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는 올해 18만 명의 업계 관계자와 4500여개 업체가 참가하는 등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기술업계의 뜨거운 각축장이 되고 있지만 최근 불던 '차이나 열풍'이 빠르게 식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올해 CES에 참가하는 중국업체는 1200여개 로 전년대비 2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미국과 중국 간 심화되고 있는 무역분쟁 여파와 201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중국경제 둔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시장분석 기관의 샤운 레인 이사는 "CES와 같은 대형 가전쇼에 참가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최근 미국정부의 중국 통신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미국시장에 대한 투자전략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CES 주관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6일 성명을 통해 "CES에 있어 중국은 여전히 최고의 시장이며 많은 중국 기업들이 CES에서 참가해 브랜드를 알리고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며 "특히 알리바바 바이두, 창홍, 바이톤, DJI, 하이얼, 하이센스, JD닷컴, 콘카, 레노보, 서닝, TCL과 같은 대형 기업들이 CES를 통해 주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전시규모 감소에 대해서는 "대체로 중국 참가 업체들의 부스 면적은 대기업들에 제공되는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이보다 작은 규모의 업체에게 제공되는 공간은 더 작을 수 밖에 없다"며 "대기업들의 부스 확대로 인한 영향일 뿐 대략 지난 CES2018과 비슷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수개월 째 이어진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이 수 십억달러의 관세와 무역에 타격을 입었고 중국 경제 둔화가 계속되자 중국 업체들이 올해 CES 참가를 포기하거나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지난해 CES2018에서 화웨이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유는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미국정부가 화웨이를 간첩혐의로 지목하자 AT&T가 자사 휴대전화 판매를 취소한 것을 두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후 화웨이 창립자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가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 당국에 체포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화웨이는 행사를 대폭 줄이고 CEO 등 경영진의 기조연설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CES에 집중했던 전략도 2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로 이동할 전망이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 기업 바이두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을 화려한 무대에서 선보였지만 올해는 기존 수준의 부스를 운영, 홍보하는데 그치고 있다.
'중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알리바바는 작년 CES에서 선보인 야외 부스를 올해는 설치하지 않았다. 대신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상으로 자사 인공지능 음성 비서 기술을 소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샤오미도 올해 참가하지 않는 대신 MWC에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시장분석 기관 IDC 차이나의 애널리스트 키티 포크는 "많은 중국 기업들에게 있어 중국은 여전히 그들의 주된 시장"이라며 "그들이 미-중간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미국을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CES에 참가했던 교육용 로봇 제조업체 Abilix는 자사 제품이 미국의 관세 보복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에 올해 CES 출품을 포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제품은 미국에서도 팔리고는 있지만, 주력 시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천의 미용기기 전문회사 관계자도 "올해 CES에 부스 마련을 검토했지만 부스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 우리도 CES 참가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구애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무설계 회사인 캡스톤어드바이저리 그룹에 따르면,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소비자 시장으로 2017년 기준 12조 5천억달러 규모에 이른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분류하는 중국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이때문에 중국 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쉽게 포기하기 힘들 것으로 봤다.
베이징대학의 제프리 타우슨 교수는 "미국과 중국 모두 큰 시장이며 다른 국가들도 무시할 수 없다"며 "미국과 중국 간 비즈니스 관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최근의 경제 불확실성은 투자를 위축시키지만 무역과 같은 거래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과 미국, 일본 중심의 TV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하이센스와 TCL, 이미 노트북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레노버 등 가전·컴퓨터 제조회사들은 CES에서 브랜드 확대에 여전히 공을 들이고 있다.
하이센스USA 마케팅 책임자인 짐 니네슬링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투자하기 위해 올해 중요한 발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하이센스는 중국 시장내 점유율은 높지만 해외 시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주로 일본 샤프 브랜드를 통해 미국 시장에 자사 제품이 수출되고 있다.
텐센트가 투자한 중국 전기차 회사 바이톤은 6일 CES에 스티어링 휠(운전대)에 장착된 터치 스크린 등 새로운 자동차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중국의 시리/알렉사'로 불리는 인공지능 기술 업체 iFlytek는 최신 음성인식 및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선보인다.
중국정부가 지원하는 별도의 스타트업 박람회에는 실내 배달 로봇, 휴대용 노래방 헤드셋, 스마트 여행가방 등 기상천외한 제품들도 대거 출품된다.
구글에서 일했던 벤처 투자가 카이 푸 리는 "양국 기술산업은 상호 보완적"이라며 "미국의 강점은 엔지니어, 대학, 학자, 우수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며 중국은 더 큰 시장, 더 많은 데이터, 매우 근면하고 끈기 있는 기업가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중간 상황을 볼때 상호적인 관계는 꿈에 그치겠지만 미국과 중국 기업들간의 비즈니스 관계는 여전히 기대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