고 선별 후 잔재물로 인한 환경오염이 우려된다며 외국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지난 1월 '저급 플라스틱 및 폐지' 수입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지난 1~2월 한국이 중국에 수출한 폐플라스틱은 92%나 줄었다.
녹색연합 신수연 녹색사회팀장은 "미세먼지 못지 않게 시민들이 불편을 느낄 큰 문제인데도 '사후약방문' 대책이 나왔다"며 "EPR 분담금을 증액하거나 지원금을 조기 지급하는 수준은 근본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김현경 활동가도 "영국은 올해 1월부터 25년 안에 플라스틱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며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한국 정부와 대응 속도가 너무 차이가 크다"고 꼬집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미 지난해 여름 중국 발표 직후부터 지방의 영세 수거업체들은 타격을 입었다"며 "수도권의 업체들은 비교적 규모가 크기 때문에 버텼지만, 올해 봄부터 버티지 못해 손을 들면서 논란이 불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도 곳곳에 헛점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소장은 "지자체 소각시설은 주민이 배출한 종량제 봉투 쓰레기를 우선 소각해야 하는데, 이것을 소화하기도 벅차다"며 "만약 민간 수거업체의 재활용품 선별 잔재물을 허용하더라도 실제 소각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 개척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중국의 수입 제한 조치 이후 오히려 한국이 미국, 일본의 재생원료를 수입하는 마당에 동남아 시장은 이미 '레드 오션(Red Ocean)'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EU, 일본 등은 중국의 수입 제한 조치 이후 동남아와 이집트, 남미 등에 재활용 쓰레기를 수출하고 있다. 후발주자로 나선 한국이 동남아 시장 공략에 성공할 수 있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그다지 높지 않다.
결국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활용 쓰레기 배출 자체를 줄여 사회 부담을 줄이도록 시민과 기업 모두 책임을 다해야만 '재활용 쓰레기 대란'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홍 소장은 "맥주병처럼 색이 있는 페트병은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중국으로 수출했는데, 이제는 국내에서 소화해야 한다"며 "플라스틱과 비닐, 종이 등을 섞은 복합재질 포장지나 물에 녹지 않는 접착제 따위를 사용하지 않도록 규제해 재활용 처리 비용을 줄일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신 팀장은 "한국은 비닐 봉투 1장에 30~40원만 받지만, 프랑스, 아일랜드는 1000원씩 받는다"며 "단순히 분리수거를 잘하라, 쓰레기를 줄여라 등의 계몽 캠페인을 넘어 소비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럽처럼 제품을 생산할 때부터 중량 대비 포장재 비율에 제한을 두거나, 포장종류를 지나치게 다양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