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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수사 과정서 드러난 법원의 '민낯'



법조

    사법농단 수사 과정서 드러난 법원의 '민낯'

    [사법부 수사 그 후 ②]
    법원, 유독 제 식구에게는 내주지 않았던 '영장'
    '직권남용'도 '좁게' 해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
    양승태 前대법원장 '포토라인 패싱'까지 이어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는 모습.(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사법농단 수사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압수수색 영장'과 '포토라인' 등, 평소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영장 발부율'을 놓고는 검찰과 법원이 조직의 사활을 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여론도 덩달아 움직였다.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패싱(지나치기)'으로 주목을 받은 '포토라인'에 대해서는 추후 인권 문제와 결부돼 여러 가지 대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이하 '직권남용')는 사법농단 사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죄목이다.

    직권남용 혐의는 일선 검사들도 맡고 싶지 않은 사건들 중 하나다. 이 죄목으로 재판에 넘겼다가 결국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 되는 일이 적지 않아서다.

    최근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이 그랬다. 수사단은 "강원랜드 수사를 방해했다"며 검찰 고위간부 2명에 대해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 내부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에 대해 '판사사찰'과 '재판관여' 등 직권남용 혐의가 짙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다.

    법원노조 조합원들이 정문을 지키며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법원, 제 식구에겐 엄격했던 '영장'

    지난해 7월,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서 압수수색 영장을 둘러싼 법원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영장을 제외하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모두 기각된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압수수색 영장은 수사 단초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의혹을 소명하면 통상 90% 정도 발부된다.

    그런데 임 전 차장의 영장만 발부한 법원은 "공모 부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1)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윗선에 대한 영장은 연거푸 기각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대상이 법원 고위 관계자인 것을 감안해 통상 소명 수준 이상의 내용을 청구서에 담았다"며 영장 기각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했다.

    비슷한 시기 진행했던 드루킹 특검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 상황과 비교해도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은 터무니없이 발부율(검찰에 따르면 10% 수준)이 낮았다.

    법원은 사람을 넘어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번번이 기각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말, 외교부를 제외한 대법원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과 인사심의관실에 대한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법원은 결국 지난해 9월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실과 재무담당관실에 대한 영장을 처음 발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의혹'과 관련해 열린 전국법원장 간담회에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전국법원장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유난히 '좁게' 해석했던 '직권남용죄'

    이처럼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은 구속영장 단계에서도 이어졌다.

    법원은 지난해 9월 직권남용 등 혐의를 받는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사법농단 수사에서 검찰이 처음 청구한 구속영장이었다.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등,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법원이 박근혜(67)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포괄적으로 인정한 것과 대조됐다.

    이 혐의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해(직권남용), 법령상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정당한 행사를 방해했을 때(권리행사방해) 적용한다.

    실제 국정농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2심 재판부는 윗선이 노태강(58)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에 대한 사직을 요구한 행위를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도 대통령의 권한을 포괄적으로 인정해 직권남용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법원도 지난해 10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며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면서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 국정농단 사태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온도차는 느껴졌다.

    이후 법원은 박병대·고영한(64)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공모관계 성립'에 문제를 제기하며 기각해 또다시 여론이 들끓었고, 지난 1월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면서 사법농단 수사는 일단락됐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법관 몇 명을 구속하는 수준에서 대국민 서비스를 한, 보여주기 식 정도의 수준이었다"며 "법원이 영장을 거의 발부 하지 않은 건 사법부의 보신주의이자 내 식구 감싸기"였다고 주장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전직 사법부 수장의 '포토라인 패싱'

    사법농단 사건은 포토라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언론의 취재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포토라인이란, 주요 피의자 소환 현장 등지에서 취재 과열에 따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설정한 일종의 취재 경계선이다.

    지난 1월 양 전 대법원장이 첫 소환 당시 검찰 수사에 불만을 드러내고 포토라인을 그대로 지나치면서(일명 '포토라인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 인해 포토라인은 일종의 '낙인찍기'이자 '망신주기'라는 주장과, 국민의 알권리와 사고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에 대검찰청 산하 검찰미래위원회는 외부 전문위원 15명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포토라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 같고, 이전보다 포토라인 규제를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법조언론인클럽 역시 포토라인 존폐 여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연구용역 과제로 수행해 향후 연구를 더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하며 8개월 끝에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재판 관여' 등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검찰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사법 불신'의 그림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초유의 사태도 너무 쉽게 잊혀 진다는 건데요. 사법농단 사태를 취재했던 CBS법조팀이 '사법부 수사 이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부분들을 정리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재판도, 법관도 믿지 않는다"
    ② 사법농단 수사 과정서 드러난 '민낯'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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