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과거 공연 모습(사진=소니뮤직 제공)
27일 오후 8시 열린 미국 포크 음악의 대부 밥 딜런(77)의 내한 공연 '밥 딜런 & 히즈 밴드'는 국내 최대 규모 실내 공연장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무대 전면에 스크린이 설치되지 않아 많은 관객이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공연장이다. 그만큼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이 단 한 개도 설치되지 않아 뒷자리에 앉은 관객의 시야가 제한됐다. 1, 2층에 앉은 관객들은 밥 딜런이 노래하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밥 딜런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구나 정도만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공연 주최사 측은 밥 딜런 측에 관객 편의를 위해 스크린을 설치하자고 설득했으나 끝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래가 시작되면 켜지고, 노래가 끝나면 꺼지는 조명 10여개가 설치된 것 이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던 간소한 무대 연출 역시 넓디넒은 공연장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또, 체조경기장이 2만석 규모임에도 공연은 약 7천 석만 오픈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그마저도 매진이 되지 않아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이럴 거면 굳이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진행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지점이었다.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에이아이엠 제공)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5인조 밴드의 연주와 어우러진 밥 딜런의 목소리가 현장을 찾은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할 만한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워치타워(Watchtower)'와 '트와이스(Twice)'로 공연의 포문을 연 밥 딜런은 약 2시간 동안 쉼 없이 20여곡을 부르며 폭염을 뚫고 공연장을 찾은 이들을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초대했다. 관객을 향한 인사말은 없었다. 인사를 음악으로 대신한 밥 딜런은 그저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편곡은 원곡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밥 딜런은 시적인 가사를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하며 묘한 끌림을 느끼게 했다. 경쾌한 멜로디의 곡이 연주될 때 일부 관객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돋웠다. 하모니카 연주 구간 때마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쉼 없이 내달린 밥 딜런은 공연을 끝내고 쿨하게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지자 다시 등장해 앙코르 무대를 꾸는 그는 대표곡 중 한 곡인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로 화답했다. 국내 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인 '낙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는 끝내 부르지 않았다. 앙코르 무대까지 끝낸 이후에는 밴드 구성원들과 함께 무대 중앙에 모여 짧게 인사를 한 뒤 무대를 떠났다. 2010년 이후 8년만의 한국 공연을 마친 밥 딜런은 내달 29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출연할 예정이며, 이후 대만, 홍콩, 싱가폴, 호주 등에서 투어를 이어간다.
한편 밥 딜런은 전 세계적으로 1억 250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린 미국 포크록의 대부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1년 그래미 어워즈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시적인 가사와 곡을 통해 팝 음악과 미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친 공로로 퓰리처상 특별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2012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 받았고, 2016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지 20년 만에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위대한 미국 음악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는 평가와 함께 밥 딜런은 뮤지션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노벨상 수상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