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의회.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기업 경영진의 지나치게 높은 보수를 규제하는 법, 이른바 '살찐고양이법'이 부산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수준이라는 전국경제인연합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주장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뒤엎는 등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방이 여전한 가운데 부산에서는 최고임금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달 30일 '부산시 공공기관 임원 보수기준에 관한 조례안'을 전체 의원 47명 중 44명의 찬성으로 재가결했다.
앞서 부산시의회는 지난 3월 29일 이 조례안을 가결했으나 부산시가 이의를 제기하자 93%의 찬성으로 재의결했다. 이 조례안은 부산시가 설립한 공사와 공단, 출자·출연기관의 대표이사 등 임원의 연봉 상한을 최저임금의 6~7배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산시 공공기관 대표이사의 연봉은 1억4659만원, 이사·감사 등은 1억2565만원을 넘지 못한다.
이같은 조례안에 대해 부산시는 "상위법의 근거 없이 자치단체장의 권한에 의회가 개입하는 것이다.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법제처 유권해석을 들어 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부산시의회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재의결을 한 만큼 남은 절차는 부산시 또는 행정안전부가 행정소송을 등을 통해 법적 판단을 구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살찐고양이법이라고 불리는 최고임금법안은 2016년 6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민간기업의 임직원 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를 넘지 말도록 하자는 것이 법안의 취지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심 의원은 법안 발의 당시 "2014년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받은 보수는 최저임금의 1650배,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의 경영자 보수는 최저임금의 180배에 달했다"며 최고임금 제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심 의원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광역의원 간담회를 통해 "최고임금법은 최저·최고임금을 연동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을 막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주요한 방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고임금법안은 발의된 지 3년이 지났으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는 부합하지 않는 법안이다", "현 시점에서 최고임금을 제한하는 법안이 경제나 우리 사회적으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등의 반대에 부딪혀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공부문부터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부산시의회의 조례안 재가결은 지지부진한 논의에 물꼬를 틀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임금이 매우 생소한 개념이지만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이미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세계대전 중 연소득 2만5000달러를 상한선으로 두고 초과분에 100% 세율로 과세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의회에서 격렬한 공방을 거친 끝에 1944년 20만달러가 넘는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율을 최고 94%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이같은 과세율은 약 20년 동안 유지됐으나 1965년에는 70%, 1982년에는 50%, 1988년에는 28%까지 떨어졌다. 전후 평등주의자들이 만들었던 예외적인 20년을 지난 뒤 부자들의 역습으로 과세율이 꾸준히 떨어진 것이다.
미국의 노동전문기자 톰 피지개티는 자신의 저서 '최고임금'에서 "20년 전 영국 상위 100대 기업의 최고임원은 노동자들보다 평균 45배 많은 급여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자들보다 평균 130배 많은 돈을 챙긴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국가에서 임원의 보수는 기본적으로 지금 이 시대 불평등의 견인차가 됐다. 세계의 부를 보다 합리적으로 사전분배하려면 우리는 그 엔진의 속도를 늦춰야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