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나는 원래 보수주의자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평소에 했던 말이 보수를 대표하는 자유한국당을 지켜보며 떠오른 이유는 뭘까.
예민하고 굵직한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검찰 간부의 이름을, 정치 이슈를 다루면서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상징성과 스스로에 대한 규정만큼 한국당을 거울처럼 비춰줄 사례도 찾기 힘들어 그를 소환했다.
법조인인 윤 지검장이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한 것은 직업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법이 무너지면 그 사회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 법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보수적인 조직인 검찰의 역할이 결국 기존 질서의 유지가 핵심이 될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면 그가 보수주의자인 이유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특수통 강골 검사인 윤 지검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특검의 수사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태극기 부대의 주 타깃이 됐다. 태극기 부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법정 증거들도 부인하며 "탄핵 무효" "특검 해제"을 주장했었다.
윤 지검장을 비롯한 특검팀은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논리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태극기 부대 입장에서는 윤 지검장은 결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최근 한국당이 대거 영입한 태극기 부대가 당의 중요한 한축을 이루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정당했느냐를 놓고 당내 논쟁이 불붙을 조짐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6.13지방선거 이후 김병준 비대위체제를 구성하는 등 활로를 찾고 있지만, 아직도 암중모색(暗中摸索)하며 헤매는 모습이다.
떠난 민심을 잡기 위해 변하긴 변해야 하는데 좌표 설정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이유와 사정이 있겠지만, 한국당의 위기는 그동안의 보수가 내걸었던 가치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계기로 한순간에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 새롭게 보수 가치를 정립해야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지금의 흐름으로 봐서는 자칫 한국당의 변화가 과거 회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보수정당의 불명확한 행보는 '보수가 도대체 뭐길래'라는 강한 의문과 함께 회의감을 남긴다.
보수란 말그대로 급격한 변화보다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관습 등을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그럼 한국의 보수는 뭘 지키려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손에 꼽히는 게 별로 없다. 경제적 자유는 보편적 보수주의자들과 맥을 같이 하지만, 법치주의.애국심.도덕성.가족주의 등 다른 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한국당에는 상당히 결여돼 있다.
지난 8월 숨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 보수 가치를 대변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직업군인으로 베트남 전에 참석해 포로상태에서 '다른 포로를 먼저 석방하라'며 조기 석방을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당시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감내야해 했다고 한다.
보수의 가치 중에 중요한 덕목은 자기헌신(노블리스 오블리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당에서 이런 정신을 추구한 인물이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기득권을 옹호하며 이익집단 같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한국당을 두고 '가짜 보수주의' '극우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의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반공.반북주의,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 약자 배려가 부족한 성장 만능주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보수의 정신과 닿는 전통은 얼마든지 많다. 다만 한국당이 외면하며 거리를 뒀을 뿐이다.
구한말 의병이나 일정 강점시기 수많은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과 임시정부 정신 등은 사실 보수 가치인 애국심과 자기헌신에 맞아 떨어지는 경우다.
5.18광주 민주화 운동도 '자유'라는 보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린 사건이다.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국회의장은 "나는 진보의 가치인 ‘평등’이 아니라 보수 가치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당이 시대에 맞게 서구의 보수 정당들처럼 진화하는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중요한 점은 서구 보수 정당들도 생존을 위해 변화를 택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