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핌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최근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 발표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개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에 대한체육회가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5일 오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진행된 이사회를 앞두고 고개를 숙였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코치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선수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관리와 감독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체육계 수장의 사과였다.
이기흥 회장은 체육계 성폭력을 근절하고 선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쇄신안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대목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선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기흥 회장은 쇄신안 발표 말미에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 정부와 협의해 현재의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초등학교부터 국가대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합숙소에서 보내야 하는 훈련 체계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살펴주기 바란다"며 "체육계도 과거 자신들이 선수 시절 받았던 도제식의 업악적 훈련방식을 되물림하거나 완전히 탈퇴하지 못한 측면이 없는지 되돌아보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쇄신책을 스스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엘리트 체육 구조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당장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정부의 뜻에 따라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입장만을 확인했다.
이기흥 회장이 이날 발표한 쇄신안의 실행 방안은 크게 다섯 가지다.
①검찰 고발 의무화 등 성폭력 가해자에 엄벌을 내리고 ②은폐 등 조직적으로 비위를 저지르는 단체의 회원 자격을 박탈하며 ③국가대표 선수촌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인권 상담 센터를 설치하며 ④지도자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풀(pool)제 도입 등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고 ⑤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 기관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대한체육회가 지난 10일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의혹 사건과 관련해 내놓은 후속조치 계획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다.
또 이기흥 회장이 작년 12월 스포츠 4대악을 근절하겠다며 발표한 체육계 혁신 계획안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대표 선수촌 관리와 관련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왔다. 이기흥 회장은 "여성 부촌장 및 여성 훈련 관리관을 채용하고 숙소와 일상 생활,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촌 내에 인권 상담 센터를 설치하고 인권 관리관과 상담사를 상주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도자의 전횡을 막기 위한 복수 지도자 운영제의 도입 가능성도 알렸다. 더 나아가 이같은 국가대표 관리 기준을 각 학교와 실업 운동부에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기흥 회장은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 기관에 위탁 실시할 것"이라며 "각종 위원회, 스포츠 공정위원회, 선수위원회, 여성위원회 등의 인권 전문가를 필수적으로 참여하게 할 것"이라며 선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이기흥 회장이 발표한 쇄신안은 지난 10일 공개된 후속조치 계획이 아주 조금 더 구체화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피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세부 계획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또 강력한 실행 의지를 보이느냐다.
무엇보다 대한체육회가 문재인 대통령이 요구한 엘리트 체육 구조의 개선을 어떻게 이끌어낼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기흥 회장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쇄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