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SK와 원정에서 3-3으로 맞선 6회 결정적인 3점 홈런을 때려낸 두산 내야수 김민혁.(사진=두산)
두산 김태형 감독은 지난 18일 한화와 잠실 홈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에게 웃픈 농담을 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배팅 게이지에 들어가 타격 훈련을 하던 한 선수를 보더니 "우리 용병, 저기 있잖아요"라고 툭 던졌다.
해당 선수는 두산 내야수 김민혁(22)이었다. 당시 두산은 외국인 타자 지미 파레디스가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 있던 상황이었다. 김 감독의 농담은 외인 없이 경기를 치르는 현실에 대한 자조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민혁은 비록 배팅볼이었지만 힘차게 때려내며 연신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겼다. 188cm에 100kg이 넘는 당당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는 외국인 선수 못지 않았다.
김민혁은 2015년 2차 2라운드 16순위로 입단했다. 지난해 1군에 데뷔해 18경기 타율 1할9푼(2루타 2개)을 기록했다. 그러나 퓨처스리그에서는 타율 3할4푼8리, 11홈런을 기록할 만큼 타격에 재능을 보였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김민혁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6경기 타율 4할5푼5리(11타수 5안타)에 2홈런 9타점을 기록했다. 5안타 중 홈런과 2루타가 2개씩으로 장타율은 무려 11할8푼2리에 달했다.
1군에 살아남은 김민혁은 시즌 개막 후에도 타격감을 이어갔다. 전날까지 8경기 타율 3할4푼8리 1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8안타 중 3개가 장타였고, 출루율은 4할2푼3리에 이르렀다.
'힘에 레그킥까지' 롯데의 국가대표 거포 이대호가 롤모델이라는 두산 내야수 김민혁의 타격 준비 모습.(사진=두산)
그런 김민혁이 중요한 경기에서 우타 거포 잠재력을 마음껏 뽐냈다. 1, 2위 대결에서 단숨에 승기를 가져온 천금의 홈런이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8번 지명타자로 나선 김민혁은 SK 우완 선발 문승원과 두 번 맞대결에서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볼 카운트 2-2에서 모두 상대 배터리에 말렸다.
하지만 승부처에서는 달랐다. 참을성 있게 상대 실투를 기다렸다. 김민혁은 두산이 3-3 동점을 만든 6회초 1사 1, 2루에서 SK 필승조 서진용과 풀 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인내하자 기회가 왔다. 김민혁은 시속 145km 바깥쪽 높은 속구를 통타, 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단숨에 6-3으로 역전을 만든 통렬한 비거리 125km짜리 아치였다. 김민혁은 그라운드를 돌며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 12일 삼성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날린 뒤 12일 만에 느낀 짜릿한 손맛이었다.
활화산 공격의 물꼬를 튼 한 방이었다. 두산은 후속 오재원의 백투백 우월 1점 홈런(시즌 1호)까지 터졌고, 이후 최주환의 3루타와 박건우의 희생타, 양의지의 2루타 등으로 6회만 대거 8점을 쓸어담았다.
SK의 반격도 거셌다. 3-10으로 뒤진 8회 SK는 노수광 2루타와 한동민의 적시타로 4점을 낸 뒤 최정의 시즌 11호 2점 홈런으로 9-10, 턱밑까지 추격했다. 두산은 결국 마무리 함덕주를 8회 조기 투입해 급한 불을 껐다.
두산이 10-9 힘겨운 승리를 거두며 SK와 시즌 첫 3연전의 기선을 제압했다. 두산은 임시 선발 이영하가 3⅔이닝 3실점했지만 발빠르게 박치국(1⅓이닝)-곽빈(1⅓이닝) 필승조를 투입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만 이날 1군 복귀한 전 마무리 김강률이 ⅔이닝 4실점, 김승회가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하고 2실점하며 불안함을 남겼다. 함덕주가 2이닝 무실점으로 7세이브째를 올렸다.
이날 터진 3개의 홈런 중 김민혁의 3점포가 이날의 생애 첫 결승타가 됐다. 경기 후 김민혁은 "앞서 두 타석에서 삼진을 당해 화가 났다"면서 "그런데 중요한 순간 결승타를 때려 울컥하기도 했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파레디스는 지난 19일 1군에 올라왔다가 2경기 5타수 무안타 4삼진을 당한 뒤 22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당분간 두산 외인 역할은 김민혁이 맡아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그 역할이 길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