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부터)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선거제도 개편 등의 내용을 담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22일 잠정 합의하자 한국당은 반발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합의문 발표 직후 취재진과 만나 "선거제와 공수처를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순간 20대 국회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에 태울(지정할) 수 없는 것을 태운다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그만하겠다는 것"이라며 "패스트트랙 움직임에 대해 철저하게 저지하겠다"며 각을 세웠다.
이는 재난 피해지원과 미세먼지 대책 예산 등이 담긴 추가경정예산안은 물론이고, 길게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질 내년도 예산안 처리까지 의사일정을 모두 보이콧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해석된다.
선거제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을 타고 합의문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다당제 심화로 자신들의 의석이 줄고, 결국 존폐의 기로까지 놓일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돌파구는 강도 높은 원외투쟁에서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벌였던 황 대표 취임 후 첫 장외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다.
4당이 당내 추인 등 일부 장애물을 넘어 패스트트랙에 연동형 비례제도 등을 담는 데 성공할 경우 여론전 외에는 딱히 법 개정을 막을 절차적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저들이 대화와 타협을 망각한 채 다수의 힘을 믿고 횡포를 부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나"라며 "지금으로선 비판하고, 비난하고, 반대하는 것 외에 아무 선택권이 없다"고 말했다.
선거법을 다루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나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둘다 패스트트랙 지정요건에 해당하는 재적위원 정수를 4당 위원만으로 채울 수 있는 상황.
본회의에서도 4당 의석수를 합하면 전체 의석의 과반을 차지해 한국당으로서는 자체적으로 표결을 저지할 방도가 없어 보인다.
정개특위 소속 또다른 중진 의원은 "숫자적으로 우리가 안 된다"면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 있고 의사봉을 심상정 위원장이 쥐고 있으니 의사진행을 방해할 방법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한국당은 구체적인 대응 방안 모색을 서두르고 있다. 23일 오전 계획했던 상임위 간사단 회의를 '패스트트랙 저지 대책회의'로 바꿔 비공개 진행하고, 이어 열릴 의원총회에서 관련 방안에 대한 총의를 모으기로 했다.
나 원내대표는 전체 의원에게 문자를 보내 "비상상황임을 감안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교안 대표 역시 사전에 예정됐던 대구 일정을 연기하고 의총에 참석한다.
그나마 법안 처리 절차가 이어질 내년 총선국면에 즈음해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이탈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개특위 소속 한 의원은 "결국 국민들의 진짜 뜻이 어디에 있는지 치열하게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결사저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당 일각에서는 그동안 패스트트랙이 궤도 위에 오르기까지 적극적으로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한국당의 '전략 부재'가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 아니냐는 자성론도 나온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3법 가운데 선거법은 의원정수 감축과 비례대표 폐지라는 극단적 당론 아래 정개특위 참석을 거부하고 있으며, 사개특위에서는 '공수처 반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나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만 당론을 조율한 상태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