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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기억 묻히고 이름마저 빼앗긴 '제주 도령마루'

제주

    학살 기억 묻히고 이름마저 빼앗긴 '제주 도령마루'

    [4.3, 기억과 추억 사이 ⑦] 제주시 도령마루
    4.3 당시 인적이 드물었던 외진 곳...군경, 주민 수십 명 학살
    유족 "아버지 농사만 지었는데,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
    왕복 6차선 도로 제주공항 출입 주요도로 '해태동산'으로 불려
    최근 해태상 철거되고, 해원 상생 굿 열지만 비극은 잊혀져가

    주변으로 왕복 6차선 도로가 닦이며 고립된 도령모루. 지난 24일 철거된 해태상 일부가 남아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4.3 당시 60여 명의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제주시 도령마루. 제주국제공항에서 신제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이곳은 현재 그 주위로 왕복 6차선 도로가 깔리면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

    특히 이곳에 최근까지 해태제과가 세운 해태상이 있어 수십 년간 '도령마루'가 아닌 '해태동산'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학살의 기억은 묻히고, 이름마저 빼앗겨야 했다.

    ◇ 제주의 '얼굴' 도령마루…4.3 당시 주민 수십 명 학살

    현재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시내로 향하는 관광객들에게 제주의 '얼굴'이 된 도령마루. 지금은 소나무밭 주위로 왕복 6차선 도로가 깔리며 수많은 차가 오가지만, 71년 전 4.3 당시만 해도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이었다.

    용담리, 도두리, 연동리, 오라리 등 4개 마을의 접경 지역이었던 이곳은 마을도 없었고, 소나무만 울창했다. 간간이 4개 마을로 향하던 주민들의 왕래만 있었을 뿐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인적이 드물었던 터라 1948년 11월 정부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해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을 시행한 직후부터 이듬해인 1949년 3월까지 이곳에서 주민 학살이 이뤄졌다.

    그동안 도령마루 주민 학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확한 희생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연동리, 노형리, 도남리 등 10여 개 마을 주민 66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향후 진상조사를 통해 그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임택규(86)씨가 제주시 도남동 자택에서 4.3 때 겪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25일 오후 제주시 도남동 자택에서 만난 임택규(86)씨의 아버지 역시 이곳에서 희생됐다. 1949년 1월 초 군경이 마을(현 제주시 도남동 제주상공회의소 인근)을 불태울 때 끌려가 도령마루에서 총살된 것이다. 임 씨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다.

    "아버지는 무장대 활동도 전혀 안 하고, 마을에서 콩, 보리, 조 농사를 지었는데 그렇게 억울하게 희생되셨어요. 저도 마을이 불타고 오현중에 있었던 수용소에 끌려간지라 몇 개월 뒤에야 아버지가 희생된 사실을 알았어요."

    임 씨의 어머니도 "폭도 가족"이라며 군경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1950년에 풀려났다. 아버지가 없었던 터라 4남 1녀 중 장남이었던 임 씨는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학교도 중학교까지만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시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몰라요. 집도 불타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으니깐 어머니랑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시내에 내다 팔며 근근이 끼니를 때웠어요.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저는 공부도 못하고…." 임 씨는 한이 맺힌 듯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 "현재 도령마루 인근에 지금껏 수습 못한 유해가…"

    임 씨의 아버지 경우 학살 직후 외할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했지만, 도령마루에 암매장된 유해들 중 일부는 7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3 당시와 이후에 도령마루에서 주인을 모르는 유해들이 발견됐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다수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령마루. (사진=고상현 기자)

     

    4.3연구소에서 펴낸 '제주 4.3유적' 책자를 보면 광령1리 주민 이모(77)씨는 "부친이 도령마루에서 밭을 갈다 5명의 유해가 나왔다. 3구는 유족들이 파갔지만, 나머지는 못 파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현기영 소설가가 쓴 <도령마루의 까마귀="">의 모티프가 된 고 현용준(31년생) 교수의 증언도 보다 구체적이다. 현 교수는 "4.3 때 도령마루에서 무장대를 막기 위한 성을 쌓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십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주인을 찾을 수 없어 인근에 따로 구덩이를 파서 묻어줬다"고 증언했다.

    강덕환 제주4.3평화재단 연구원은 "4.3 이후에도 도령마루로 땔감을 마련하러 갔다가 유해를 발견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동안 도령마루 학살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지 못한 터라 관련 증언들을 더 확인해 봐야 하지만, 충분히 유해가 현재에도 도령마루 인근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도로 닦이며 고립되고 해태동산에 이름도 빼앗겨

    지금은 주변으로 왕복 6차선 도로가 들어서며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게 된 도령마루. 차들 너머로 소나무와 야자수가 있는 곳이 도령마루다. (사진=고상현 기자)

     

    4.3 당시 서로 다른 마을 주민 수십 명이 여러 날에 걸쳐 집단으로 또는 개인으로 학살된 도령마루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인근에 1950년대 제주국제공항이 들어서며 공항과 신제주를 오가는 도로가 닦였다. 이 과정에서 도령마루는 신호등이나 건널목도 없어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된 고립지대로 남았다.

    또 1970년대 들어서는 유명 제과회사인 해태제과가 홍보를 위해 해태상 2개를 세우며 이곳은 '도령마루'가 아닌 '해태동산'으로 지금까지도 일반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석가탄신일, 크리스마스 시기만 되면 점등 탑이 세워지는 등 화려함으로 치장된다. 그 사이 임 씨의 아버지처럼 무고하게 희생된 수십 명의 사람에 관한 기억은 묻혔다.

    다행인 것은 학살의 기억이 잊히는 것을 안타까워한 제주지역 예술가들이 지난해부터 도령마루에서 희생자 넋을 위로하는 해원 상생 굿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4일 철거되고 있는 해태상. (사진=고상현 기자)

     

    또 지난 24일에는 늦었지만 제주시가 해태상 2개를 철거하고, 앞으로 이곳을 해태동산이 아닌 도령마루로 부르기로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현재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4.3 당시 학살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다음은 그동안 4.3 학살 안내판도 없었던 상황에서 지난해 (사)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와 탐라미술인협회가 도령마루에 세운 '4.3역사의 조난지 도령마루'라는 이름의 안내판에 적힌 글이다.

    "이곳은 제주4.3의 역사는 물론 원래 지명조차 조난당한 도령마루이다. 더욱이 제주의 관문 공항 인근에 있으면서도 소나무 숲에 가려져 고립무원의 지대로 방치돼 왔다. (중략) 우리는 역사의 상흔이 배여 있는 이곳 도령마루가 더 이상 방치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판을 세운다."
    도령마루 안에 지난해 세워진 방사탑과 안내판. (사진=고상현 기자)

     



    제주 4.3 당시 수많은 사람이 군경의 총칼 앞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주 땅 곳곳이 이들의 무덤으로 변했습니다. 현재 관광지로 변한 그 무덤엔 4.3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제주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지만, 71년 전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CBS노컷뉴스는 매주 한차례씩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4.3 학살터를 소개하며 4.3의 비극을 기억하겠습니다. 일곱 번째로 지금은 제주의 얼굴이 됐지만, 4.3 당시 수십 명의 주민이 희생된 도령마루를 찾았습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오늘도 어머니 유해 위로 비행기 뜨고 내린다
    ② 피로 물들었던 모래사장 지금은 제주 관광명소로
    ③ 대량학살 자행된 제주 정방폭포…지금도 울음 쏟아내다
    ④ 4.3 학살 흔적 지워지는 제주 성산일출봉
    ⑤ '마을 청년 한꺼번에 학살'…한(恨) 많은 제주 표선백사장
    ⑥ 무고한 주민 희생된 '죽음의 길', 지금은 제주 올레길로
    ⑦ 학살 기억 묻히고, 이름마저 빼앗긴 '제주 도령마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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