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21년 만에 중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 씨가 22일 오후 국적기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 입국장을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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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파나마에서 압송된 정한근(54)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해외도피 생활 21년 동안 지인의 명의를 이용해 미국·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손영배 단장)은 정씨가 국내에 거주하는 A(64년생)씨의 이름으로 미국과 캐나다 영주권·시민권을 취득해 신분 세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대검 관계자는 "정씨와 A씨는 고교 친구 사이로 보이고, 이름을 넘긴 A씨는 이후 개명해 국내에서 줄곧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2011년 A씨의 영문이름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2017년 7월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에콰도르에 입국해 최근까지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공조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지난 2월 에콰도르 대법원에 정씨에 대한 범죄인인도를 청구했다.
그러나 지난 4월 현지 대법원의 거절 의사로 정씨 소환은 무산되는 듯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지난 18일, 검찰은 정씨가 파나마를 경유해 미국 L.A.로 출국한다는 사실을 이륙 1시간 전 에콰도르 내부무로부터 전달받는다.
이에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파나마지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즉각 대응했고, 파나마에 도착한 정씨는 곧바로 입국 거부를 당해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됐다.
국제공조 하에 브라질 상파울루를 거쳐 UAE 두바이에 도착한 정씨는 곧바로 우리 송환팀에 넘겨졌고, 피로를 호소한 정씨는 예정일보다 하루 뒤인 전날 정오쯤 한국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주) 운영자였던 정씨는 1997년 11월 회사 대표이사 등과 공모해 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횡령해 재산을 스위스로 은닉한 혐의 등을 받는다.
정씨는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와 같은 혐의들에 대해 조사를 받은 이후 잠적했고, 법원에서 구속영장까지 발부됐지만 소재불명으로 집행되진 않았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임박하자 2008년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 및 횡령 혐의로 정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소재불명으로 공판을 진행할 수 없었고, 2023년 9월(15년 재판시효)까지 재판이 확정되지 않으면 법률상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씨는 이른바 '한보사태' 몸통인 정태수(95)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정 전 회장 역시 세금 2225억원을 내지 않은 국내 최고 체납자로 현재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이번에 압송된 정씨 역시 253억원의 국세를 체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정씨에게 이름을 빌려준 A씨는 물론, 정 회장의 도피 경로 등도 같이 조사할 방침이다.