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필기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이른바 '은행고시' 부활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핀테크(금융+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시기에 다시 정량적인 평가에만 주력하다보면 금융권이 원하는 인재를 뽑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금융권 취업준비생들이 큰 혼란에 빠져들면서 은행고시 부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은행연합회는 필기시험을 도입하고 면접관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권 채용 절차 모범규준안'을 마련해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핵심은 채용 때 필기시험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권고 사항이지만 모범 규준에 필기시험이 언급됨에 따라 은행들이 필기시험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연합회가 당국에 제출한 초안이다. 당국이 의견을 제시하거나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확정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다음 달 말 이사회에서 모범규준안을 의결하면 회원사들이 모범규준을 내규에 반영하고, 이후 내규 실행 여부를 점검하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모범규준 윤곽이 드러났고 다른 은행들이 필기시험을 속속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비치고 있는데 우리만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하반기 채용부터 필기 시험을 도입하는 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일부 은행만 필기시험을 보고 있다.
채용 비리로 골치를 썩었던 우리은행이 올 상반기 채용 때 10년 만에 필기시험을 도입한 바 있다. 민간 금융사들이 필기시험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금융 시장 개방과 글로벌 경쟁 추세에 맞춰 창의적 인재 채용을 위해서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은행별로 역점 분야와 인재상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던 채용제도가 자칫 경직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금융기관의 경우 영업, 위험관리, 해외 업무 등 업무 영역이 매우 다양하므로 이에 맞는 다양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좀 더 공정하게 채용 형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일괄적으로 공공기관이나 공공금융기관에 적용하는 잣대를 민간금융기관에 들이대는 것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시험조차 '고시화'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공무원 채용을 늘린다고 발표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가득차는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도 모자라 금융권까지 '고시족'을 양산해야하냐는 지적이다.
모처럼 은행권의 채용 문이 열렸지만 새로 도입되는 필기시험 때문에 은행 구직을 노리던 취업준비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학생 김모(25)씨는 "은행권의 경우 필기시험이 아닌 면접에 올인해서 합격한 경우가 꽤 많기 때문에 면접 위주로 준비했다"면서 "갑자기 모든 은행이 필기시험을 도입하게 된다면 나처럼 면접에 올인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멘붕(멘탈 붕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예년보다 대폭 늘어난 신규 채용 규모에 대해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업계에선 4대 시중은행에서만 신규 채용 인원인 2200명을 웃돌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은행들의 이익 규모가 불어나고 있고 청년 일자리 확대를 바라는 정부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성태윤 교수는 "필요에 따라 젊은 인력을 뽑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일자리 정책 수단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면서 "이렇게 일괄적으로 사람을 많이 뽑으라고 접근하는 것은 새로운 구조조정 압력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고, 무리해서 수익을 높여 유지해야 하므로 그 자체가 무리한 운영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