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 당시 이금석 할머니가 북측의 아들 한송일씨와 헤어지기에 앞서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5일 밤 텔레비전 앞을 지키던 국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꼭 한 번만이라도… 꼭 한 번만이라도…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지난 3일 평양시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예술인 합동무대를 지상파 3사 등이 녹화중계한 이날 방송에서, 남측 가수 강산에는 자신의 노래 '라구요'를 부른 뒤 애써 태연한 척 북측 관객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굉장히 감격스럽습니다. 돌아가신 제 어머니 아버지도 생각나고요…. 방금 들려드린 노래가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인데… 제가 가수로 처음 나왔을 때 이 노래가 첫 등장 앨범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고, 가슴 뭉클한 바로 이 자리에… 뭐라 그럴까요… 뭉클합니다…. (평양에) 왔을 때부터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결국 강산에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더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노래를 숨죽인 채 듣던 북측 관객들은 큰 박수로 위로했고,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내내 억누르고 있었는데, (눈물이) 한 번 터지면 잘 안 멈추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산에가 울먹이며 어렵게 이어간 이 말은 당시 공연 현장을 찾은 북측 사람들은 물론, 20여일 뒤 TV로 이를 지켜보던 남측 사람들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노래 '라구요'로도 널리 알려졌다시피 강산에 어머니 아버지는 실향민이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이산가족 전체 신청자(1988년~) 13만 1531명 가운데 생존자는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치는 5만 7920명이다. 이들 생존자 역시 80세 이상 고령이 64.2%에 달했다.
정전협정 이후 남북 분단이 무려 65년이나 지속되는 지금, 이산가족 문제는 지난 세대의 일로 취급되기 일쑤다. 이산가족 문제를 깊이 연구해 온 김귀옥(사회학자) 한성대 교수는 "지금 청년세대에게까지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산가족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산가족이 3세대까지 뻗어 왔다. 우리는 '누가 이산가족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족의 범위를 부모 양가 8촌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2009년 만들어진 이산가족법도 마찬가지로 이산가족 범위를 8촌까지 두고 있다. 이산가족은 1세대뿐 아니라 2, 3세대에게도 법적인 가족이다."
이로 인해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북측에서 잃어버렸던 자손이 나타나 재산분쟁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김 교수는 "이산가족 3세대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더라도 현실 법이 그렇게 작동한다"며 "2, 3세대로 내려갈수록 이산가족이라는 정체성은 상당히 취약하지만, 실질적인 법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는 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 이산가족, 한반도 너머 유라시아로 뻗어나갈 첨병…"독일·중국 사례 기억해야"
지난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예술인의 연합무대 '우리는 하나' 공연 당시 가수 강산에가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산가족 2, 3세대가 스스로를 이산가족으로 인식하려는 자세는, 남북 화해 국면에서 본인의 사회·경제·문화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지난 시절 남북 관계가 몹시 왔다갔다 한데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정권이 앞장서 북한을 '악'으로 몰아가며 대립했기 때문에 이산가족을 대하는 사회 인식도 부정적으로 변해 왔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과거 분단 상태에 있던 독일은 이산가족 2세대에게 동독을 먼저 방문할 기회를 줬다. 자유롭게 친인척을 찾고 현지를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중국 역시 1990년대 개혁·개방 과정에서 대만의 이산가족 기업인들에게 우선 방문권을 줬다. 결국 이산가족이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경제적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는 유리한 지점으로 작동한 것이다."
그는 "이산가족 2, 3세대는 '북에 있는 가족이 내려와 재산을 뜯어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내 경제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며 "결국 남과 북의 사회·경제·문화적인 관계 회복 과정에서 이산가족들이 대북 교류의 우위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산가족 개념은 북측을 '남'이 아니라, '가족' '친인척'으로 인식하는 전환점을 제공한다. 이를 확장하면 우리네 인식이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 미래 삶의 반경을 대폭 확장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청년 세대는 '통일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지니게 됐다. 이른바 '통일 감수성'을 자극받지 못해 온 까닭이다. 이산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는 통일 감수성을 예민하게 벼리는 데도 큰 보탬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김 교수는 "최근 남북 예술단 문화 교류를 통해 국민들 분위기가 확 바뀌지 않았나"라며 "청년세대에게 '북측 사람들도 같은 민족'이라는 말이 더이상 어필하지 못하더라도, 이번 예술단 공연처럼 남과 북 사람들이 같은 말로 소통한다는 점 등을 직접 확인하면 강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물론 남과 북 사이에 경쟁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들과도 공생할 수 있다고 인식할 때 우리네 삶의 반경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로까지 넓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는 세대 갈등을 완화하는 측면으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이산가족 3세대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은 결국 분단으로 고착화 된 상처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나 지난 정권은 서로 다른 세대끼리 이해시키려고 애쓰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국가적으로 조장했다. 이제라도 언론이 나서서 이산가족 1세대와 2, 3세대가 만나 이야기하며 서로 이해할 기회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 "분단은 청년들 꿈을 대한민국이란 '섬'에 가뒀다…미래세대에 치명적 한계"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 성공적 개최를 위한 평화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김 교수는 "북에서도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통일부와 여러 차례 회의했는데, 일단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이산가족 상봉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1차적인 목표다. 이번에는 경제 관련 안건 자체가 빠졌기 때문에, 비핵화·평화 정착 논의를 진행하면서 이산가족 문제까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추론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베를린 구상'에서는 이산가족 고향 방문과 전면생사 확인까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는 이념적인 문제를 떠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다. 전면생사 확인의 경우 행정적인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에 북측에서 받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을 푸는 조건으로 이산가족면회소를 연다면 오는 6월이나 8월 정도에 100~200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70여년을 묵혀 온 이산가족 문제를 푸는 일은 세대갈등 해소를 비롯해 궁극적으로는 통일로까지 나아가는, 우리 사회 모순을 해결하는 데 밑거름을 제공한다는 것이 김 교수 분석의 요지다.
그는 "우리는 청년세대에게 '10대 때부터 IT 신화를 설계했다'는 외국 기업인 사례를 들면서 '도대체 지금까지 뭘 했냐'고들 말한다"며 "그러나 분단이 청년세대의 인식을 대한민국이라는 '섬'에 가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분단은 청년세대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앗아갔다. 군대에 젊음을 저당 잡히게 만들었고, 철도 등 육로로 유라시아를 넘나들며 꿈을 키울 기회도 빼앗았다. 결국 우리 청년들은 분단된 섬에만 고착된 꿈을 꾸게 된 셈이다. 분단은 미래세대에게도 치명적인 한계를 긋고 있다. 이 점을 인식할 때 청년들에게도 분단이 커다란 불편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 교수는 "일부 언론에서는 '통일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남북이 평화 체제를 넘어 통일로 나아가면, 청년세대는 통일 대박이 아니라 쪽박을 차게 될 것'이라는 논조를 편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분단으로 인해 국민들이 지금까지 70여년 동안 치러 온 비용과 피해가 얼마나 큰지 말이다. 분단 비용과 통일 비용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1대에 수십억원짜리 전투기 구입과 같은 분단 비용은 쓰고 나면 사라지지만, 통일 비용은 사회·경제 시설 등으로 새로운 삶·노동의 기회를 창출하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킨다."
그는 "앞으로 남북 문제와 관련해 '막대한 통일 비용' '불확실한 미래' 등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그간 분단 비용이 얼마나 컸는가를 살피면서, 국민들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력을 펼치는 데 언론이 각별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