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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서사 생명력은 왜 지만원의 차지가 됐나

문화 일반

    5·18 서사 생명력은 왜 지만원의 차지가 됐나

    [5·18 시민군의 어제, 그리고 오늘 ①]
    극우논객 지만원 "북한군 제1광수" 지목
    동일인물 두고 광주시민 "우리 동네 김군"
    "빨간 점·화살표…색다른 레드 콤플렉스"
    "집단 아닌 개인…5·18 서사 생명력 관건"
    "민주화운동 프레임에 잊힌 무장 시민군"
    젊은이에게 생소한 이미지…지만원 등 선점
    5·18에 현충원서 계엄군 추모 "용납 안 돼"
    "항쟁 서사 부활…가해자 양심선언 절실"

    1980년 5·18민중항쟁 현장 사진에 포착된 한 시민군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김군'. 이 영화 연출자 강상우(36) 감독은 당시 시민군에 몸담았던 100여 명을 접한 시대의 목격자다. 그와의 인터뷰로 5·18 시민군의 어제와 오늘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5·18 서사 생명력은 왜 지만원의 차지가 됐나
    <계속>


    영화 '김군' 스틸컷(사진=영화사 풀 제공)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극우논객 지만원 씨는 지난 2015년 6월 기자회견을 통해 사진 속 한 청년 시민군을 '제1광수'로 지목했다. 1980년 비밀리에 광주로 침투해 5·18을 일으킨 북한군 600명 가운데 대표 인물이라는 것이다.

    앞서 같은 해 5월 강상우 감독은 새로 문을 연 광주 금남로 5·18기록관에서 똑같은 사진과 마주했다. 5·18 때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 전달했던 주옥 씨는 그 사진 속 청년을 한동네 '김군'이라며 알아봤다.

    강 감독은 "지만원 씨와 일베 등의 (5·18 북한군 개입설) 주장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분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며 말을 이었다.

    "다만 지 씨와 일베가 그 주장을 시각화 하는 방식, 그러니까 빨간 점을 찍은 사람들(사진 속 5·18 시민군)을 북한 사람 얼굴과 빨간 화살표로 연결하는 방식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레드 콤플렉스'를 굉장히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굉장히 무겁고 엄숙한 주제인 5·18에 대해 지 씨가 제기한 '북한군 광수' 개념이 여전히 한국 사회 일부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지금은 양상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5·18과 관련해 유일하게 생명력을 지닌 스토리텔링은 지 씨의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저를 비롯한 지금 청년 세대에게 5·18은 8·15광복, 4·19혁명처럼 생명력을 잃은 과거의 주제다. 이 점에서 주옥 선생이 기억하는 '김군'에 현재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지금 살아 있는 서사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지만원의 빨간 화살표를 거꾸로 돌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강 감독은 그간의 5·18 담론이 집단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지 씨의 화살표가 개인을 향해 있다는 데 주목했다. "(5·18을 겪은) 개개인을 조명할 통로로 그 화살표를 빌려왔다"는 이야기다.

    "영화 '김군'의 초점은 총을 든 시민군들에게 맞춰져 있다.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정의되고 난 뒤로 무장 시민군 이미지는 다소 잊힌 측면이 있다. 오히려 '광주사태'로 불리던 시절에 시민군 이미지가 보다 전면에 부각됐던 게 사실이다."

    그는 "우리는 5·18 당시 시민군의 이미지를 직시하는 작업에 주력했다"며 "그러지 않고서는 무장 시민군 이미지를 두고 '북한군'이라는 지만원 씨나 일베 주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2010년대 다시 떠오른 '무장 시민군'…"왜 기관총을?" 물음 틈새

    영화 '김군'을 연출한 강상우 감독(사진=영화사 풀 제공)

     

    사진 속 동일인물을 두고 누군가는 '북한군 특수부대원'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한동네 김군'으로 부른다. 이 아이러니한 현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강 감독은 "5·18 당시 무장한 시민군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다양한 서사로 풀려나갈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며 "저만 해도 무장 시민군의 이미지를 봤을 때 '민주화운동'이라는 개념으로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혼란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촬영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포착된 이미지는 구체적인 맥락과는 별개로 독립된 생명력을 얻기 마련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고 난 뒤에는 그(무장한 시민군들) 이미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서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민주화운동 개념은 그 생명력을 박제한 느낌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2010년대 들어 그 무장 시민군 이미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젊은이들은 '어?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배웠는데 왜 기관총 든 사람들 사진이 있지?'라는 물음을 가졌다"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없었기 때문에 지만원 씨 주장과 같은 왜곡이 그 틈새를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5·18을 '항쟁'의 측면에서 다룰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지만원 씨 주장을 접할 때만 해도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미지와 관련한 논쟁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 시민군 이미지가 온라인 세계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현실 말이다. 그렇게 이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 감독은 지난해 5월 18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계엄군 추모 행사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만원 씨 주장까지는 '웃기다'고, 5·18에 흠집을 내려는 모습을 외부자 시선에서 바라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5·18 당일 현충원에서 1천여 명이 참석하는 '북한군에 의해 사망한 계엄군 추모 행사'가 열리는 모습을 보면서 '용납돼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토요일(5월 18일, 5·18 39주년)에도 이 행사가 열린다."

    ◇ "5·18 시민군, 유례없는 집단지성…청년·소년소녀 주체라는 데 큰 감흥"

    영화 '김군' 스틸컷(사진=영화사 풀 제공)

     

    강 감독은 지만원 씨 등이 왜곡 선점한 5·18 시민군 서사를 되찾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 씨 등의 주장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새로운 시민군 서사다. 5·18에 관한 이미지는 여전히 '아버지 영정을 든 소년' 사진이 대표한다. 그래 왔기에 지 씨와 일베가 그 빈틈을 공략했고, 저 뒤에 밀려나 있던 (시민군) 이미지에 대한 '북한군 연루' 서사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물론 그 서사는 이미 39년 전 전두환 군부가 처음 이야기했던 것에 기인한다."

    그는 "5·18 당시 시민군은 어느 누구도 강제로 나선 사람들이 없다. 각자 자율적이고 고유한 개인으로서 결합하면서 활동했다"며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유례없는 집단지성이 발현됐던 순간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5·18 당시 시민군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각자 자리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대의명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나오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태도인 것이다. 그러한 주체가 청년, 소년·소녀들이었다는 사실을 당대 사진으로 확인하는 데서 오는 감흥도 컸다."

    강 감독은 "5·18 가해자들을 조명하는 후속작업이 절실하다"며 "우리 영화에도 등장하는 송암동 양민 학살 사건만 봐도 11공수여단 부대원으로 가해자 특정이 가능한데도 여전히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만원 씨 사무실에 가면 당시 11공수여단 부대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들 개개인이 5·18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인간을 '죽여도 되는 빨갱이'로 치부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합리화·정당화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강 감독은 "저는 법을 바꿔서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생존자들은 당근 정책을 써서라도, 그러니까 포상금을 줘서라도 당시 계엄군의 양심선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며 "생존자들 사이 의견이 갈릴 때가 많은데, 이 부분에서만큼은 누구든 똑같은 의견을 피력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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